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 하나에 100만 원" 텔레그램 유혹의 덫… 모텔 감금·폭행으로 끝난 '4억 세탁'
"계좌 하나에 100만 원" 텔레그램 유혹의 덫… 모텔 감금·폭행으로 끝난 '4억 세탁'
텔레그램으로 대포통장 모집해 4억 7천만 원 세탁한 일당 25명 검거
돈 빼돌리자 미성년자 포함된 '출동팀' 보내 감금하고 차용증 강요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고액 알바'의 유혹은 달콤했지만 그 끝은 참혹했다. 텔레그램을 통해 대포통장을 사들여 보이스피싱 자금 수억 원을 세탁하던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단순한 사기 행각을 넘어, 조직의 돈을 빼돌린 공범을 모텔에 감금하고 무차별 폭행까지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화려한 고수익을 미끼로 던진 뒤, 쓸모가 없어지거나 배신하면 가차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MZ 조폭' 형태의 신종 금융범죄 실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텔레그램 뒤에 숨은 '20대 총책'과 미성년자 행동대원들
사건의 전말은 지난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대 총책 A씨와 부총책 B씨는 텔레그램을 범죄의 본거지로 삼았다. 이들은 "통장을 빌려주면 개당 50만 원에서 100만 원을 주겠다"는 광고를 내걸고 소위 '대포통장 제공자'들을 대거 모집했다.
A씨 일당은 이렇게 확보한 대포통장을 이용해 국내외 피싱 조직의 범죄 수익금을 세탁해 주는 역할을 맡았다. 3월부터 6월까지 불과 넉 달 사이 이들이 주무른 돈만 무려 4억 7천만 원에 달한다.
이들의 범행은 치밀하고 조직적이었다. 단순히 돈만 세탁한 것이 아니었다. 총책의 지시를 받는 부총책, 그리고 실제 현장을 뛰는 '출동팀' 등으로 역할을 철저히 나눴다. 특히 충격적인 점은 조직의 손발이 되어 움직인 출동팀 5명 중 3명이 미성년자였다는 사실이다. 판단력이 흐린 청소년들까지 범죄의 최전선으로 내몬 셈이다.
"내 돈 어디 갔어?" 배신자는 모텔 감금… '조폭 영화' 방불
범죄 조직 내부의 균열은 '돈' 때문에 발생했다. 지난 5월과 6월, 대포통장을 제공했던 이들 중 2명이 조직의 자금을 몰래 빼돌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알아챈 A씨 일당의 보복은 잔혹했다. 이들은 부산 사하구와 경기도 부천시 일대 숙박업소를 급습해 통장 제공자 2명을 강제로 끌고 가 감금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졌고, 공포에 질린 피해자들에게 강제로 차용증을 작성하게 만들었다.
'쉬운 돈벌이'를 꿈꾸며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갔던 이들은 결국 범죄의 도구로 쓰이다가 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이 같은 혐의로 일당 25명을 검거해 총책 A씨 등 9명을 구속하고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단순 사기 아닌 '범죄단체'… 조직적 범행 엄단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법조계의 시각은 엄중하다. 단순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을 넘어 조직적인 체계를 갖춘 '범죄단체'로 볼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대법원 판례(2017도8600)에서 정의한 범죄단체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지적한다. 총책을 중심으로 간부와 행동책(출동팀) 등으로 역할이 분담되어 있고, 내부 위계질서와 통솔 체계를 갖췄기 때문이다.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될 경우, 단순 가담자라 하더라도 조직의 범죄 목적을 알고 활동했다면 훨씬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또한, 이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의 적용을 받는다. 피싱 범죄는 중대범죄에 해당하며, 대포통장을 이용해 자금의 출처를 숨긴 행위는 명백한 범죄수익 은닉 및 가장 행위다. 4억 7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세탁한 만큼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는 평가다.
통장 빌려준 사람도 '공범'이자 '업무방해'
주의해야 할 대목은 감금·폭행을 당한 피해자들 역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 제6조는 대가를 바라고 접근매체(통장, 카드 등)를 양도하거나 대여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법원은 유사 사례(인천지방법원 2022노3406)에서 대포통장을 모집하거나 제공한 행위에 대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를 인정해 왔다. 또한, 이들이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 '금융거래 목적'을 허위로 기재했다면 은행에 대한 '업무방해죄'까지 성립할 수 있다. 피해자라는 위치와 별개로, 범죄 자금 세탁의 '도구'를 제공한 혐의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감금·폭행에 강요죄까지… "중형 선고 불가피"
숙박업소에서 벌어진 감금과 폭행은 형법상 감금죄(제276조)와 폭행죄(제260조)에 해당한다. 더 큰 문제는 폭행 후 억지로 받아낸 '차용증'이다.
이는 형법 제324조의 '강요죄'에 해당한다. 법원은 폭행이나 협박으로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을 강요죄로 처벌하고 있다. 판례(대전지방법원 2023고합388)에 따르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허위 차용증에 서명하게 한 행위는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강요죄가 인정되어 가중 처벌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총책 A씨와 주범들은 범죄수익은닉,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감금, 폭행, 강요 등 다수의 혐의가 병합되어 재판을 받게 될 전망이다. 미성년자를 범죄에 가담시키고 잔혹한 사적 제재까지 가했다는 점에서 재판부가 이들에게 법정 최고형에 가까운 중형을 선고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