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25)] 성경에 술 먹지 말란 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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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교수 에세이 (25)] 성경에 술 먹지 말란 말 있어?

2020. 11. 27 10:26 작성2020. 11. 27 12:17 수정
정형근 교수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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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대낮 점심시간에 폭탄주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좋은 자리를 마련해 놓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은근 화가 치밀었다. 지청장이란 지위를 이용하여 특정 음식 먹고 안 먹을 자유도 존중해 주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셔터스톡

검찰청에 실습을 나간 지 얼마 후 지청장이 시보들에게 점심을 사주며 격려하겠다고 했다. 지청장은 시집도 내고 문학적 소양도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었고, 나중에는 헌법재판관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지청장은 차장검사와 형사부장 검사와 함께 식당으로 오셨다. 나는 시보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아서 '시보장'이라고 하여 지청장 바로 건너편에 앉았다. 지청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폭탄주를 돌리기 시작하였다. 잔을 우측으로 돌릴 때는 "우익 보강"이라고 하고, 좌측부터 줄 때는 "좌익 척결"이라고 했다. 밝은 대낮 점심시간에 폭탄주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시보들은 연수원에서 워낙 단련된 음주문화 속에 지냈던 터라 넙죽넙죽 잘도 받아 마시는 것 같았다. 이어 나에게도 소주와 맥주가 가득 담긴 잔이 주어졌다.


"청장님! 저는 기독교인이라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청장님의 잔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러자 지청장은 "감히 내 잔을 거부하다니!" 이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성경 어디에 술 먹지 말란 말이 있어?"


그러면서 들고 있던 술잔을 상에 탁 내려놓았다. 그러자 곁에 있던 차장검사(훗날 법무부 장관)가 나를 옹호해 주었다.


"정 시보가 신앙적 양심 때문에 청장님의 잔 받기를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형사부장 검사도 거들었다.


"정 시보가 청장님 잔은 받았으면 좋을 건데⋯아직 사회생활이 부족해서⋯."


차장과 부장님이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하는 말들이었다. 나는 좋은 자리를 마련해 놓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은근 화가 치밀었다. 지청장이란 지위를 이용하여 특정 음식 먹고 안 먹을 자유도 존중해 주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검찰청 기관장이 실습 중인 예비 법조인들에게 덕담이라도 해주면서 그러면 좋았을 것인데, 아무튼 소속 상관의 권위를 한껏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주변에서 분위기를 전환시키고자 거들어 주자, 지청장은 노기를 다소 풀었다.


"그러면 이번 잔만 비우고 다음에는 패스해!"


더 이상 거부하면 안 될 거 같아, 상에 놓인 잔을 들어 한순간에 들이켜 버렸다. 그러자 지청장은 "잘 마시면서 그러네!"라고 했다. 스무 살 때부터 즐겨한 술이라 마시는 것은 부담되지 않았다. 특히 20대 초반 검찰청에서 근무할 때 적잖게 마셨던 터였다. 다만, 기독교인이 되면서 가능한 술을 멀리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 때문에 연수원의 각종 모임에서도 술잔을 거절하느라고 곤혹스러운 일을 많이 겪었다. 술을 강권하는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경험하였다. 그런데 검찰청에 실습을 나와서도 같은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다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지청장은 과거 평검사 시절에 한 달에 처리하였던 사건이 수백 건에 달하였다는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차장검사는 격무에 시달린 어떤 검사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업무 부담이 적은 공판부로 보냈는데, 그 검사가 자정이 넘은 시간에 출근을 해 주변을 놀라게 하였다는 일화도 들려주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후까지 술잔이 오갔다. 오후 늦게 자리에서 일어난 지청장은 "시보들은 청으로 곧바로 들어오지 말고 목욕을 하고 술 깬 다음에 오라"고 식당을 나갔다.


그 일 후에 독실한 신앙인었던 차장검사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되었다. 가끔 차장실로 호출을 받아 급히 가면, "상사가 부르면 메모할 수 있는 업무수첩을 가져와야 한다"고도 알려주셨다. 그분이 회장으로 있던 북부지청 기독인 모임에도 나가게 되었다. 그 모임에는 청사에서 근무하는 모든 기독인들이 참석하였고, 모임 후에는 근처 식당에서 매우 검소한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어느 날은 나를 차장실로 불러 "고교 동창회장이 법조인 사위를 얻고자 하는데, 혹시 주변에 소개해 줄 시보가 있는가? 결혼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여러 도움을 줄 것 같은데⋯." 그래서 멋진 동기를 소개시켜 드리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나왔다. 그리고 주말에 할 일 없이 지낸다는 미혼의 동기들과 접촉해 보았더니, 모두들 바쁘다는 핑계로 응하지 않았다. 장차 판사나 검사 임관을 바라고 있는데, 차장검사가 소개하는 자리에 나가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


검사직무대리를 하면서 작성하게 되는 서면의 특징은 내용이 아무리 많아도 한 문장으로 작성하는 것이었다. 마침표는 맨 나중에 단 한번 찍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일반 문장과는 정말 다른 형식의 독특한 서면 작성법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도 자주 쓰다 보니, 매우 전문성 있는 글처럼 보이기도 했다.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소장을 작성하는 것보다, 죄는 성립되지만 한번 용서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불기소장 작성이 더 어려웠다.


토요일 주말을 맞아 퇴근 시간에 검사실을 나가려고 인사를 하자, 검사가 "정 시보님! 미제사건이 몇 건인가요?"라고 물었다. 꽤 여러 건이 쌓여있다고 했더니, 월말이니까 오후에 남아서 전부 처리하고 퇴근하라고 했다. 그래서 직원들은 전부 퇴근하고 검사와 단둘이 짜장면으로 점심을 하고, 미뤄뒀던 사건을 해 질 녘까지 처리를 했다.


그리고 검사의 인솔하에 모든 시보들은 성동구치소(현재 동부구치소) 견학을 하게 되었다. 피의자들이 구속되어 있는 방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 검사는 "구치소 방바닥을 바늘로 만들어 놔야 다시는 죄짓고 들어오지 않을 거야"라고 했다. 어느 방 앞에 교도관이 서 있어서 "왜 이 방 앞에 계십니까?" 물었더니, 피고인이 옷을 꿰맨다고 바늘을 빌려 갔기에 돌려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출근 시간이 조금 지난 무렵에 검은 정장을 한 수십 명의 남성들이 복도를 지나 어느 검사실로 들어갔다. 족히 20~30명은 되어 보였다. 머리를 짧게 깎은 젊은 사람들이라 조직폭력배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큰 소란이 이는 불상사는 없었는데, 오래지 않아 그들은 다시 검찰청을 빠져나갔다. 한참 후에 지도검사는 조폭들이 수사 검사를 찾아가 협박하고 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청 출입을 통제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아쉬워했다. 검찰 실습을 마치게 되는 주간에는 공판부 검사와 함께 법정에 들어가서 피고인에 대하여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사실을 인정하는지 묻는 실습도 해보게 되었다.


그 무렵 검찰 인사가 있어서 지도검사는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그래서 짐을 싸면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오전에 5~6명의 사람들이 검사실로 들이닥쳤다. 청사 출입구에 수위 아저씨 한 분이 있을 뿐이라 민원인이 마음대로 검사실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분들은 거주하던 집이 철거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일로 고소를 당한 피의자들이었는데, 혐의가 인정되어 벌금을 미리 납부하라는 통지서를 받았던 것 같았다. 그들은 "왜 피해자인 우리만 벌금 내라고 하고 고소인은 관두냐?"며 거칠게 항의를 했다. 그러자 검사가 당사자마다 다른 처분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럼에도 화가 난 그들은 "당신이 검사야?"면서 마치 멱살이라도 잡을 듯이 대들었다.


벼슬이 높아도 상대방이 그 권위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살벌한 분위기가 누그러들지 않았다. 누구를 불러서 그 상황을 제압시킬 수도 없었다. 한동안 화풀이를 한 그들은 욕을 하면서 검사실을 나갔다. 그러자 검사가 지방으로 떠난 후에 벌금을 납부하라는 통지를 보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도검사가 교체됨에 따라 새로운 검사실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 검사는 지방에서 서올로 올라오신 분이었다. 검사실 안에 계장도 두 분이나 되고, 시보까지 있다는 점을 통화를 하면서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서 "앞으로 우리 방에서 변호사 선임해 줘야 할 사건은 서초동에 있는 〇〇〇변호사님에게 밀어주도록 합시다"라고 하였다. 그 변호사는 지청장 출신 검찰 선배라고 했다. 지금은 법원·검찰 등 재판·수사기관 공무원이 변호사에게 사건소개를 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그런 행위가 금지되어 있지 않았다.


어느 날은 동대문시장에서 가짜 상표 붙여서 판매하는 상인을 체포하고 물건도 압수하려고 가는데 동행하였다. 점심시간 지난 후에 시장에 도착하니 손님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검찰 수사관들은 지정된 상점에 들어가서 검찰에서 나왔다고 하면서 가짜 물건 수색에 들어가서 수많은 가방 등의 물건을 찾아냈다. 그 장면을 참관하러 나온 시보들 서너명은 급박하게 진행되는 그런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청사로 돌아온 후 그 상인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할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서 퇴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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