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풀린 여성, 마약한 것 같아요” 112 신고한 시민, 왜 재판에 넘겨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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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풀린 여성, 마약한 것 같아요” 112 신고한 시민, 왜 재판에 넘겨졌나

2026. 03. 16 17:30 작성2026. 03. 16 17:31 수정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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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주점서 수상한 정황 목격해 신고

경찰은 ‘허위신고’로 기소

법원 “만취와 마약 구분 어려워”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평범한 시민이 술집에서 수상한 사람을 목격하고 112에 신고했다가 오히려 전과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마약을 한 것 같다”는 의심 섞인 신고가 ‘거짓 신고’로 둔갑해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시민의 정당한 신고를 범죄로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우연히 들린 마약 대화, 그리고 풀린 동공…시민은 112를 눌렀다


사건은 지난해 4월 20일 오후 4시 27분경,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모처에서 발생했다. 피고인 A씨는 술을 마시던 중 우연히 옆 테이블에서 마약 관련 단어 등이 포함된 대화를 듣게 됐다.


대화 내용에 놀란 A씨의 시선은 자연스레 옆자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 여성이 동공이 풀린 상태에서 소파에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이를 본 A씨는 해당 여성이 마약을 한 것이 아닌가 강하게 의심하게 됐다.


결국 A씨는 곧바로 112에 전화를 걸었다. A씨는 “어떤 40대 여성이 마약하는 것 같다. 눈이 풀려있고, 흰색 상의, 파란색 모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다”며 당시 상황과 대상자의 인상착의를 경찰에 알렸다.



마약 반응 없자 ‘거짓 신고’로 둔갑


하지만 상황은 A씨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경찰 출동 결과, 신고 대상자인 40대 여성은 마약을 투약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자 검찰은 A씨를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누구든지 있지 아니한 범죄나 재해 사실을 공무원에게 거짓으로 신고해서는 안 되는데, A씨가 마약 투약 사실이 없음에도 이를 경찰에 거짓 신고했다는 것이 공소사실 요지였다.


수사 기록 중 작성된 단속경위서 내용도 A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듯했다. 당시 현장에서 경찰관이 112 신고를 한 이유를 묻자, A씨가 구체적인 답변 없이 그저 “미안하다”는 취지로만 대답했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은 이를 범행을 시인하는 정황으로 보았다.


법원 “진상 파악 요청일 뿐…고의성 입증 안 돼 무죄”


그러나 서울서부지방법원 성준규 판사는 지난 1월 15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세 가지 핵심 근거를 들어 검찰의 공소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첫째, 재판부는 A씨의 신고 내용에 주목했다. A씨가 112에 “마약하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은, 누군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단정적이고 확정적인 사실을 신고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범죄 의심이 있으니 출동하여 진상을 파악해 달라는 취지의 정당한 요청으로 평가했다.


둘째, 일반인의 한계도 참작됐다. 재판부는 일반인의 시각에서 술에 취한 사람과 마약 기타 환각성 물질을 흡입한 사람의 거동이나 신체 상태 등을 분명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A씨가 신고 당시 여성이 “눈이 풀려 있었다”고 묘사한 부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뜻이다.


셋째, 현장에서 한 A씨의 사과를 거짓 신고의 자백으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A씨)으로서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신고로 경찰 행정력의 낭비를 초래하게 된 것에 대한 유감을 표현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며 이를 유력한 정황 증거로 삼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결국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거짓 신고의 고의를 가지고 경찰에 전화를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참고] 서울서부지방법원 2025고단1636 판결문 (2026. 1. 15.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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