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유 뿌리고 과일 던지고⋯남의 집 설 선물로 아파트 난장판 만든 초등생이 지게 될 책임
식용유 뿌리고 과일 던지고⋯남의 집 설 선물로 아파트 난장판 만든 초등생이 지게 될 책임
설 명절 맞아 받은 선물세트 뜯고, 사방팔방에 뿌리고⋯난리 쳐 놓은 초등학생들
식용유 밟고 미끄러진 주민까지⋯이 사고 누가,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설을 목전에 두고 집집마다 배송돼 있던 설 선물세트와 택배들이 훼손되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들이 벌인 일이었다. /온라인커뮤니티 '클리앙' 캡처⋅셔터스톡⋅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아파트 복도와 계단에 뿌려진 밀가루와 식용유, 나뒹구는 과일. 도어락에 치덕치덕 발라진 로션까지⋯. 설을 목전에 두고 벌어진 해괴한 사건에 한 아파트가 발칵 뒤집혔다. 집집마다 배송돼 있던 설 선물세트와 택배들이 훼손되며 벌어진 일이다.
'범인'은 다름 아닌 이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 3인방이었다. 이들은 아파트 동을 넘나들면서 택배들을 뜯고 집어 던지면서 놀았다. 이로 인해 복도와 계단에 뿌려진 식용유를 미처 못 본 한 주민이 미끄러지며 다치는 일까지 발생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벌어진 '참사'에 주민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초등학생이니 아무런 책임도 못 묻는 게 아니냐면서 막막해하는 상황. 이 사고는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 걸까?
우리 형법은 형사미성년자, 즉 만 14세가 되지 않은 아이의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제9조). 이 때문에 만 13세 미만인 초등학생에겐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형사상 책임에 한해서일 뿐이다. 민사상 책임은 초등학생이라도 피할 수 없다.
우리 민법은 고의나 과실로 위법행위를 하고, 이로 인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배상하도록 명시하고 있다(제750조). 만일 손해를 입힌 사람이 미성년자라면 법정 감독의무자가 그 책임을 대신 져야 한다(제755조).
이에 따르면 아이들이 망가뜨린 선물세트와 택배 등에 대해 부모가 물어내야 한다는 결론이다. 또한 식용유를 밟고 넘어진 주민에 대해서도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사건을 본 익명의 A변호사는 "원칙적으로 형법상 과실치상죄가 성립할 수 있는 사건이지만, 행위자가 미성년자여서 처벌은 안 된다"며 "그렇더라도 아이들이 뿌린 식용유로 인해 다친 주민에 대해선 의료비 등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고 전했다.

명절 인사를 나눌 목적으로 주고 받은 선물을 훼손한 상황. 이 선물들은 명절에 무사히 받지 못하면 본래 목적을 다하지 못한 셈이 된다. 단순히 훼손된 물품 가액 이상의 손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일반적인 범위의 손해를 넘어서서, 특별히 발생한 손해에 대해선 민사상 '특별손해' 책임이 인정될 수도 있다(제393조 제2항). 특별손해는 계약관계뿐 아니라 이번 사안처럼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도 적용 가능하다(제763조).
상법에선 설이나 추석, 결혼기념일 같이 '특정날짜'가 지켜져야 하는 거래를 별도로 규정하기도 한다(제68조). 똑같은 물건이라도 정해진 일시나 기간 내에 계약이 이행되지 않으면 거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한정하는 개념이다.
초등학생들이 망가뜨린 선물세트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설에 온전히 받았어야 하는 선물세트를 훼손해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A변호사는 "행위자(미성년자)가 설 선물이란 걸 알면서도 뜯어버리는 등의 훼손행위를 했다면 특별손해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다"고 아이들은 주장할 수 있다.
만일 그렇다고 해도 손해액에 감안될 것이라고 A 변호사는 말했다. 설 특수를 감안해 대체물이나 동일물을 빠르게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 인정될 것이라는 취지였다.
"애가 한 일인데요"라는 변명은 이번 사건에선 통하지 않을 듯하다.
뜻밖의 사고를 저지른 초등학생의 부모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