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가 범죄로" vs "고소 외엔 방법 없다" 신생아 뇌성마비 '의료과실' 형사 재판으로
"진료가 범죄로" vs "고소 외엔 방법 없다" 신생아 뇌성마비 '의료과실' 형사 재판으로
의료계, 불가항력적 사고 주장하며 필수의료 붕괴 우려
환자단체, 헌법상 권리 강조하며 피해자 보호 촉구

산부인과 분만실 / 연합뉴스
한 아이의 탄생을 둘러싼 비극적인 의료사고가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18년 발생한 신생아 뇌성마비 사건으로 의료진이 형사 기소되자, 의료계와 환자단체 간의 입장 차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민사 재판에서 의료진의 일부 배상 책임이 인정된 데 이어 형사 기소까지 이어지면서, 이 사건은 단순히 개인의 불행을 넘어 필수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사건의 발단 뇌성마비 판정 이후 법적 공방으로
논란의 시작은 2018년 12월의 한 분만이었다. 당시 한 대학병원 산모 C씨는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았다.
하지만 아기는 태변 흡입과 호흡곤란을 겪었고, 저체온 요법 치료 후 뇌파 검사에서 뇌기능 장애가 확인돼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
산모 측은 분만을 집도한 산부인과 교수와 전문의가 태아 심박동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아이가 뇌성마비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에 의료진을 상대로 24억 4천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5월 민사 재판부는 의료진에게 6억 5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는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면서도 산모의 기여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 책임을 30%로 제한한 결과였다. 이후 검찰이 의료진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형사 기소하며 갈등이 심화됐다.
의료계의 우려 "최선의 진료가 범죄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공포"
이번 형사 기소에 대해 의료계는 깊은 충격과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관련 단체들은 공동 성명서를 통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가 형사 기소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 깊은 절망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들은 분만 과정이 뇌성마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 임신 기간의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분만은 본질적으로 불가항력적 위험을 내포한 의료행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의료사고 발생 시 형사 책임까지 부담하게 된다면, 젊은 의사들이 산부인과를 포함한 필수 진료과를 기피하게 되어 결국 필수의료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단체의 반박 "피해자 권리 보장은 헌법상 기본권"
반면 환자단체는 의료계의 주장에 반박하며 피해자의 권리 보장을 우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사고 피해자가 의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이나 형사고소를 제기하는 것은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위가 아닌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임을 강조했다.
이들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산모가 같은 병원 동료 의사였다는 점을 들어, 현행 의료 환경에서는 의사조차도 의료사고 피해자가 될 경우 민사·형사 소송 외에는 피해를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민사 재판에서 인정된 6억 5천만 원의 배상액도 중증 장애를 가진 자녀의 10년치 간병비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의료사고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과 보호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적·제도적 대안은?
이번 논란은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과 보상 문제를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법조계는 의료사고의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의 기준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민사 책임은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형사 책임은 과실의 가벌성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민사 배상 판결이 곧 형사 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정부는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2023년 7월부터 불가항력적인 분만사고에 대한 보상 한도를 기존 3천만 원에서 최대 3억 원으로 상향했다. 또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등을 통해 의료인의 부담을 경감하고 피해자 구제를 동시에 도모할 방안을 모색 중이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의료분쟁 조정제도 활성화와 더불어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사회적 분담을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