[정형근 교수 에세이 (12)] 절에서 공부하던 내가 성경책을 읽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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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교수 에세이 (12)] 절에서 공부하던 내가 성경책을 읽었던 이유

2020. 03. 03 12:15 작성
정형근 교수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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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고 "시험에 붙게 해달라" 빌었다. 불당을 나와서는 기드온 성경책을 펴고 몇 줄 읽어보곤 하였다. 학교도 못 나온 내 앞날을 생각할 때 부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도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산사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초등학교 교사로 계신 분이 몸이 안 좋아 요양하러 절에 왔다. 그분은 법대를 졸업하고 청년 시절에 고시 공부를 했던 경험이 있었다. 인생의 장래는 사주 관상에 달려있다는 소신이 있던 분이었다. 내 이름을 한문으로 써보라고 하면서 그 획수를 계산하여 장래를 예견해 보기도 하였다.


얼마 후에 다시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할 예정인 분이 절에 들어왔다. 그 형과 방을 함께 사용하게 되었다. 그 형은 요양 오신 선생님과 완전 단짝이 되어 시간을 보냈다. 어떤 날은 속세(?)로 내려가 술을 드시기도 했다. 한잔하시고서 밤중에 절로 올라오면서 저 아래 계곡에서 "형근아! 형근아!"라고 불러댔다. 그런데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밤중에 이름을 부를 때 대답을 하면, 도깨비에게 홀려 간다는 옛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요한 산중의 적막을 깨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수도 없이 들려왔다. 두 분은 나에게 공부하느라 수고한다고 건빵 한 봉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 자려는데, 그 형은 온몸이 쑤시고 극심하게 아프다고 했다. 그저 과음한 탓이려니 했는데,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한밤중에 약을 사러 절을 내려갈 수도 없었다. 한참 후에 형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대웅전과 칠성각을 가보자고 하였다. 신성한 대웅전이나 칠성각에 뱀이나 죽은 짐승이 들어와 있으면, 그 주변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해를 당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촛불을 한 개씩 켜 들고 대웅전에 들어가 불을 밝혔다. 굵은 대초 불에 흐릿하게 비친 부처님의 얼굴이 어떻게 보면 인자한 것 같고, 달리 보면 화난 얼굴 같았다. 우리는 부처님께 먼저 절을 올렸다. 그리고 난 후 불상을 모셔놓은 단 아래 천을 들춰보았다. 눈을 부릅뜨고 혹시 죽은 뱀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러나 거미줄과 뽀얀 먼지만 가득하였다. 그다음에는 불상 뒷부분을 살폈다. 움직이는 촛불 그림자 때문에 정확히 볼 수 없었다. 부처님의 진노를 살만한 불경스러운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대웅전을 나와 이번에는 칠성각으로 향했다. 칠성각은 방에서 십여 미터 거리에 있었다. 옷을 한 겹씩 더 껴입고 밖으로 나섰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었다. 몇 발자국을 걷기도 전에 촛불이 바람에 꺼져버렸다. 어두웠지만 익히 아는 장소라 금방 칠성각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나서 촛불을 켜니 산신령의 그림이 울긋불긋한 색깔로 그려져 있었다. 곤히 잠든 산신령을 깨우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불당에서처럼 인사를 하고 산신령에게 찾아온 용건을 마음속으로 말씀드렸다. 장소가 비좁은 곳이라 여기저기 살펴볼 만한 곳도 많지 않았다. 거기도 불경스러운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후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옆에 누운 형도 이내 깊은 잠이 들었다. 어둠에 싸인 산속에는 이름 모를 산짐승들 우는 소리가 가득했다. 낮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짐승들이 한밤중이 되니 그들의 세상이었다.


스님은 오후 서너 시경에 불당에서 늘 예불을 드렸다. 내 공부방 바로 옆이 불당이고 창호지로 된 창문으로 막혀 있기에 날마다 예불 소리를 생생하게 듣게 되었다. 스님은 대한민국의 안녕을 비는 것을 시작으로 속세의 인간들의 복락(福樂)을 위한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탑산사의 번창을 비는 내용은 늘 간절했다. 예불을 마친 스님이 불당을 나가면 내가 불당에 들어갔다. 방금 전 스님처럼 나도 예불 시간을 가진 것이다. 부처님께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고 "부처님! 제가 세상에 나가서 보는 시험마다 합격하게 해주십시오. 실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좀 붙게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라고 빌었다. 내 기도는 늘 한결같았다. 그저 서울 올라가 보는 시험마다 합격하게 해주십사 비는 거였다. 불당을 나와서는 서울에 있는 누님이 보내준 기드온 성경책을 펴고 몇 줄 읽어보곤 하였다. 학교도 못 나온 내 앞날을 생각할 때 부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도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가을이 깊어지자 온 산에 단풍이 물들어 왔다. 매일 매일 나뭇잎의 색이 달라져 갔다. 낮에도 적막이 감도는 산사 주변에 형형색색의 단풍을 보니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틈만 나면 천관산 정상에 올랐다. 산꼭대기에 가면 저 멀리 어머니가 계시는 마을 앞을 흐르는 냇가의 모습이 실타래처럼 아련하게 보였다. 그렇게라도 집이 있는 곳을 보고 나면, 집에 대한 그리움이 잦아지고 마음도 안정되었다. 정상에서 내려오다 보면, 어느 계곡에 사람이 거하지 않은 암자가 눈길을 끌었다. 불과 몇 해 전까지 누군가 기거했던 흔적이 있었다. 한쪽 방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었고, 방의 벽지는 심하게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금방이라도 따뜻해질 것 같은 방이었다. 그 암자를 지나다닐 때는 그곳에서 나 혼자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공부가 안될 때는 산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장흥읍 내에 있는 법원(장흥지원)을 찾았다. 재판하는 장면을 보는 법정 견학을 통해서 각오를 다지고 싶었다. 판사가 검은 법복을 입고 법정에 들어와 매우 권위 있게 당사자들을 호명하였다. 피고들이 여러 명 불려 나갔다. 그런데 몇 사람이 대답을 늦게 하거나 아예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재판장은 한 사람을 지목하며 "술 먹었어?"라고 반말로 물었다. 그 사람은 겁먹은 표정으로 안 먹었다고 대답을 하였다. 그러자 판사는 "그런데 왜 대답을 안 해! 들어가!"라고 호통을 쳐 방청석으로 들여보내 버렸다. 판사의 위세가 대단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마을 이장이 마을주민들의 도장을 보관하고 있던 중에 문서에 날인하여 벌어진 무슨 사건 같았다.


날이 갈수록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함께 지내던 형과 선생님은 나에게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는 산중에서 지내지 말고, 서울로 올라가서 공부를 하도록 권면하였다. 인적이 끊긴 고요한 절의 공기가 시간이 갈수록 무겁게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날아가는 새소리도 들리는 적막한 분위기가 왠지 기분을 가라앉게 하였다. 그 무렵 내 또래의 스님 아들이 나를 만난 후 자기도 공부를 하겠다면서 스님에게 자꾸 학교를 보내 달라고 조른다면서 스님이 나를 원망했다. 내가 아들에게 청년 때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바람을 넣었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더 이상 절에서 지내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책과 이불을 등에 지고 절을 나섰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2월 초순경이었다. 절을 떠나는 나를 향하여 그 선생님이 작별 인사를 했다. "부디 성공하소!" 그렇게 서울로 가기 위해서 하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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