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수사받던 내 사건, 왜 갑자기 사라졌나? '킥스 증발' 미스터리 추적
성범죄 수사받던 내 사건, 왜 갑자기 사라졌나? '킥스 증발' 미스터리 추적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에 따른 시스템의 허점… 피의자 방어권 침해 우려도

성범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A씨가 형사사법포털(킥스·KICS)에 접속했더니, 자신의 사건이 '0건'으로 조회됐다. 무슨일이 벌어진 걸까?/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경찰에서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공백'이 원인으로, 피의자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범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A씨. 변호사 선임을 위해 형사사법포털(킥스·KICS)에 접속했다가 자신의 사건이 '0건'으로 조회되는 황당한 상황을 마주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수사 중’으로 표시되던 사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A씨의 머릿속은 “사건이 취하됐나? 아니면 더 큰 문제가 생긴 건가?” 하는 생각들로 순식간에 복잡해졌다.
이처럼 수사 중인 형사사건이 킥스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은 피의자나 피해자에게 극심한 혼란과 불안을 안겨준다. 이 시스템은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에 따라 운영되는 대국민 서비스지만, 때로는 그 편리함이 되레 독이 되는 순간이다.
사건이 사라진 게 아니다, 기관 간 '데이터 이사' 중
결론부터 말하면 A씨의 사건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경찰에서 검찰로 '이사' 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주소지를 잃었을 뿐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경찰 수사가 종결되고 사건이 검찰로 송치(送致, 수사기관이 사건을 검찰로 보냄)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공백'을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경찰이 수사를 마치고 '송치 결정'을 내리면, 경찰 내부 시스템과 킥스에서는 해당 사건이 '처리 완료'로 분류된다. 이 순간 피의자가 보는 킥스 화면에서는 사건이 사라진다.
검찰이 사건 기록을 넘겨받아 새로운 사건번호(통상 '형제번호'라 불림)를 부여하고 시스템에 입력하기까지는 물리적인 시간이 걸린다. 바로 이 시차(Time Lag)가 피의자에게는 '사건 증발'이라는 미스터리로 다가오는 것이다.
특히 A씨의 경우처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이 적용되는 사건은, 피해자 보호나 수사 보안을 위해 정보 접근이 일시적으로 제한되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불안하다면? 전문가들의 만장일치 해법 '수사관에게 직접 문의'
그렇다면 A씨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법률 전문가들은 만장일치로 '담당 수사관에게 직접 연락할 것'을 권고했다. 온라인 시스템의 정보 변동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수사를 직접 담당했던 책임자에게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빠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검사 출신 안영림 변호사는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담당 경찰에게 직접 문의해 송치 여부와 송치된 검찰청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조언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변호사는 피의자를 대신해 공식적으로 수사기관에 사건 진행 상황을 문의하고, 검찰 송치 후 새로 부여된 사건번호를 파악해 체계적인 법적 조력을 제공할 수 있다. 성범죄 사건은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깜깜이' 수사 우려… 피의자 알 권리와 시스템 개선 과제
'킥스 증발' 현상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헌법이 보장하는 피의자(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의 방어권과 직결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이 어느 기관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깜깜이' 기간 동안, 피의자는 의견서 제출이나 증거 신청 등 방어권을 행사할 적절한 시점을 놓칠 수 있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목표로 하는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에서 검찰로 사건이 송치되면 '검찰 송치 진행 중'과 같은 중간 상태를 표시해주거나, 경찰 사건번호와 새로 부여될 검찰 사건번호를 연동해 추적할 수 있도록 기능을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형사사법 시스템이 행정 편의를 넘어, 절차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권리를 충실히 보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