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2.5모작의 마음가짐-성의정심(誠意正心)
인생2.5모작의 마음가짐-성의정심(誠意正心)

신록이 짙어지는 계절의 여왕, 5월 중순. 법원 정문 앞 장미터널에는 울긋불긋 장미꽃이 피기 시작해서 여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해당 이미지는 기사와 관련 없는 참고용 이미지. /셔터스톡
신록이 짙어지는 계절의 여왕, 5월 중순이다. 올해는 평년보다 계절 순환이 빠른 편인지, 매년 이맘때 서리풀 공원에 활짝 피던 철쭉꽃이 일찍 피었다가 어느새 시들고, 은행나무 가로수의 세모 잎도 눈에 띄게 커지고, 동네 곳곳에 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하게 느껴진다. 법원 정문 앞 장미터널에는 울긋불긋 장미꽃이 피기 시작해서 여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런 아름다운 봄날에는 새로울 '신(新)'자가 흥겹게 느껴진다. 동양 4서3경 가운데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일신일신우일신'(日新日新又日新)' 문구가 먼저 떠오른다. 고대 중국의 은(殷)나라 탕왕이 매일 아침 깨어나서 얼굴을 깨끗하게 씻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렇듯이 우리 삶의 원천은 새로움(新)에 있다. 사실 우리들은 매일매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며,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듯이, 우리 인생은 시작과 끝 사이에서 살고, 늙고, 아파지고, 결국 죽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불현듯 "시작 이전에 나는 무엇이었으며, 끝 이후에 나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일어난다. 만일 그런 의문조차 없다면 이 삶은 정말 허무할 것이다. 과학자들은 우주가 시작될 때 빅뱅이 있었다고 한다. 빅뱅의 본질은 자유, 즉 무지로부터의 자유이다, 고정관념에 붙들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사유(思惟)할 수 있는 자유를 통해서, 무한가능성, 무한창조성, 무한다양성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과학자들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한다. 태초 이전에 '없음(無)'이 있었다. 일견 모순되는 듯하다. 그러나 단순한 '무'가 아니라 '있음을 있게 하는 없음'을 떠올려 보면 그저 모순만은 아니다. 태초 이전에도 '사랑'은 있었다. 있음을 있게 하는 '없음'이 곧 사랑이다. 사랑을 향한 의지, 즉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모든 창조의 원천 에너지이다. 그래서 빅뱅 이전에 사랑에 의한 압축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大學)에는 유난히 '신(新)'자가 많이 나온다. '신민(新民)'이라는 단어도 나오는데, 흔히 정치인들 사이에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구시대적이고 부정확한 해석이 아닐까 싶다, 여기에서 '민(民)'이란 '나' 이외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과 온갖 사물을 망라해서 일컫는 '하나'로 이해하고 싶다. 즉 먼저 자기 자신이 밝게 깨어나고(明明德),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삼라만상에 어울려 친밀하게 여기며 지내라는 '친민(親民)', 즉 보편적인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학교에서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는 격언을 자주 듣고 자랐다.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자신부터 몸과 마음을 닦아야만 나중에 큰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으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젊은 검사 시절을 되돌아보면, 가정사를 등한시하면서까지 정의감과 거악척결이라는 대의명분을 추종하면서 동분서주했지만, 막막한 범죄현상 속에서 진실과 증거를 찾아 헤매느라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정의(正義)란 무엇인지 식별하고 판단하기가 어렵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특히 20대 후반 총각 시절 초임 검사로 부임하자, 주위에서 '영감님'이라고 불러주는 분위기를 편리하게 받아들이며 지냈다. 그것은 마치 조선시대 양반제도나 선비문화에서 유래된 특권의식과 자아도취에 빠진 삶이었으니 부끄러운 과거의 추억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출세나 명예보다 인생의 내면적 지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수긍하면서도, 막상 내 직업의 성격상 법학지식과 다양한 사회현상에 대한 지식에 통달해야 된다는 경쟁 심리에 몰입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철이 들어서야, 그것이 대학8조목(八條目)의 후반부에 불과하고, 그 앞부분에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정심(誠意正心)이라는 4조목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오묘한 뜻을 다 이해하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어느덧 60대 후반의 나이가 되고 보니, '치국평천하'보다 '수신제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의정심'이 '격물치지'보다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거 성현들이 '성의정심'이라는 가르침을 강조한 배경이나 유래를 다 알지는 못하지만, 역설적으로 알기 어려울수록, 나의 좌우명처럼 되고 말았다. 마치 조선 왕조 초기 공리공담에만 치우친 중국 주자학을 추종한 성리학에 대한 반성으로, 문물의 개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양명학(陽明學)이 주창하는 실사구시 정신을 살려 나가야 한다는 자각이 조선 후기에 일어나고, 그 영향으로 실학(實學)이나 개화사상이 출현한 것에 비유하면 적당할 듯하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부를 얻기 위한 방법도 다양하고, 명예의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선택의 여지가 있다. 행복 또한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나름대로의 삶을 선택할 수가 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식적인 탐구는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일을 다 알았다고 하더라도, 정작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탐구와 통찰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나는 매일 아침 깨어나면, 수첩과 캘린더 몇 군데에 바를 정(正)자를 적고 나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벌써 10년 넘게 이어지는 습관이다. 그것이 나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인생제3막을 열기 전에, 어정쩡하게 인생2.5모작을 꾸려나가고 있는 지금의 내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남겨주는 희미한 발자취는 될 것 같다.
'마음'이 모든 것의 원천이자 핵심이다. 무슨 일을 하든 결국 '마음' 하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일이 되고 안 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든지 살아 있는 동안에, 그리고 육신이 사라질 때까지, 자기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 그 정체성을 찾으려는 의지, 즉 '마음'을 내야 한다. 힘내자.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