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계엄 피해자, 43년 만에 1억7천 배상 "법이 막았던 청구권, 헌재가 열었다"
1980년 계엄 피해자, 43년 만에 1억7천 배상 "법이 막았던 청구권, 헌재가 열었다"
'위자료 청구권 소멸시효 법률상 장애' 첫 인정
가족 청구는 기각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1부는 최근 1980년 비상계엄 하에서 유인물을 배포해 유죄 판결을 받았던 원고 A가 대한민국(피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기)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 A에게 1억 7천만 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비상계엄 포고 위반 관련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 중 본인의 고유 위자료 청구에 대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본 판결이다.
원고 A는 1980년 G대학교 외국어교육과 3학년 재학 중이던 학생으로, 1980년 9월 "F 물러가라" 및 "살인마 F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하자"는 내용의 유인물을 제작·배포하다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계엄포고 제10호 위반으로 징역 3년의 유죄판결을 선고받았고, 1982년 8월 15일 석방될 때까지 706일간 구금되었다.
헌법 수호 위한 '정당행위'로 2000년 무죄... 그러나 위자료 청구의 길은 막혀있었다
원고 A는 1998년 구 광주민주화운동보상법에 따라 연행, 구금, 수형일수 보상금 및 위로금 등 합계 97,936,400원을 지급받았다.
이후 재심을 청구하여 2000년 2월 "F 등이 행한 일련의 행위는 헌정질서파괴범죄에 해당하며, 원고 A의 행위는 이를 저지하거나 반대한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고 확정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구 광주민주화운동보상법 제16조 제2항은 보상금 지급 결정에 신청인이 동의한 때에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해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간주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 조항으로 인해 원고 A의 국가배상청구권 행사가 제한되는 법률상 장애가 존재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열어준 23년 만의 배상 청구권
이러한 법률상 장애는 2021년 5월 27일 헌법재판소가 구 광주민주화운동보상법 제16조 제2항 중 '정신적 손해' 부분에 대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이 사건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비로소 해소되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위헌결정으로 법률상 장애사유가 소멸된 2021년 5월 27일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인 2023년 12월 26일 이 사건 소가 제기되었으므로, 원고 A의 고유 위자료 부분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법원은 계엄포고가 구 헌법 및 구 계엄법에 위배되어 무효이며, 피고의 공무원들이 위헌·무효인 계엄포고를 적용·집행하여 원고 A을 영장 없이 체포하고 유죄판결을 선고받게 한 행위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위자료 액수는 이 사건 불법행위의 중대성, 오랜 기간 배상이 지연된 점, 유사 사건과의 형평성 등을 종합하여 1억 7천만 원으로 산정했다.
가족들의 청구는 기각, 소멸시효의 기산점 차이가 희비를 갈랐다
한편, 원고 A의 부모와 형제자매인 원고 B, C, D가 제기한 고유 위자료 청구는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기각되었다.
재판부는 원고 A 가족들은 재심 무죄판결이 확정된 2000년 2월 무렵 이미 손해 및 가해자를 현실적으로 인식했다고 보았다.
또한, 구 광주민주화운동보상법 제16조 제2항은 관련자(원고 A)의 피해에 대해서만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고, 가족들의 고유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는 그 조항에 따른 법률상 장애사유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재심 무죄판결 확정일로부터 3년이 경과한 후 제기된 가족들의 고유 위자료 청구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소멸했다고 판시했다.
국가배상금 산정의 기준: 위로금 공제는 거부
피고 측은 원고 A이 과거 수령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보상금(위로금 등 97,936,400원)을 위자료 금액에서 공제하거나 참작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위로금 명목으로 지급된 돈은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생계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게 지급되는 사회보장적 성격의 돈"이며,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금으로 지급되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번 판결은 헌재의 위헌 결정 이후, 과거 비상계엄령 등 위헌·위법한 국가 공권력 행사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의 위자료 청구권에 대해 법률상 장애가 해소된 시점을 기산점으로 하여 소멸시효를 판단함으로써, 피해자들이 오랜 기간 끝에 정당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