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행당한 뒤 웃은 것은 피해자답지 않다"며 2심 '무죄' 판결⋯이를 본 대법원의 꾸짖음
"추행당한 뒤 웃은 것은 피해자답지 않다"며 2심 '무죄' 판결⋯이를 본 대법원의 꾸짖음
편의점주 성추행한 대기업 본사 직원⋯1심 유죄→ 2심 무죄→대법원에서 유죄 취지 파기환송
대법원 "2심, 진술 신빙성 의심했다면 추가적인 증거조사 했어야⋯추측만으로 뒤집은 건 잘못"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 요구하는 1⋅2심 판결 준엄하게 꾸짖고 있는 민유숙

지난 2018년 대법원에서 열린 민유숙 대법관 취임식에서 민유숙 대법관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막연한 추측만으로 1심의 판단을 뒤집을 수 없다."
성추행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던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왕창 깨졌다. 추가 조사도 하지 않고, 추측만으로 1심의 유죄 판단을 뒤집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2심은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강제추행이 아니다"고 판단했는데,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이를 강도 높게 꼬집었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이 나타나지 않음을 지적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그 결과 사건은 다시 유죄 취지로 뒤집혀 창원지법 항소부로 내려갔다.
이 사건은 지난 2017년, 편의점주(피해자)와 대기업 본사 직원(피고인 A씨) 사이에서 벌어진 강제추행 사건이었다. 당시 A씨는 업무 관련 명목으로 혼자 있던 피해자를 찾아갔다. 그러다 피해자의 머리를 만지고, 목을 껴안은 뒤 얼굴에 입맞춤한 혐의(강제추행)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유죄 판단과 함께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CC(폐쇄회로)TV영상이 이러한 진술을 뒷받침하고, 피해자에게 허위 신고의 동기가 없고, 두 사람의 연락이 잦았지만 업무상 연락이 많았던 점 등이 고려됐다.
하지만 2심은 다르게 판단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①피해자가 사건 발생 이후 이혼한 점과 ②CCTV에서 피해자가 종종 웃고 있던 모습 등을 지적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먼저 "피해자가 배우자로부터 외도를 의심받고 있었던 상황으로 보이는 만큼, 이혼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자신의 책임을 덜고자 A씨를 신고했을 가능성이 있다(①)"고 판단했다. 1심 판단과 달리 피해자가 허위로 신고했을 동기가 있다는 취지였다.
또한 "강제추행이 아니라 이성적 관계에서 장난을 치는 모습으로 보인다(②)"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소위 피해자스럽지 않다는 뜻이었다. "헛웃음이었다"고 한 피해자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은 "두 사람이 주말, 저녁 통화가 많았다"며 "갑을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2심 판단이 대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①에 대해서는 "원심(2심)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에 있어서 의문이 있다면, 추가적인 증거조사를 통해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하며 부차적인 사정만을 들어 1심의 판단을 뒤집고 막연한 추측에 기초해 증명력을 배척할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한 "피해자가 이혼 과정에서 이 사건을 앞세워 책임을 덜거나, 유리한 지위를 얻었다는 사정 또한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②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피해자가 마땅히 보여야만 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업무상 정면으로 저항하기 어려운 관계에 놓인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능한 정도로 거절 의사를 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주심을 맡은 민유숙 대법관은 지난달에도 '피해자다움'을 언급했었다. 성폭행 피해자가 피해를 입은 다음 날, '사과하라'며 가해자를 다시 찾아간 사건이었다. 당시 가해자는 이 행동을 물고 늘어졌다. '일반적인 성폭행 피해자라면, 가해자 집을 다시 찾아왔겠느냐'는 주장을 펼쳤다.
민 대법관은 이 사건에서 "피해자의 일부 언행을 문제 삼아 '피해자다움'이 결여됐다는 등의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며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 밖에도 미성년자 간음 행위에 대한 처벌 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기존에는 성관계 행위 자체를 속이는 정도가 돼야 '위계 간음'이 인정됐지만, 이제는 간접적인 속임수도 처벌된다.
그 결과 "레슬링 놀이를 같이하자"며 성관계 자체를 속인 것뿐 아니라 "좋은 남자를 소개해줄 테니 여관으로 오라"는 식으로 상황을 속인 것 역시 처벌 범위에 들어오게 됐다. 당시 민 대법관은 "성관계를 결심하는데 (속임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위계 간음에 해당한다"고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