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재판'으론 사법 신뢰 회복 불가...'시니어 판사 제도' 대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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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재판'으론 사법 신뢰 회복 불가...'시니어 판사 제도' 대안 될까

2019. 06. 28 02:43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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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mi@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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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셔터스톡

우리 헌법 제27조 1항은 ‘사법부에 재판을 요구할 권리’가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한다. 타인과 사이에 해결하기 어려운 분쟁이 생겼을 때, 그래서 국민은 제3자인 법관을 찾아가 판단을 받는다.


일부라도 패소한 쪽은 재판 결과에 불만을 갖기 쉽다. 하지만 결과가 아닌, 재판 자체에 불만을 토로하는 국민이 부쩍 늘었다. 이러한 ‘재판 불신’은 더 이상 생소한 일이 아니다.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있는 차성안 판사는, 2015년 10월 ‘시사IN’에 기고한 글에서 “재판 불신의 핵심은 충분한 시간이 없어 경청·대화·토론이 부재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국민은 “판사가 내 이야기를 충분히 안 들어줘서” 불만이기 쉽다는 것이다.


법관들은 한해에 평균 1천 건이 훌쩍 넘는 사건들을 담당하고 있다. 산술적으로 판사 한 명은 하루 서너 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기일에 잡힌 사건이 많으면 ‘3분 재판’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판사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견을 찾기 어렵다.


내 인생의 중대한 문제를 시간에 쫓기는 판사가 고작 3분 만에 넘겨 버리는 것을 기꺼이 수긍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헌법이 말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과연 ‘3분 재판’이어도 충분하다고 해줄 것인가.


“법관부족 현상에 ‘임시적이지만 필수적’ 대응,

‘시니어 판사 제도’ 본격 논의해야”


통상 영미법계 국가의 법관 채용은 ‘법조일원화’로, 대륙법계 국가들은 ‘직업법관제’를 취하고 있다. 한국은 대륙법계 국가에 해당하지만 오래 전부터 법조일원화 도입 논의가 있어 왔다.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는 직업법관제의 문제점을 ▲법관의 경험부족 ▲중도사직으로 인한 전관예우 문제 ▲법관의 관료화를 꼽으며, 법조일원화 도입을 주장한바 있다.


법관인사제도를 개선해 전보 없이 특정 분야 재판을 계속하게 하는 것을 전제로, 법관 임명에 ‘법조경력 5년 이상’ 조건을 요구하자는 것이다.


그 결과 2011년 법원조직법이 개정,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3년, 5년, 7년, 10년의 법조경력자를 법관으로 임용하게 됐다. 법조경력에는 검사, 변호사, 교수가 해당된다.


하지만 이러한 법조일원화는 만성적인 법관 부족 현상을 일정 부분 심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경력자 선발 숫자가 법관의 자연감소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수한 법조경력자 입장에서는, 처우 면에서 기존의 직을 떠나 법관에 지원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게 선발의 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 20일, 사법정책연구원(원장 강현중)과 국회입법조사처(처장 김하중)가 공동 개최한 ‘사법신뢰의 회복방안’에서 ‘시니어판사 제도’를 주제발표한 모성준 주 네덜란드 대한민국 대사관 사법협력관(전주지법 군산지원 부장판사)은, “법관부족으로 이어지는 이러한 일련의 현상에 ‘임시적이지만 필수적’ 대응책이 될 시니어 판사 제도를 논의하자”고 말했다.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하는 모성준 판사(사진 가운데) / ⓒ 박선우


모 판사는 “이렇게 법관부족 현상이 심화되면 숫자를 맞추기 위해 법관 선발 기준 자체를 낮추게 될 것이고, 그럴 경우 ‘▲경험이 충분해 통찰력과 용기가 있는 법관 ▲직무상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 법관 ▲기존 선례와 흐름에 맞서는 관료적이지 않은 법관의 선발’을 위해 도입한 법조일원화의 취지는 퇴색되고 만다”고 내다봤다.


시니어 법관은 이미 법관으로 선발됐던 인력을 해당 법관의 의사에 따라 다시 활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겪고 있는 법조경력자 법관 선발의 어려움은 확실히 해소될 거라는 게 모 판사의 견해다.


법관 부족 현상을 타개하면서 아울러 법조일원화의 취지까지 완성할 방안이기에, 시니어 법관 제도는 이제 필수적으로 논의해야 할 성질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각국의 시니어 판사 제도-

어떻게 운영되며,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시니어 판사 제도는 직업법관제를 취하는 대륙법계 국가보다 법조일원화를 취하는 영미법계 국가에서 더욱 활발히 운영된다.


모성준 판사는 “영국,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같은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만성적 법관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시니어 판사를 활용하는데, 그 활용도가 높다”고 전했다.


이어 “대륙법계 국가인 대만, 독일, 일본 등의 경우 활용도는 높지 않으나, 원로법관을 활용하는 법관우대제도(대만), 시간제 판사제도(독일), 간이재판소 판사 제도(일본)가 도입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미국 연방이 취하고 있는 시니어 판사 제도에 대해 그는 “시니어 판사가 처리하는 업무 비중이 매우 높아서 필수불가결한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니어 판사들로 인해 사건 적체와 업무 부담, 지역별 불균형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모 판사는 대표적인 미국의 시니어 판사로 잭 와인스타인(Jack Weinstein, 1921~)을 소개했다. 와인스타인 판사는 1967년 처음 법관으로 임명된 후 1993년 시니어 판사로 지위를 전환, 2018년 기준 97세의 나이에도 현직 판사와 동일하게 재판업무를 배당받았다. 그는 특히 어렵고 복잡한 소송을 명쾌하게 해결하는 판사로 통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의 상황은 우리와 다르다. 따라서 도입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노정될 것인데 모 판사는 “법관연금, 강제전보, 10년 임기제, 독립성 관련 이슈 등이 문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쟁점으로 △헌법상 법관의 임기 및 재임용 제도와의 해석상 융통성 △시니어 판사의 임명기준과 절차에 대한 체계정합적 검토 △시니어 판사의 지위와 임기 △시니어 판사의 사무분담 및 운영 형태를 들며, “앞으로 더욱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니어 판사 제도의 활용도가 높은 국가들의 공통점은 법관 정년이 연금수급권 발생 연령보다 높고, 법관인력 운영이 탄력적이어서 정원 외 판사로서 시간제나 일용제 근무가 가능한 점”이라고도 덧붙였다.


시니어 판사 제도 기대효과...

“전관예우 근절 기대하긴 어렵다” 주장도


시니어 판사로 법관 부족 현상이 해결되면 국민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갈까?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판사'에게서 받는 재판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모 판사의 말이다.


“판사가 사건 부담과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내 사건을 충분히 숙고해서 판단을 했다”는 국민의 확신, 이것이 곧 재판 신뢰이자 사법 신뢰로 이어진다는 해석이다.


대륙법계 국가에서 법관의 역할은 법률을 해석·적용하여 권리의무의 존부를 선언하는 데 그친다. 법률 분쟁뿐 아니라 규범이 부재한 영역에서 불거진 문제까지 종국적으로 해결하는 영미법계 법관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따라서 국민이 원하는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법관’은, 엄밀히 말해 직업법관제 하의 법관에게라면 기대하기 어려운 성격이다. 그러나 법조일원화가 도입된 지금, 이를 기대해 볼 여지가 생긴 것이다. 시니어 판사 제도가 함께 운영된다면 말이다.


이 시니어 판사 제도가 ‘전관예우 근절’ 효과를 가진 것으로 거론되는 것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입장들이 있다. 시니어 판사와 별개로, 기존 판사들의 중도 사직 이유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국법제연구원 최유경 박사는, 미국 연방의 시니어 판사 제도에 비추어 우리 제도 도입을 논하는 것 자체도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는 견해를 보였다.


“성직자에 준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임명되어 국민들로부터 성직자와 동등한 정도의 신뢰를 얻고 있는 미국의 법관과 달리, 우리 판사들은 그 정도 사명감으로 재판을 하거나 그 만큼의 신뢰를 얻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미국 판사가 우리와 달리 종신직인 것과,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높은 급여를 받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 법관이 얻고 있는 신뢰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최 박사는 “사법 행정권 남용으로 국민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실망감을 안겨준 판사들이, 정년을 지나서까지 재판 업무를 수행하게 해 달라는 내용의 ‘시니어 판사 제도’를 말하는 것이 어떻게 비춰질지는 모르겠다”면서 “마치 그동안 법관의 지위를 충분히 보장해 주지 않아 판사들이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되고 전관예우가 발생한 것처럼 말하는 일부 판사로 인해, 시니어 판사 제도 논의도 단지 판사의 지위와 처우 보장 수단으로서 나오는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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