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오픈카 사망 사건' 법원은 왜 살인죄를 무죄로 보았을까?
'제주도 오픈카 사망 사건' 법원은 왜 살인죄를 무죄로 보았을까?
검찰의 살인 기소를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뒤집은 판결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2019년 11월 10일 새벽 1시, 제주시의 한 도로에서 참혹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붕을 연 채 시속 114.8km로 질주하던 오픈카가 연석과 돌담, 경운기를 차례로 들이받은 것이다.
당시 조수석에 타 있던 28세 여성 B씨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상태였고, 충격으로 차 밖으로 튕겨 나가 약 9개월 뒤 결국 숨을 거두었다.
운전대를 잡았던 사람은 그녀의 연인인 A씨였다.
당시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18%, 면허 취소 수준의 만취 상태였다.
검찰은 이 사건을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닌 '살인'으로 기소했다.
A씨가 여자친구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 고의로 사고를 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1심부터 대법원까지 이어진 세 차례의 재판에서 법원은 모두 '살인의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과연 그날 밤, 그리고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날 밤의 재구성
두 사람은 2019년 1월부터 만난 연인이었다.
A씨가 여러 차례 이별을 요구하며 갈등이 있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교제 300일을 기념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비극은 여행 첫날 밤에 시작되었다.
해수욕장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신 A씨는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
A씨는 B씨의 요구에 따라 차량 지붕을 열고 급가속을 하며 위험한 운전을 했고, 블랙박스에는 이때 B씨가 즐거워하며 소리를 지르는 음성이 고스란히 남았다.
이후 펜션에 도착했지만, B씨가 라면을 먹고 싶다고 하자 두 사람은 다시 차를 타고 나섰다.
이번에는 A씨만 안전벨트를 한 상태였다. 차 안에서 이별에 관한 대화가 오가던 중,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음이 울렸다.
A씨: "안전벨트 안 했네."
B씨: "응."
이 짧은 대화 직후, A씨는 차를 급가속하기 시작했다.
제한속도 50km 도로에서 시속 114.8km까지 속도를 높였고, 굽은 길(커브)을 만나 뒤늦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차는 시속 92km의 속도로 충돌하고 말았다.
법원은 왜 '살인'이 아니라고 판단했는가
검찰의 기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살인죄를 무죄로 판단한 핵심적인 이유는 네 가지다.
1. 이별 갈등이 살인의 동기가 될 수 있는가
살인을 결심하려면 마음속 도덕적 저항을 극복할 만큼의 강렬한 '앙심'이나 증오심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법원은 두 사람의 갈등이 한쪽(A씨)이 이별을 원하고 다른 쪽(B씨)이 응하지 않는 패턴이었을 뿐, 극도로 격앙된 감정 상태는 아니었다고 보았다.
오히려 여행 준비 과정에서 커플티를 맞추는 등 애정을 나눈 흔적이 있었고, 사고 직전의 대화 역시 만취한 상태에서 나눈 횡설수설에 가까웠다.
2. 자신도 죽을 수 있는 방법을 범행 수단으로 택하겠는가
오픈카는 지붕이 없어 차가 전복될 경우 운전자의 생명도 매우 위태로워진다.
실제로 이 사고에서도 운전석 근처까지 차체가 심하게 파손되었다.
법원은 만약 정말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면, 고속 주행 중 급제동하는 등 자신의 위험은 줄이면서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사람만 다치게 할 방법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즉, 자신의 목숨까지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는 충돌을 범행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은 "경험칙에 비추어 지극히 이례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3. 차량 조작 패턴이 고의 충돌과 맞는가
블랙박스 데이터 분석 결과, A씨는 첫 번째 커브에서는 감속하며 통과했고, 사고가 난 두 번째 커브에서도 충돌 직전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급격히 꺾었다.
법원은 이 조작이 누군가를 해치려 의도한 것이 아니라, "뒤늦게 커브를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회피하려 한 행동"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4. 만취 상태에서 치밀한 범행이 가능했는가
사고 불과 8분 전까지 만취 상태에서 위험운전을 하던 A씨였다.
법원은 어두운 야간 도로에서, 짙은 선팅이 된 차를 몰던 A씨가 상대방의 안전벨트 미착용을 인지하는 순간 도로 현황을 이용해 치밀하게 사망사고를 계획하고 실행할 판단력이 있었는지에 대해 "상당한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사고 이후의 행적 역시 쟁점이었다.
검찰은 A씨가 적극적으로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차량 견인에만 관심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주변 사람들에게 119 신고를 여러 차례 재촉했고, B씨 가족에게 헌혈을 부탁하거나 병원비를 내고 면회를 다녔던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당황한 일부 이례적인 행동만으로 살인의 고의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살인은 무죄, 위험운전치사 징역 4년
결국 1심 재판부는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음주운전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2심)에서 검찰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하면서 형량이 달라졌다.
2심 재판부 역시 살인은 무죄로 보았지만, 위험운전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또한 "살인죄의 미필적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해 형이 확정되었다.
판결이 남긴 의미
이 사건은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아무리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더라도, 그것이 곧 형법상 '살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엄격한 원칙을 재확인한 사례다.
간접증거만으로 살인을 인정하려면 동기, 수단, 과정, 태도 등 모든 측면에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