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인 보증금, 월세로 임의 상계해도 될까
떼인 보증금, 월세로 임의 상계해도 될까
"어차피 못 받을 돈" 월세 미납으로 대응했다간 낭패
경매 배당서 오히려 불이익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서울의 한 원룸에 거주하는 임차인이 계약 종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자, 보증금 회수 불능액만큼 월세와 관리비를 내지 않으려는 이른바 '상계'를 고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임차인이 건물에 계속 거주하는 상태에서 임의로 차임 지급을 중단할 경우, 경매 배당 절차에서 오히려 불이익을 받거나 예상치 못한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손해 볼 순 없다"… 보증금 미달액만큼 월세 미납 고민
서울의 한 원룸에 거주 중인 임차인 A씨는 보증금 5,000만 원, 월세 59만 원, 관리비 15만 원에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종료 시점에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으나 임대인은 건물을 매각해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통보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건물은 경매 절차에 들어가고 말았다.
A씨는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마치고 임차권 등기와 배당요구 신청까지 완료하며 법적 대항력을 갖췄다. 그러나 선순위 근저당 설정일 기준으로 적용되는 소액임차인 최우선변제금 한도는 3,800만 원에 불과했다.
보증금 중 1,200만 원을 떼일 위기에 처하자 A씨는 "어차피 못 받을 보증금 차액만큼 매달 내야 하는 월세와 관리비를 차감하는 방식으로 계속 거주해도 되는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계속 거주하면서 월세 임의 상계, 가능할까
임대차가 종료되었음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 임대인에 대한 보증금 반환채권을 이유로 월세를 내지 않고 떼인 보증금에서 깎아 나가는 행위는 실무에서 종종 논의된다.
민법 제493조의 취지에 따라 상계는 상대방에 대한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으로 효력이 발생하므로 이론상 임대인의 동의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법무법인 쉴드의 이진훈 변호사는 "임대차계약 종료 후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으면 임차인은 보증금 반환채권을 자동채권으로 삼아 월차임 채무와 상계할 수 있다"면서 "상계는 일방의 의사표시만으로 효력이 발생하며 상대방 동의는 불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거주를 지속하는 동안 월세를 완전히 끊는 조치는 법리적 위험을 유발할 수 있다. 임차인이 해당 목적물을 계속 점유하면서 사용·수익하고 있다면 차임 지급 의무 자체가 소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테헤란의 황인 변호사는 "임차인의 차임지급의무와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의무는 동시이행관계가 아니라, '목적물 반환의무'와 '보증금반환의무'가 동시이행관계에 있다"며 "계속 거주하는 동안에는 보증금반환채권이 이행기에 도달했다고 보기 어려워 민법상 유효한 상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리비는 월세와 별개… 경매 배당 절차서 명도확인서 지연 위험도
월세 외에 매달 발생하는 관리비 15만 원을 보증금과 상계하는 행위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관리비는 임대료와 달리 청소비, 공용 전기, 수도료 등 실비 정산 성격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아 보증금과의 일률적인 상계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법률사무소 도결의 최우준 변호사는 "관리비는 약정 내용에 따라 공용전기료, 수도료, 청소비 등 실제 사용·유지비 성격이 섞여 있어 차임처럼 일률 상계가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며 "이를 함께 미납하면 별도 채무로 남아 분쟁이 생길 위험이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사건을 심리하는 집행법원의 경매 배당 절차에서도 미납 월세는 치명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윈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의 한장헌 변호사는 "경매 배당금은 '경매개시결정 등기 시점'의 보증금을 기준으로 산정되므로 월세를 안 내서 보증금에서 차감되더라도 법원은 당초 계약서상 보증금을 기준으로 배당한다"며 "배당금 중 미납 월세에 대해 배당이의가 들어오거나 임대인 또는 경락인이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경매 낙찰 후 실제 배당금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낙찰자로부터 '명도확인서'를 전달받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차임 연체로 인해 낙찰자나 임대인과 분쟁이 발생하면 명도확인서 발급이 거부되거나 지연되어, 결과적으로 배당금 수령 시기 자체가 대폭 뒤로 밀릴 수 있다.
문자 통보도 가능하나 '내용증명' 권장
전문가들은 상계 의사를 전달할 때는 가급적 서면 기록을 명확히 남길 것을 당부한다.
문자메시지나 카카오톡 통보도 법적 의사표시로서 증거 효력이 인정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채권액과 기간을 명시하여 내용증명 우편으로 발송하는 편이 향후 재판이나 배당절차에서 증명력을 확보하기에 유리하다.
법률사무소 지헌의 임대환 변호사는 "현재처럼 임차권등기, 배당요구, 경매가 진행 중인 사안은 상계 방식에 따라 배당액과 점유 정당성 다툼이 달라질 수 있다"며 계약서와 배당 예상표를 종합적으로 살펴 신중히 대응할 것을 권고했다.
결국 최우선변제금에 미달하는 보증금 차액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월세를 무단으로 끊는 자력구제 방식보다는, 차임을 정상 납부하면서 배당기일을 주시하거나 임대인의 다른 재산을 파악해 별도의 채권회수 절차를 밟는 것이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