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에 상관없이 검⋅경 모두 '살인죄 입증'에만 몰두했다"
"수사권 조정에 상관없이 검⋅경 모두 '살인죄 입증'에만 몰두했다"
일명 '조카 물고문 사건' 피의자들 아동학대치사 → 살인죄 변경한 박상용 검사
설 연휴·주말 반납하고 살인죄 입증 위해 경찰과 함께 증거 찾아

지난 2월 발생한 일명 '조카 물고문 사건’의 공소장에는 일반적으로 이와 같은 사건에 적용되는 '아동학대치사' 혐의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해달라고 쓰여있었다. 이 공소장을 직접 쓴 박상용 검사는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수원=박선우 기자
"이게 어떻게 아동학대냐, 이건 살인이다" vs. "(살인죄 적용) 검토해보겠으나⋯."
'아동학대치사' 사건이 발생하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일이 있다. 피해 아동을 참혹하게 죽게 만든 가해자에게 '살인죄'를 적용하라는 여론. 그리고 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할 수 있을지 검토'는' 해보겠단 수사기관의 답변이다. 뜨뜻미지근한 수사기관의 태도에 대중들은 "얼마나 더 잔인하게 죽여야 살인이냐"고 맞받아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을 탓할 수만은 없다고 설명한다. 국민의 법 감정과 살인죄에 대한 법적 판단은 다른 문제다. 가해자가 살인의 고의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일은 굉장히 고난이도의 일인 데다, 자칫 무리하게 기소했다 무죄가 나오면 피고인에게 다시 죄를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양천구 입양아동 학대 사망사건'(일명 정인이 사건)의 경우에도, "아동학대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기소하라"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검찰은 그렇게 선명하게 재판부에 요구하지 못했다. "살인죄 아니면 아동학대치사죄로 처벌해달라"는 식으로 타협안을 제시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 2월 발생한 일명 '조카 물고문 사건'은 달랐다. 공소장에는 "피고인을 살인죄로 처벌해달라"는 문장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이 공소장을 쓴 수원지검 박상용 검사는 "국민의 법 감정에 맞는 판결을 이끌어내려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검사는 인터뷰 중간중간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들과 검찰 수사관들의 도움을 언급했다. 혼자서는 (살인죄 기소와 입증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초동수사를 망쳐서 미궁으로 가는 사건들을 많이 봤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 사건 현장에서 최대한 살인죄와 관련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11월, 친모의 사정으로 이모와 이모부에게 맡겨진 피해 아동. 이모 등은 지난해 12월부터 피해 아동을 폭행하고 개똥을 먹이는 등의 학대를 했다. 피해 아동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거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 지난 2월 8일, 약 3시간가량 파리채 등으로 폭행한 뒤 물이 담긴 욕조에 피해 아동의 머리를 넣었다 빼는 물고문을 한 끝에 사망에 이르게 했다.
"당연히 있었다. 이런 사건의 경우 대부분 CC(폐쇄회로)TV가 없는 집안 내부에서 범행이 이뤄지고, '죽여야겠다'는 특정 동기도 없다. 또한 피해자를 때리다가 죽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고의였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없었다. (시간상) 딱 한 달 안에 끝내야 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의자들이 구속된 시점부터 30일 안에 기소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의자를 석방해야 한다. 하지만 사건 당시는 2월, 설 연휴와 주말을 생각하면 일정은 촉박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박 검사는 '완전 시간 싸움'이었다고 했다.
"현장 검증부터 했다. 경찰 측에 이모와 이모부에게 학대를 당했던 피해자가 사망할 당시를 재연해달라고 했다. 정확한 사망 원인을 알아야 살인죄든 뭐든 적용할 수 있지 않나. 피해 아동은 화장실 욕조에 채워진 물에 머리를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는 물고문을 당하다 사망했다. 과연 그 욕조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피해 아동이 욕조 안에서 몸을 뺄 수는 없었는지 등을 확인했다.
범행 도구도 더 찾아봤다. 피의자들이 (평소) 피해 아동을 '파리채로 때렸다'는 진술만 있었는데, 피해 아동의 몸에 남겨진 광범위한 멍을 보니 파리채로는 안 될 것 같더라. 그러다 물에 젖은 옷 뭉치를 발견했다. 둔기면 몰라도 그걸로 때리면 몸에 상처는 남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로 때렸을 수도 있지 않나.

피의자들이 이걸 폭행하는 데 사용했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봤다. 피의자(가해자 이모)와 체격이 비슷한 여성 수사관이 사람 대신 호박을 놓고 옷 뭉치로 쳐봤다. 그랬더니 호박이 부서지더라. 이걸 증거로 제출했는데 판사님들이 보더니 '옷 뭉치로 때린 거 같다'며 판결문에 판시했다.
(증거를 찾기 위해) 그렇게 연휴, 주말에도 죽어라 했다. 매일 경찰과 '이거 해보자, 저거 해보면 어떻냐'고 논의하고, 담당 경찰들이 많이 고생했다. 설에 차례를 지내다가 중간에 연락받고, 연락하고 그랬다."
"이정빈 교수(가천의대 법의학과 석좌교수)에게 감정을 부탁한 이유는 국과수의 1차 소견이 '속발성(續發性) 쇼크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였다. 처음에 어떤 충격이 있고 바로 이어서 쇼크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피해 아동을 많이 때려서 신체 내부에 출혈이 발생해 쇼크가 일어났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렇게만 하면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 지속적으로 때리는 과정에서 아이가 죽었다고 하면 '치사'다. 때리다 보니 어쩌다 죽었다는 것.
살인죄로 인정받으려면 때리다가 '아 이 정도면 죽을 수도 있겠는데' 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했다. 계속 때리다가 어느 순간 머리를 세게 때린다든지 해야 '이때 살인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구나'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속발성 쇼크만으로는 이런 고의를 입증 못 한다. 경찰 측에 '이러면 우리는 살인죄로 (혐의) 절대 못 바꾼다'고 했다. 국과수 최종 감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어서 이정빈 교수에게 감정을 부탁했다. '아직 감정이 안 나와서 그러니 일단 해달라'며 국과수 소견 등 자료를 보냈다. 그랬더니 속발성 쇼크일 수는 있지만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익사'라고 하더라."
"'아, 됐다'고 생각했다. 당시 피의자들은 피해 아동을 계속 때려서 속발성 쇼크가 올 정도로 빈사(瀕死)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직후 (이렇게 빈사 상태인 피해 아동의) 손·발을 묶은 뒤 물에 머리를 강제로 집어넣었다 빼면서 숨을 못 쉬게 해 죽게 했다면, 그때는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바로 살인죄 적용을 논의하기 위한 검·경 합동회의를 소집했다."

피해 아동이 폭행을 당하다가 속발성 쇼크가 와서 사망했다면, 피의자들은 "단지 때렸을 뿐이지 죽일 마음은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또한 "칼로 찔렀다면 몰라도 파리채로 때려서 죽을지 몰랐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살인죄를 피해 갈 구멍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계속 때리다가 죽을 지경에 놓인 아동을 물에 집어넣는 행위를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정한 시점(아동에게 쇼크가 오던 때)에 특정한 행동(물고문)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사망(익사)했기 때문이다. 즉 "죽일 생각 없었다"는 피의자의 주장에 "아동이 걷지도 못할 정도로 맞았는데, 그걸 보고도 물에 집어넣어 고문했다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게다가 사망한 피해 아동의 식도에서 치아가 나오면서, 물고문의 강도도 셌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었다.
"경찰 측에서 피의자들이 촬영한 학대 동영상들을 갖고 왔더라. 피의자들의 휴대전화를 포렌식 해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중에 사망 당일, 물고문 직전에 촬영된 영상을 보여주더라. 얼굴이 멍투성이인 피해 아동이 거실에서 몇 걸음 걷다가 쓰러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속발성 쇼크라는 사인을 듣긴 했으니 (사망 직전에) 아이가 심각한 상태였다는 건 알았는데 (그 모습이 담긴) 증거 영상이었던 거다. 영상을 보고 살인죄로 변경해도 되겠다 확신했다. 경찰에도 살인죄로 검찰에 송치하라고 했다. 동영상이 있었던 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100% 살인을 입증할 수 있다고 여겼다.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가해자들을 살인죄로 처벌받게 하는 거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피해 아동과 관련 없는 시민들이 생업도 있을 텐데 재판에 와서 슬퍼하고 분노하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손 편지도 엄청 받았다. 'OO(피해 아동 이름)아 미안해'라며 죄책감을 많이 느끼더라. 이를 보고 '국민들의 법 감정에 맞는 양형(처벌 수위)이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님들은 검사보다 더 판례에 구속돼 있다. 때문에 유사 사건의 판례는 너무 중요하다. 여기서 형량이 높게 나와야 비슷한 사건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의미로 이 사건이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사건에 있어서) 선례가 되길 바랐다. 검사가 판사님들보다는 시민들과 더 가까이 있고 국민들의 법 감정을 잘 느낄 수 있었다. 판사님들도 내가 느낀 감정을 느끼길 원했다. 판사님들이 사무실에 앉아서 동영상(증거)을 확인하게 하기보다 재판에서 주요 장면들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게 좋겠다 싶었다."
"정말 감사하고 감동받았다. 내가 이렇게 이 사건에 더 신경을 쏟게 한 건 시민들이다. 사건 하나하나 소홀하면 안 되겠구나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 빨리 사건을 처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민들이 다 일깨워주시고 알려준 거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번처럼 경찰에 연락해 증거 찾으라고 할 근거가 없었다. 그런데 경찰도 검찰도 서로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양쪽 다 사실관계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주말 가릴 것 없이 개인 휴대전화로 하루에도 몇 통씩 통화하고 그랬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경찰들도 정말 훌륭한 분들이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검사 인생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될 것 같다. 사실 그동안 선거, 노동, 안보 등 공안 분야만 하다가 맡은 첫 아동학대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동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초동수사부터 재판까지 최선을 다했고,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 다른 사건에서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지난 8월, 박상용 검사가 살인죄와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이번 사건에 대해 수원지법 제15형사부(재판장 조휴옥 부장판사)는 이모와 이모부에게 각각 징역 30년,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현재 수원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박 검사는 항소심도 맡아 이들 이모 부부의 양형 부당을 주장하고 있다.
"피고인들은 피해자의 손발을 묶고 물고문을 하듯이 머리를 욕조 물에 넣었다 뺐다는 것을 반복했다."
"조직적·계획적으로 범행한 이번 사건 피고인들에게 검찰의 구형대로 죄질에 부합하는 형을 선고해달라."
이 기사는 로톡뉴스의 윤리강령에 부합하는 사실 확인을 거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