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만원 보냈더니 '나 몰라라'… 계약서 없는 명품백 동업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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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만원 보냈더니 '나 몰라라'… 계약서 없는 명품백 동업의 배신

2025. 09. 18 14:53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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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녹취·이체내역으로 반환 청구 가능… 남은 가방 처분은 횡령죄와 정당 권리 사이 줄타기'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4천만 원을 투자한 명품백 사업이 3개월 만에 악몽으로 변했다. 계약서 한 장 없이 '믿음'으로 시작한 거래는 이제 '횡령'과 '정당한 권리' 사이의 위험한 법적 줄타기로 변질됐다.


중고 명품 가방 매입·판매업을 시작한 김 씨의 이야기다. 그는 사업 초기, 자신을 실질적인 운영자라고 소개한 박 씨와 손을 잡았다.


박 씨는 4,000만 원을 먼저 주면, 매입가 5,500만 원 상당의 가방 49개를 넘겨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했다.


믿음으로 시작된 거래, 3개월 만에 '연락 두절'

계약은 구두로만 이뤄졌다. 팔린 가방은 판매가에서 매입가를 뺀 차익을 절반씩 나누고, 3개월이 지나도 팔리지 않은 상품은 박 씨가 다시 사 가기로 했다.


김 씨가 계약서 작성을 원했지만, 박 씨는 "서로 믿고 하는 것"이라며 거절했다. 다만 박 씨가 신용불량 상태라며 그의 아내 유미나(가명) 씨 명의 계좌로 4,000만 원을 입금해달라고 요청한 점이 마음에 걸렸다. 김 씨는 만약을 대비해 통화 내용을 녹음하고 돈을 보냈다.


문제는 약속한 3개월 뒤 터졌다. 미판매된 가방을 돌려주고 돈을 정산받으려 했지만, 박 씨 부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뤘다. 급기야 지금은 연락조차 잘 닿지 않는 상황. 김 씨의 창고에는 팔리지 않은 가방만 쌓여가고, 4,000만 원이라는 거금은 공중에 뜬 신세가 됐다.


계약서 없어도 '녹취' 있다 4천만원 돌려받을 길

다행히 법률 전문가들은 김 씨가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계약서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불안 요소지만, 이를 대체할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대한중앙의 한병철 변호사는 "계약서가 없더라도 통화 녹음과 계좌이체 내역을 통해 약정 내용을 입증할 수 있다"며 "미판매 상품에 해당하는 금액은 반환 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정에서 '판매 후 정산 및 미판매분 회수'라는 계약 조건의 존재를 인정받으면, 약속을 어긴 박 씨 부부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법적 권리가 생긴다는 의미다.


남은 가방 팔면 횡령? 담보? 운명 가를 법적 해석

답답한 마음에 김 씨는 남은 가방이라도 팔아서 손해를 메우고 싶지만, 이는 법적 해석에 따라 극과 극의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임의 처분'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법무법인 쉴드의 이진훈 변호사는 "상대방 동의 없이 가방을 임의로 처분하면 형법상 횡령죄(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는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방의 소유권이 여전히 박 씨 측에 있는 단순 '위탁판매' 물품으로 해석될 경우, 김 씨는 남의 물건을 마음대로 팔아치운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적 해석이 달라질 여지도 있다.


이 거래가 4,000만 원 채무에 대한 담보로 가방의 소유권을 넘긴 '양도담보(채권 담보를 위해 소유권을 채권자에게 이전하는 계약)' 계약으로 인정될 경우,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이 경우 김 씨의 가방 판매는 횡령이 아닌 정당한 권리 행사가 될 수 있다.


결국 계약의 성격을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김 씨의 운명이 갈리는 셈이다.


소송 상대는 남편? 아내? '부부 공동 책임' 물어야

소송을 결심하더라도 누구를 상대로 해야 할지 역시 문제다. 실질적인 계약 당사자는 남편 박 씨지만, 돈을 받은 사람은 아내 유 씨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아람 변호사는 "실질적으로 남편이 계약을 주도했더라도, 아내 명의 계좌로 돈이 입금된 사실이 있으므로 부부 모두를 상대로 책임을 묻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부가 공동으로 사업을 운영한 정황을 입증해 두 사람 모두에게 변제 책임을 지우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때 사업의 희망이었던 명품 가방들은 이제 법적 분쟁의 증거물이 되어 창고에 잠들어 있다. 이 가방들은 과연 김 씨에게 '보관 중인 남의 물건'일까, 아니면 '떼인 돈을 받을 담보물'일까.


계약서 한 장의 부재가 남긴 이 아슬아슬한 질문의 최종 답안은, 결국 법정의 시간 속에서 쓰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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