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권하는 우리 사회..."파산·회생 문턱 낮추고 안전망 견고히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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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권하는 우리 사회..."파산·회생 문턱 낮추고 안전망 견고히 해야"

2019. 06. 03 05:5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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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mi@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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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민정 기자

대한민국 가구당 평균 채무액은 7천만원, 임대소득이 있는 가구의 경우 2억원이다.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5백만원선인 것을 생각하면, 대다수 가구가 떠안고 있는 빚의 액수는 소득에 비추어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1분기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사람은 자그마치 2만 3319명.

개인회생은 개인이 일정기간 꾸준히 채무를 변제하면 나머지를 탕감해 주는 제도다. 그만큼 이 사회에는 빚에 눌려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파산·회생’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1997년, 김관기 변호사는 사무실을 개업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자칭 ‘파산쟁이’로 살아왔다. ‘서민의 빚 문제’에 있어서는 김 변호사만한 전문가를 찾기가 어렵다.


빚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자살한 사람의 아내와 아이들, “김 변호사 당신 때문에 겨우 살 수 있게 되었다”며 아직까지 잊지 않고 연락을 하는 사람, 최선을 다해 빚을 갚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갚지 못해 사기죄로 징역을 산 사람...


오래 기억에 남는다며 그가 거론한 사람들이다. 김 변호사는, 이들 모두가 “빚 권하는 우리 사회의 피해자”라고 했다. 그리고 이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서민이었다.


“파산제도는 자본주의 사회의 안전망,

창업 진작을 위해서도 꼭 필요해”


“우리가 자본주의를 택하고 그에 따른 사회를 형성한 이상, 파산제도라는 안전망 또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김 변호사는 “현대의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에게 자기 능력을 넘어서는 빚을 쥐어주면서 소비하게 하고, 아이를 양육하게 하고, 창업하게 하고, 자녀를 교육하게 하는 것이 작동원리”라고 설명했다.


자기 능력만큼만 소비 수준을 정하고, 능력 범위를 넘어선 사업을 꺼리는 사람들은 이 자본주의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파산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경제활동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어 타격을 입는 순간도 생깁니다. 그런 때, 시장경제질서에 순응해 채무를 지면서까지 나라의 산업을 직간접적으로 성장시킨 사람들에게 출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건 가혹한 일입니다.”


특히 창업 장려와 관련해서는 더욱 뒷받침되어야 할 부분이 이 파산제도라고.

“사업이라는 건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그 실패의 경험이 밑거름 되어 더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하게 되는 거지요. 요즘 강조하는 ‘혁신’ 사업 분야라면 더욱 높은 실패의 확률을 안고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파산제도라는 안전망이 깔려 있지 않다면, 어느 누가 망하면 끝이 될지도 모를 일에 감히 도전하겠습니까?”


그는 이처럼 개인이 감당 못한 채무 문제를 국가가 해결해 주지 못하면, 그것이 고스란히 사회 문제로 나타난다고 꼬집었다. 그런 경우가 바로 빚 때문에 일가족이 목숨을 끊어 버리는 사례들이다.


“파산제도 이용하지 그랬냐고?

문턱 너무 높아 쉽지 않은 일”





빚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을 향해 “제도적으로 도움 받을 방법이 있었다”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 변호사는 “절차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일갈했다. “12년 전, 파산제도가 상당히 잘 운용되던 그때만큼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가 비유로 설명했다.

“우리가 출국을 하려는데 공항에서 ‘나가선 안 되는 사람’ 잡겠다고 열이면 열, 모든 사람의 짐을 오랜 시간 이 잡듯이 뒤진다고 한다면, 그것 때문에 나라 밖으로 안 나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진짜 나가면 안 될 사람들은 그래도 어떻게든 빠져나갑니다. 문제는 나가도 되는 사람들이 그 절차가 싫어 아예 안 나가게 된다는 겁니다. 까다로운 절차가 심리적으로 장애 요인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지금의 파산·회생절차가 같은 모습이란 이야기다.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 제도 이용이 절실한 사람들을 가로막고, 심하게는 사지로도 내몰고 있다.


그는 “우리 법원이 좀 더 전향적이 되어야 한다”면서 “제도 이용이 더욱 쉬워지도록 문턱을 낮추고, 채무에 대한 법원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젊은이들과 패기 넘치는 기업가들은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려고 분투하는데, 그럼 사람들이 자금 융통하다가 상황 삐끗하면 징역 보내버리는 게 지금의 법원”이라며, 김 변호사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공익활동 보고하지 않아

대법원까지 간 사연


“재판은 기술로 하는 것이니 법리적으로 이겨 그 부분 승소 판결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공익활동 보고에 대한 제 생각이 받아들여진 것이냐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있지요.”


변호사에겐 공익활동 의무란 것이 있다. 2015년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러한 공익활동을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에게 천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가 말했다.

“시민에겐 저항권이 있습니다. 헌법학자들은 대부분 이 저항권을 ‘실력행사를 통한 혁명권’의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불합리한 규제에 소극적으로 따르지 않을 권리입니다.”


그에겐 그 규정이 불합리한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공익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직업입니다. 그런 공익활동을 회칙에다 의무사항으로 만들더니 그것을 보고하라니요. 이건 ‘변호사들이 공익을 위하고 있지 않다’는 선언이나 다를바 없는 ‘도덕적 자살행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또한 변호사로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 무료 상담이나 변론을 해주기도 하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얼마씩 기부를 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협회에 보고하라는 지시는 도저히 따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변호사는 공무원이 아닙니다. 우리 법조 역사의 위대한 변호사들을 떠올려 보면, 그분들은 야성이 충만해 부조리와 권력에 대항한 사람들입니다. 선진국의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이지요. 변호사들은 온갖 규제로 억눌러야 하는 집단이 아니라, 자유롭게 각자의 사명에 따라 활동하게 해줘야 할 사람들입니다.”


"변호사, 부자 될 직업은 아니지만

보람 있는 직업"



변호사로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던 그 시절 어려움이 아직도 기억난다는 그다.

그래서인지, 지금 막 시장에 나온 청년 변호사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저들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변호사들 어깨 위에 얹어놓은 각종 공익활동 의무나 교육 수강 의무, 소득 수준과 무관한 일률적인 회비 납부 의무나 여러 광고 규제가 불합리하게 여겨진다”는 게 그의 말이다.


요즘처럼 변호사 숫자가 많아져 개인이 시장에서 자리 잡는 것도 수월치 못한 상황에선, 이런 규제들이 변호사라는 직업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위협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변호사가 부와 직결되는 직업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이전의 ‘한참 좋았던 시절’에야 변호사가 상당한 부를 누리는 사람으로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중산층 정도로 여겨야 맞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지금 변호사업계에 대해서는, 정부나 협회가 이전에 해 오던 전체주의적이고 관 주도적인 통제 방식을 과감히 깨뜨려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업계에 활력이 돌 수 있도록 많은 권한과 자율을 허락해야 하고, 변호사 개인은 송무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스스로 위치 찾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당신 덕분에 살았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저는 그 말을 한 번이라도 듣는 사람은 인생 성공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중대한 문제를 그의 편에서 함께 해결해 주는 변호사란 아주 보람 있는 직업입니다. 변호사가 직업윤리 지키면서 자기 일을 충실히 한다면, 바로 그 자체가 공익입니다.”


이렇듯 그는 변호사라는 자신의 직업에 건강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농담처럼 ‘벼넥시트’ (‘British’와 ‘Exit’의 합성어인 ‘브렉시트’에 빗대어 만든 말. ‘변호사 탈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를 말하는 그이지만, 변호사업계와 후배들을 위하는 그의 마음은 누구 못지않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상 촬영, 편집 : 이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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