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 초등학생' 변호사는 1시간을 기다렸지만 '30초' 진술할 수 있었다
'성폭행 피해 초등학생' 변호사는 1시간을 기다렸지만 '30초' 진술할 수 있었다
10년째 여성⋅아동 피해자들 변호해 온 김예원 변호사
"이제 피해자 변호사로서 가정법원 재판 출석 안 하겠다" 선언한 이유
"소년법 취지 알지만⋯피해자가 불청객인 재판에서 피해자 권리 어떻게 찾나"

한 변호사가 "피해자 변호사로서 가정법원 재판에 출석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힘들거나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무력감을 느끼고 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그래픽 및 편집=조소혜 디자이너
"기자님, 저는 이제 피해자 변호사로서 가정법원 재판에 출석 안 하려고요."
힘들거나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핑계로 들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째 여성⋅아동 인권침해 사건에서 피해자들을 변호해 온 김예원 변호사(39⋅장애인권법센터)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김 변호사가 법률 지원한 피해자들은 1000명이 넘는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범죄 피해자를 도운 변호사 중 하나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다는 건, 가정법원 재판이 운영되는 방식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이유'를 물어봤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 변호사가 불청객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며 "재판에 가봤자 너무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30초. 이날 김 변호사가 서울가정법원 법정에서 진술할 수 있었던 시간은 30초에 불과했다. 가해자는 초등학생을 성폭행해 구속된 소년범이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1시간을 기다려 진술할 기회를 얻었지만, 판사가 물어보는 것만 대답할 수 있었다. 피해자의 현재 '상태' 외에는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애초에 피해자 변호사뿐만 아니라, 피해자 역시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을 알지 못한다. 현행법상 가정법원 재판은 일반 형사재판과 달리 비공개가 원칙이기 때문이다(소년법 제24조). 재판 결과가 나오더라도, 역시 비공개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가해자가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 변호사가 재판에 가는 이유는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서인데 오히려 무력감을 느끼고 온다"며 "법원에서도 피해자 변호사를 보고 '어? 피해자 변호사가 뭐하러 온 거지?' 이렇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 변호사는 "수사기관 등에서 피해자 변호사에게 사건 통지를 안 해주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피해자에 대한 조사 일정이나, 사건이 언제 검찰로 넘어갔는지 등의 진행상황조차 공유받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김 변호사는 "요즘도 일주일에 30건 정도의 사건을 맡고 있다"며 그런데 "매주 한나절(6시간)은 수사기관 등에 '진행상황이 어떻게 됐느냐'고 일일이 전화를 돌리는 데 쓰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 경과를 먼저 통지해주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 변호사가 일일이 수작업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 번은 이런 적까지 있었다"며 "아동이었던 피해자가 밤에 단둘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을 뻔했다"고 말했다. 이때 역시 피해자 변호사에게는 아무런 통지도 없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 변호사가 버젓이 있는데 조사 일정을 알려줘야 할 것 아니냐"며 "당일에서야 이런 사실을 알고 막아 세웠다"고 말했다.
10년째 현장에서 활동해 온 김 변호사는 "그래도 나아지는 게 있다면, 딱 한 가지가 있다"며 "예전에는 이런 문제제기를 해도 (수사기관 등에서) 미안해하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미안해는 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바뀐 건 아무것도 없는 게 문제"라며 '한 가지'를 꼭 기사에 실어달라고 했다.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등 소년법의 취지는 저도 이해합니다. 일반 형사 사건보다 훨씬 섬세함이 필요한 게 맞습니다. 그런데 피해자에 대해서는 이런 섬세함이 전혀 체감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 측에 진술할 기회를 더 많이 줬으면 좋겠습니다. 피해자가 불청객인 재판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그러면서 소년법에도 "피해자의 진술권이 규정되어 있다"며 해당 조항을 기자에게 읊어줬다.
소년법 제25조2(피해자 등의 진술권) 소년부 판사는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 등이 의견 진술을 신청할 때에는 피해자나 그 대리인 등에게 심리 기일에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