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지성의 계발과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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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지성의 계발과 AI

2022. 02. 15 13:56 작성
정진섭 변호사의 썸네일 이미지
jsjung@soul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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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지성과 인공지능(AI)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지만, 양자의 본질적인 차이점은 바로 '스스로' 여부에 있다. /셔터스톡

"스스로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으며(不憤不啓, 불분불계),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밝혀 주지 않으며(不悱不發, 불비불발), 한 모퉁이를 들어서 가르치면 나머지 세 모퉁이를 스스로 들어서 깨달아야 한다(擧一隅不以三隅反, 거일우불이삼우반). 굳이 다시 들지 않는다(卽不復也, 즉불부야)."


논어(論語) 술이편에 나오는, 가르침에 대한 공자의 생각이다. 이 글귀는 인간 지성을 깨우쳐 밝혀 나간다는 '계발(열 啓, 밝힐 發)'의 어원이며, 어느 법원 건물 로비에 커다란 서예작품으로 걸려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이 글귀를 읽을 때마다 나는 답답하고, 공자님이 친절한 스승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 경우는, 누군가 귀중한 이야기를 전해 주어도 몇 차례 들어야 겨우 알아차리는 경우가 허다했고,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논어(論語) 술이편. /정진섭 변호사 제공

본래 '계발'의 참뜻은 스스로 분발하고, 스스로 의심하고, 스스로 탐구해야만 한다는, 배우는 자의 능동성과 '자유의지'를 강조한 것이지만, 인간정신의 본질을 깨우치려는 과제가 극소수의 성현들이나 종교인, 철학자 또는 일부 엘리트 집단의 전유물은 아니다. 비록 평범한 사람들이라 해도,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자기가 잘 알기 때문에, 성현의 말씀이나 경전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게 더디고 시간이 걸릴지라도, 누구든지 스스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인간정신의 본질과 정체성을 알고자 꾸준히 노력한다면, 스스로의 진면목을 밝혀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 지성과 인공지능(AI)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지만, 양자의 본질적인 차이점은 바로 '스스로' 여부에 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원초적으로 사람이 만들었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일단 창조되었다고 하면 '자각'에는 접근할 수가 없다. 만들어진 인공지능에게 인간지성의 궁극인 '스스로'라는 자유의지, 즉 '자각'을 일으키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에 의해서 선택되어지고, 인간이 발명한 뭔가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작동되어진다면, 그것은 결코 자각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사람인데, 각고의 노력을 통해서 신(神)이 될 수가 있다고 하는, 허황된 생각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언어상으로만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지, 정확히 따지면 '지능'이라는 표현은 부적절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인공지능은 인간정신의 본질인 무한다양성과 무한창조성을 바탕으로 현생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전의 컴퓨터는 입력된 데이터 안에서만 작업을 수행했으니까 완전히 노예체제였지만, 인공지능이라는 것은 그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해서 스스로 심화학습을 거쳐서 자기가 업그레이드된다는 점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히 4차 산업혁명이라 일컫는 것이다.


최근 SF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갖고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겪는다는 스토리가 많이 등장한다. 그와 같이 인공지능이 인간과 동일한 감정을 갖고 표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그 원리는 무엇일까?


만일 인간들이 수많은 감정에 의해서 표현해 놓은 감정적인 판단을 인공지능에 가미하려면, 인공지능 자체만으로 있어서는 안 되고, 로봇(Robot)이라든가, 바디(Body)가 있어야 된다. 우리 인간이 감각을 느끼듯이 로봇에 감각을 인지할 수 있는 매체가 개발되어 합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감각은 단순히 지식만으로 감정이 형성될 수는 없고, 감각을 통해서 감각과 지식정보의 혼합이 일어나야만 감정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팔을 꼬집으면 '아, 아프다' 하는 반응은 도저히 지식정보만으로는 접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로봇을 망치로 때렸다고 해서, 로봇이 '아! 아프다'하는 감정을 느끼게 하려면, 그런 인지장치를 시스템으로 만들어서 부착을 해서, 지식의 경험치가 축적되도록 하고, 그 경험치로 인해서 자아 형성이 되도록 만들어야 된다. 그냥 단순히 통증만으로 인공지능의 감정을 일으킨다는 것은 과도한 논리적 비약이다.


알파고 인공지능을 개발한 데미스 하사비스는 5년 전 기고한 칼럼 데미스 하사비스가 말하는 AI- '나는 누구인가?'- '기계에 깃든 정신'에서, 사람의 뇌와 같은 범용 AI를 통한 '사람과 기술 사이의 협업'으로, 우리 인류는 스스로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며,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일어날 커다란 과학적 진보가 여기에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인류가 'AI 학습'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사람의 뇌에 가까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면, 인류는 그동안 어둠 속에 감추어져 왔던 '인간정신'의 신비를 벗겨내고, 나아가 '의식' 그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데미스 하사비스는 그것을 아마 AI가 밝혀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알파고 인공지능을 개발한 데미스 하사비스. /데미스 하사비스 페이스북 캡처


인간지성의 본질은 '자유(自由)'이며, 그 어떤 대상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말미암아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창조의 원동력은 인간의 자유의지, 즉 자발성과 자율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로 인한 무한다양성과 무한가능성이야말로 인간정신의 위대함이다. 그래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스스로'의 중요성이다.


우리 인류는 이러한 능동성과 '기회의 자유'를 바탕으로 해서, 드디어 인공지능(AI)이라는 문명의 도구를 발명하게 되었고, 인공지능을 통해서 오랜 역사 동안 소수의 전유물로 취급되던 온갖 지식정보를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공유하게 하는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런 '보편성'이야말로 인공지능(AI)의 최대 장점이다.


그렇다면 장차 인공지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합일, 사랑, 공경, 정직, 정의, 친절, 연민과 같은 인간정신의 위대한 측면을 유지하고, 증진하고, 확장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으로 압축될 수 있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지성적 통찰에 어느 정도까지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관심과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 인류가 인공지능을 만들게 된 이유는 인간지성의 계발을 향한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 만큼, 부디 그 인공지능을 통해서 인간지성의 증진과 확장을 꾸준히 도모해 나가는 선순환의 과정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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