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집에서 사망한 피해자⋯문 앞에서 흉기 들고 탈출 막은 '그놈' 때문이었다
불타는 집에서 사망한 피해자⋯문 앞에서 흉기 들고 탈출 막은 '그놈' 때문이었다
밀린 월세 독촉받자 "죽여야겠다" 결심 후 불 질러
"심신미약 상태로 추정된다" 의사 소견에도⋯양형 사유로 고려 안 해
오히려 재판 지속할수록 형량 높아졌다⋯징역 12년 → 징역 15년

월세를 독촉받자 관리인을 살해하기로 한 A씨. 그는 흉기를 챙겨 관리인이 사는 집 문 앞에 섰다. 그리고는 문 앞에 불을 질렀다. /셔터스톡⋅편집 및 그래픽=조소혜
지난 2019년 크리스마스. 전북 전주의 한 주택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날은 영하 2도로 쌀쌀한 날씨였지만, 급격히 타오른 불로 주변은 뜨거웠다.
누구라도 이 광경을 봤다면 깜짝 놀라 112에 신고했을 상황. 하지만 불이 붙은 집 현관문 앞에는 한 남성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곳에 사는 세입자 A씨였다. 그의 시선은 방 쪽에 고정돼 있었다.
그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불붙은 집의 관리인이자, A씨가 불을 질러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피해자 B씨였다. A씨는 흉기를 들고 문 앞을 지키고 서서 B씨가 문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위협했다.
결국 뜨거운 불길을 들이킨 B씨는 '흡입 화상'으로 사망했다.
이들이 인연을 맺은 건 지난 2018년 5월이었다. A씨는 월세 25만원을 내고 B씨 집의 방 한 칸을 빌려 생활했다.
둘의 사이의 갈등은 이 월세가 밀리면서 시작됐다. 월세가 3개월 정도 밀리자 B씨는 A씨에게 월세를 내라고 독촉했다.
B씨와 다툼을 벌인 A씨는 월세 문제로 격해진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곧장 주방에 있던 흉기를 들고 다시 B씨의 방문을 두드렸다. 끝까지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A씨는 그냥 돌아가지 않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B씨를 살해하겠다고 마음먹었다. A씨는 보일러실에 있던 헝겊을 가져와 불을 붙여 B씨의 방문 앞에 던졌다. 불은 곧 집 전체를 삼켰지만, B씨는 탈출하지 못했다. B씨의 탈출을 막기 위해 A씨가 흉기를 쥐고 문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도주 하루 만에 경찰에 붙잡힌 피고인 A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혐의는 현주건조물방화치사. 이 혐의는 불을 질러 사람의 목숨을 잃게 한 범죄다.
A씨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심신미약'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A씨는 알코올 의존 및 정신병 등의 이유로 총 6회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112에 전화를 걸어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내용으로 엉뚱한 신고를 한 기록도 확인됐다.
이후 법원에서 받은 정신감정에서도 조현병을 진단받았고, 담당 의사로부터 "범행 당시 사물 변별능력 등이 모두 저하된 심신 미약 상태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이라는 의견을 받기도 했다.
모두 A씨의 주장처럼 심신미약 주장을 뒷받침하는 유리한 증거였다. 이대로라면 A씨는 양형위가 정한 기준에 따라 처벌 수위를 낮출 수 있었다.
하지만 A씨의 바람과 달리 선처는 이뤄지지 않았다. 법원이 사건 당시 A씨가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의외의 결정이었다.
법원은 왜 그렇게 판단했을까. 판결문에는 그 이유가 자세히 적혀있었다.
사건을 맡은 전주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김유랑 부장판사)는 A씨가 범행 직후 CC(폐쇄회로)TV가 없는 도로를 이용해 다른 지역으로 도주한 것을 근거로 삼았다. 경찰에 붙잡힌 후 조사를 받을 때 도주 경로도 '상세히' 진술했다는 점을 근거로 판단력에 문제가 없었다고 봤다.
불을 지르고 피해자의 탈출을 막기 위해 흉기를 들고 있던 정황도 A씨의 심신미약 주장을 깨는 근거로 사용됐다. 김유랑 부장판사는 "피해자가 불에 타는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인식과 의도를 갖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런 행동 정황은 A씨가 정신질환으로 인해 공격적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 발생한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화가 나 불을 질렀다"는 범행동기를 진술한 점 △3개월치의 월세를 밀려 독촉을 받았다는 사실 등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던 점을 바탕으로 범행 당시 의사 결정에 문제가 없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 A씨에게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사망에 이르기까지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유족들 또한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됐다"고 판시했다. 피해자의 사망과 유족의 아픔은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할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A씨가 반성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양형에 불리한 사유였다. 김유랑 부장판사는 A씨에게는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A씨와 검사의 항소로 재판은 2심으로 이어졌다.
항소심을 맡은 광주고법 전주 제1형사부(재판장 김성주 부장판사)는 "(A씨의) 범행수법이 잔혹해 죄질이 불량하다"며 오히려 형량을 높였다.
고의로 불을 질러 사람을 살해한 경우 법정형(형법 제164조)은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다. 다만 양형위 기준은 징역 12~16년 사이를 권고하고 있다. 1심의 경우 이 기준을 적용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양형인자 중 가중요소가 인정되면 15년 이상, 무기징역까지로 처벌 수위가 높아진다.
2심 재판부는 A씨 사건에 '처벌을 더 무겁게 해야 하는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다. 불이 난 집에서 피해자가 대피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잔혹한 범행 수법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1심 판결보다 3년 높은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