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 정체 캐낸 언론…한국이었다면 거액의 손해배상 감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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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 정체 캐낸 언론…한국이었다면 거액의 손해배상 감수해야

2026. 03. 17 14:42 작성2026. 03. 17 14: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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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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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 정체 폭로 보도, 한국법상 쟁점은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의 정체가 공개됐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한국에선 익명성 보호가 우선돼 위법 판단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뱅크시 인스타그램

전 세계 거리의 벽을 캔버스 삼아 권력을 비판해 온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Banksy).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던 그의 정체가 51세 영국 남성 '로빈 거닝엄'이며, 신분을 숨기기 위해 '데이비드 존스'로 개명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와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출입국 기록과 경찰 자백서 등을 샅샅이 뒤져 그의 정체를 폭로하며 "대중의 알 권리"를 내세웠다. 반면 뱅크시 측 변호인은 "보복이나 검열 두려움 없이 비판적 표현을 하기 위해 익명성은 필수적"이라며 반발했다.


만약 뱅크시가 한국인이었고, 한국 언론이 그의 정체를 파헤쳐 보도했다면 법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또한 남의 집 담벼락에 몰래 그린 그의 낙서는 한국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까.


예술이 유명하다고 얼굴까지 공개해야 하나… 익명성과 알 권리의 충돌


한국 법정에서 이 사건을 다룬다면, 뱅크시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는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사상이나 견해를 표명할 익명표현의 자유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알려질지 스스로 결정하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역시 뱅크시를 보호하는 강력한 방패가 된다.


물론 언론 입장에서는 뱅크시가 문화·예술계와 국제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적 인물이므로 대중의 알 권리가 우선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법원의 기준은 엄격하다. 법원은 사생활 공개가 위법한지 판단할 때, "그 개인이 공개되기를 바라지 않고, 공개됨으로써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가질 사항인지"를 따진다.


뱅크시가 수십 년간 철저히 숨겨온 신원은 이 요건을 정확히 충족한다. 작품 자체는 공적 영역에 있지만, 작가의 얼굴과 이름까지 공공의 이해에 필수적인 사항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즉, 언론의 폭로가 단순한 대중의 호기심 충족을 넘어선 진정한 공익적 필요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원칙적으로 뱅크시의 기본권을 침해한 위법 행위로 평가될 소지가 크다.



합법적 개명 파헤친 보도… "피의자도 아닌데 너무 가혹해"


보도에 따르면 뱅크시는 신원 노출 위협을 피하고자 2008년 영국에서 아주 흔한 이름인 '데이비드 존스'로 개명했다.


한국 대법원 역시 범죄 은폐 등 불순한 의도가 없다면 개인의 개명 신청을 폭넓게 허가하고 있다. 뱅크시의 개명 목적이 위협으로부터의 회피라면 정당한 사유로 인정될 수 있다.


문제는 언론이 합법적으로 바뀐 새 이름과 과거 이름을 억지로 연결해 대중에게 공개했다는 점이다. 한국 법원은 공적 생활에서 형성되거나 이미 공개된 정보라 할지라도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보호 대상으로 본다.


특히 한국 법원은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조차도 신원을 밝히지 않는 '익명보도주의'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하물며 범죄자도 아닌 예술가의 개명 전후 신원을 연결해 폭로하는 것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매우 높다.


남의 벽에 몰래 그린 낙서, 법의 보호 받을까?


그렇다면 뱅크시의 가장 큰 특징인 '게릴라 그라피티(무단 낙서)'는 어떨까. 그의 작품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캔버스가 남의 집 담벼락이라는 점이 딜레마를 낳는다.


흥미롭게도 한국 저작권법은 예술 작품의 창작 과정이 합법적인지를 따지지 않는다.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독창적인 창작물이라면, 남의 재산에 무단으로 그린 낙서라도 미술저작물로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다.


제3자가 뱅크시의 허락 없이 해당 담벼락 사진을 찍어 굿즈를 만들어 판다면 저작재산권 침해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저작권이 인정된다고 해서 범죄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건물에 허락 없이 그림을 그린 행위 자체는 형법상 재물손괴죄에 해당하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불법행위)도 져야 한다. 저작권법과 민·형사법은 별개의 트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법의 시선으로 본 뱅크시는 '재물손괴죄를 저지른 범법자'인 동시에,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위대한 예술가'이며, '언론의 과도한 알 권리로부터 사생활을 보호받아야 할 개인'이라는 복합적인 지위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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