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으려 뱃속에 마약 숨겨 밀수…'주범' 징역 9년, '방조' 연인 3년
빚 갚으려 뱃속에 마약 숨겨 밀수…'주범' 징역 9년, '방조' 연인 3년
위장 속 마약 원료 70알
국제 조직이 설계한 한국행의 진실

국제 마약 조직의 지시로 엑스터시 원료를 삼켜 밀반입한 주범은 징역 9년, "여행인 줄 알았다"며 범행을 도운 연인에게는 방조죄가 인정돼 징역 3년이 선고됐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2025년 8월 21일 저녁,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
영국 국적을 가진 A씨는 인천행 아시아나 항공편에 올랐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여행객이었지만, 그의 위장 속에는 향정신성의약품인 엑스터시(MDMA) 분말 원료 약 360g이 들어 있었다.
메추리알 크기로 소분해 하얀색 고무에 약 70여 개로 나눠 넣은 뒤 물과 함께 삼킨 것이다. 도매가 기준 약 1억 800만 원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A씨의 한국행은 성명불상의 국제 마약 조직이 설계한 것이었다.
이 조직은 A씨에게 마약 관련 채무가 있다는 점을 이용해 "타국에서 마약을 제조하면 빚을 탕감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조직은 항공권과 숙박비 명목의 자금을 송금했고, 한국 내 조력자를 통해 김해시 일원에 제조 시설까지 마련해 두었다.

숙소 화장실에서 드러난 진짜 목적
A씨는 같은 영국 국적을 가진 연인인 B씨와 함께 입국했다. 문제는 인천공항 인근 숙소에서 불거졌다.
A씨가 화장실에서 뱃속의 엑스터시 원료를 배출하는 장면을 B씨가 목격한 것이다.
B씨는 그제야 A씨의 입국 목적을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A씨 역시 "B씨가 알았다면 함께 오지 않았을 것이기에 혼자 몰래 삼켰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이후 두 사람은 김해의 제조 시설로 이동했다.
A씨는 국내 조력자에게 기계 설치와 기자재 구비를 요청했고, 조직원과 실시간 통화하며 제조 방법을 전달받았다.
2025년 9월 4일, A씨는 엑스터시 분말 원료에 MCC, 색소, 옥수수전분 등을 배합해 알약 104정을 제조했다. 남은 원료 약 308g(도매가 기준 약 9,240만 원)은 플라스틱 용기에 보관했다.
공동정범인가 방조범인가, 법원의 판단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B씨의 법적 지위였다.
검찰은 B씨를 A씨 및 마약 조직과 공모한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B씨 측 변호인은 B씨가 A씨의 범행을 보조한 것에 불과하며 공동정범이 아닌 방조범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창원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B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B씨에게 범행 동기나 수익 약속이 없었던 점, 여행 목적으로 입국한 뒤에야 사실을 알게 된 점, 영국으로 돌아갈 경제적 수단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가담하게 된 정황 등을 종합했다.
B씨가 한 행위는 제조 방법 메모, A씨 지시에 따른 기계 압력 조절, 주변 정리 등에 그쳤고, 이는 공동정범의 분업적 역할분담에 이르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직권으로 공소장 변경 없이 B씨의 죄명을 방조죄로 변경했다.
2026년 3월 12일, 법원은 A씨에게 징역 9년, B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마약류 수입은 국내 수요와 공급을 창출하거나 촉진시켜 사회질서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미친다"고 밝히면서도, 피고인들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며 반성하는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이번 사건은 국제 마약 조직이 채무를 빌미로 개인을 운반책이자 제조책으로 동원하는 범죄 구조를 여실히 보여준다.
동시에 공동정범과 방조범의 경계를 가르는 기능적 행위지배의 법리가 구체적 사안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판결이기도 하다.
[참고] 창원지방법원 2025고349 판결문 (2026. 3. 12. 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