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저격수' 안민석, 9년 만에 2천만 원 배상 판결…'정의'는 '비방'이 됐다
'최순실 저격수' 안민석, 9년 만에 2천만 원 배상 판결…'정의'는 '비방'이 됐다
안민석, 최순실에 2천만 원 물어내

최순실, 재판 출석 / 연합뉴스
2016년 겨울,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정농단 사태의 한복판에서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핀 결정적인 발언들이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자금 조 단위가 최순실 일가로 흘러갔다", "스위스 비밀계좌에 꽂힌 돈의 주인이 최순실이다",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 회장을 만나 검은 이익을 챙겼다".
당시 '최순실 저격수'를 자처했던 안민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입에서 나온 이 충격적인 폭로들은 그를 일약 '청문회 스타'로 만들었지만, 9년이 지난 지금 법원은 그에게 2천만 원이라는 배상 책임을 지우며 냉혹한 판결을 내렸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항소3-2부는 21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가 안 전 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2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정농단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제기된 의혹이라도, 최소한의 사실 확인 없는 폭로는 용납될 수 없다는 사법부의 엄중한 경고가 내려진 셈이다.
1심 승소, 2심 패소, 대법원 파기... 반전 거듭한 9년의 진실 게임
이번 소송의 흐름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최 씨는 지난 2019년, 안 전 의원의 허위 사실 유포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은 안 전 의원의 무대응으로 최 씨가 승소했지만, 2심은 "국회의원으로서 국정농단 의혹을 제기하고 수사를 촉구한 것은 공익적 활동"이라며 안 전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공익성'이라는 명분이 '허위 사실'까지 덮어줄 수는 없다는 취지로 사건을 다시 하급심으로 돌려보냈고, 이번 파기환송심은 그 대법원의 취지를 확정한 것이다.
"카더라 통신을 내 수사 결과처럼"... 법원이 콕 집어낸 '가짜 정의'
재판부가 안 전 의원의 책임을 인정한 핵심 근거는 '검증 없는 확신'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안 전 의원은 항간에 떠도는 의혹이나 제3자의 불분명한 발언을 인용했음에도, 이를 마치 자신이 직접 발로 뛰어 확인한 객관적 사실인 것처럼 포장해 대중에게 전달했다.
재판부는 "피고의 발언으로 원고에 대한 비난 수위가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지는 데 일조했다"고 지적하며, 단순히 의혹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선 안 전 의원의 단정적 태도를 문제 삼았다.
'진실성'과 '상당성'... 사법부가 엄격히 들이댄 '팩트 검증기'
특히 법원은 '진실성'과 '상당성'이라는 법적 잣대를 엄격히 들이댔다.
우리 법리는 공익을 위한 발언이라도 그것이 진실이거나, 적어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합당한 근거(상당성)가 있어야 면책된다고 본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수사가 모두 마무리된 지금까지도 안 전 의원의 발언 내용과 원고의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특검과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에도 불구하고 안 전 의원이 주장한 '스위스 계좌'나 '방산 비리 연루설'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기에, 이는 진실도 아닐뿐더러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도 부족했던 '허위 폭로'였다는 결론이다.
"면책특권 뒤에 숨을 수 없다"... '아니면 말고'식 폭로의 비참한 말로
이번 판결은 정치권의 고질적인 '아니면 말고' 식 의혹 제기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
국회의원은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해 면책특권을 가지지만, 국회 밖에서 방송과 언론을 통해 유포한 허위 사실까지 보호받을 수는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공인인 최 씨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폭넓게 허용되어야 마땅하나, 그것이 근거 없는 '카더라 통신'을 사실인 양 둔갑시켜 인격권을 침해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원의 확고한 시각이다.
결국 '정의 구현'을 외쳤던 안 전 의원의 목소리는 법정에서 '근거 없는 비방'으로 규정되었다.
2천만 원이라는 배상액은 단순한 금전적 손실을 넘어, 사실 확인이라는 기본을 건너뛴 정치적 선동이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임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