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에 징역 25년 선고 뒤 "유족 입장에서 부족하다고 느낄지도…" 글 남긴 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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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에 징역 25년 선고 뒤 "유족 입장에서 부족하다고 느낄지도…" 글 남긴 재판부

2021. 11. 12 17:32 작성2021. 11. 19 09:31 수정
강선민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mea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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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처럼 지내던 친척 어른 향해 칼부림한 40대 남성

1심 재판부, 징역 25년 선고하며 판결문 끝에 피해자 유족 향한 글 붙여

40대 남성이 친척 어른을 향해 90차례가 넘게 칼을 휘둘렀다. 살인죄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가해자를 '심신미약'으로 선처해야 했던 재판부. 여느 때처럼 평서문으로 끝마친 판결문 뒤에, 유족을 향해 존댓말로 남긴 글을 덧붙였다. /연합뉴스·편집=조소혜 디자이너

A씨는 수년째 누군가 자신의 곁에서 일부러 시끄러운 소리를 계속 만들어낸다고 믿었다. 급기야는 그 사람이 자기 생각마저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A씨는 그게 종숙모(아버지의 사촌형제 부인)인 B씨의 소행이라 굳게 믿었다.


그의 비뚤어진 믿음은 끝내 끔찍한 범죄로 이어졌다. A씨는 종숙모 B씨를 향해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렀다. 부모처럼 다정했던 종숙모를 살해하고 재판에 넘겨졌지만 A씨는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런 A씨를 심신미약으로 법률에 따라 '선처'할 수밖에 없었던 재판부는 판결문 끝에 B씨의 유족을 향한 글을 담았다.


다정했던 친척을 향한 뜻 모를 분노⋯90차례 가까이 찔려 사망한 피해자

사건이 벌어진 건 지난 2019년 7월, 이른 새벽이었다.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다 벌컥 화를 내게 된 A씨. 그런데 A씨의 분노가 엉뚱한 방향으로 뻗쳤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화를 낸 건, 종숙모 B씨가 머릿속을 조종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 것. 그 길로 A씨는 부엌에서 식칼을 꺼내 들고 곧장 B씨의 집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아침 일찍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던 B씨. A씨는 이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을 저질렀다. 판결문 속에 담긴 A씨의 범행은 너무나 참혹했다. 판결문에는 그가 휘두른 칼이 B씨의 얼굴부터 몸 곳곳에 90차례 넘게 꽂혔다고 쓰여 있었다.


이 사건 1심을 맡은 대구지법 안동지원 형사부(재판장 박찬석 부장판사)는 "범행 수법이 너무나 참혹하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피해자 유족들이 A씨 가족에게 피고인의 병을 치료할 것을 수차례 충고해왔다"면서 "그런데도 A씨를 그대로 방치하는 바람에, 이 사건 범행이 일어났다고 원통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심신미약 등 고려해 징역 25년 선고한 1심⋯이례적으로 판결문 끝에 유족 향한 글 남겨

하지만 재판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A씨가 앓고 있는 병은 범행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형량을 깎아줘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기 때문. 우리 형법이 심신미약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는 처벌하지 않거나, 그 책임을 감경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서다(제10조).


지난 2019년 10월, 결국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여기에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15년간 부착하도록 했다. 하지만 재판부 또한 이 같은 판결을 내놓는 것이 괴로웠던 듯 보였다. 실제로, 판결문에는 '무기징역'을 고민했던 흔적이 보였다.


1심 재판을 맡았던 박찬석 부장판사는 판결문 끝에 '재판부의 입장'이라는 별도의 글을 이례적으로 병기했다. 일반적으로 '~한다'는 식의 평서문으로 쓰는 대신, 피해자의 유족을 향해 존댓말로 써 내린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영면하신 피해자와 그 유족분들에게 우리 재판부는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유족들 입장에서는 오늘 판결 내용이 오히려 부족하다고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재판부로서는 (중략) 최선을 다하여 이 사건을 정성껏 심리하고 판단하려 노력하였음을 밝힙니다. (중략) 유족들 한 분 한 분에게는 조금이나마 마음의 상처에 위안이 되고 하루빨리 평안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가 판결문 끝에 붙인 입장문 전문. /대구지법 안동지원 제공
이 사건 1심 재판부가 판결문 끝에 붙인 입장문 전문. /대구지법 안동지원 제공


항소심에서 징역 25년→징역 30년으로⋯재범 막기 위해 치료감호 명령

이 판결 이후에 A씨는 "형이 너무 부당하다"며, 검찰은 "형이 너무 가볍다"며 동시에 항소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법원은 A씨에게 원심보다 더 높은 형량을 선고했다.


대구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박연욱 부장판사)는 원심을 파기하고,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도 유지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책임에 비해 형이 가볍다"고 판시했다.


다만, 1심과 달리 치료감호를 받도록 했다. A씨의 재범을 막으려면,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검찰 측 청구를 받아들인 결과였다. 치료감호가 선고되면, 징역 기간을 교도소 대신 치료감호시설에 수용돼 치료를 받는다.


A씨는 끝까지 "나는 문제 없다"라면서 상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은 A씨가 30년간 치료감호를 받아야 한다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보건복지상담센터(☎129), 정신건강위기상담(☎1577-0199), 자살예방상담(☎1393) 등에 전화하여 24시간 상담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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