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범죄 꿈꾸며 피 묻은 맥주캔까지 닦았지만… 살인범 무너뜨린 피해자의 '마라샹궈 사진'
완전범죄 꿈꾸며 피 묻은 맥주캔까지 닦았지만… 살인범 무너뜨린 피해자의 '마라샹궈 사진'
수면제 탄 도라지물 먹여 이웃 모녀 살해한 50대 여성
대법원서 무기징역 확정
333만원 귀금속 노린 잔혹한 범행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2022년 9월 11일 늦은 밤. 17세 여고생 B양은 집에 돌아와 야식으로 마라샹궈를 배달시켰다. 밤 11시 24분, B양은 자신의 휴대전화로 먹음직스러운 마라샹궈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전송했다.
평범해 보이는 이 마라샹궈 사진 한 장은, 훗날 B양과 그녀의 어머니를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의 거짓말을 산산조각 내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333만 원어치 귀금속과 '도라지물'
이웃집에 살던 50대 여성 A씨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손녀를 키우며 월세와 병원비, 카드 대금을 감당하지 못해 딸과 사위에게 빚 독촉을 받는 처지였다.
단전 통보까지 받을 정도로 궁지에 몰린 A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웃집 40대 여성 C씨가 항상 착용하고 다니던 금목걸이, 금팔찌 등 333만 원 상당의 귀금속이었다.
A씨의 범행 계획은 치밀했다. 자신이 처방받은 우울증 약과 수면유도제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절구공이로 빻아 가루로 만든 뒤, 도라지청을 섞은 물에 탔다.
사건 당일, A씨는 피해자들의 집에 방문해 혼자 있던 C씨의 중학생 아들에게 "목에 좋은 것"이라며 이 약물을 강권해 먹였다.
약효는 확실했다. C씨의 아들은 약 30분 만에 갑자기 쓰러져 잠들었고, 이후 귀가한 여고생 딸 B양과 어머니 역시 A씨가 건넨 '몸에 좋은 주스'를 마시고 의식을 잃어갔다.
당시 피해자들이 지인들과 나눈 연락에는 약물의 위력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C씨의 아들은 친구에게 "도라지도랐(맛이 없다는 의미)"이라며 괴로워했고, B양은 "누가 술 탄 거 아님? 너무 어지러움"이라며 문자를 제대로 치지 못했다. 귀가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어머니 C씨의 통화 목소리는 불과 30여 분 만에 혀가 완전히 꼬여버렸다.
이후 A씨는 잠든 C씨의 귀금속을 빼내려다 C씨가 깨어나자 부엌칼과 끈으로 잔혹하게 살해했고, 이어 방에서 깨어난 B양마저 야구방망이 등으로 폭행한 뒤 질식시켜 살해했다.
무너진 알리바이 "B양 못 봤다" vs "마라샹궈 배달됐는데?"
재판 과정에서 A씨는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약물을 타지도 않았고,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A씨는 범행 현장에 여고생 B양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며 "피해자들의 집에 머무는 동안 B양을 보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이 황당한 변명을 논리와 증거로 일축했다. 그 핵심에 바로 마라샹궈 사진이 있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A씨의 주장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조목조목 지적했다.
구조적 모순
A씨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면, 현관을 지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B양을 못 볼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정적 단서, 마라샹궈
설령 들어가는 순간을 못 봤다 하더라도, B양이 배달시킨 마라샹궈가 밤 11시 13분에 도착했고, B양이 11시 24분에 직접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재판부는 "배달된 마라샹궈를 B양이 현관으로 가서 직접 받거나, C씨가 이를 B양에게 전달해 주는 과정에서 피고인이 B양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못 박았다.
마라샹궈 배달과 사진 촬영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타임라인이, "B양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A씨의 알리바이를 완벽하게 파괴한 것이다.
혈흔 닦인 '기네스 맥주캔'과 이불 속 DNA
A씨의 거짓말을 입증하는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건 현장 거실 탁자에는 두 개의 맥주캔(기네스, 버드와이저)이 놓여 있었다. A씨는 평소 자신이 기네스를 마시고, C씨가 버드와이저를 마셨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국과수 감식 결과, 범행에 사용된 부엌칼과 함께 기네스 맥주캔 표면만 누군가 물기 있는 물체로 닦아낸 흔적이 발견됐다. 재판부는 "두 캔맥주 중 누가 무엇을 마셨는지 아는 것은 피고인뿐"이라며, A씨가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불에 탄 B양의 이불에서는 B양의 DNA보다 A씨의 DNA가 훨씬 더 많이 검출됐다. 단순히 방을 구경하며 대화를 나눴다는 A씨의 변명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양이었다.
재판부는 이를 격렬했던 살인 범행 흔적으로 보았다. 범행 당일 A씨가 입고 있었던 흰색 티셔츠가 감쪽같이 사라진 점도 증거 인멸 정황으로 인정됐다.
법원의 일갈 "참회나 반성,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결정적인 증거들 앞에서도 A씨는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유일한 생존자인 C씨의 중학생 아들에게 자신의 범행을 덮어씌우려는 태도마저 보였다.
이에 1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서 범행에 대한 참회나 반성, 피해자들과 유족들에 대한 애도나 사죄의 감정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고 강하게 질타하며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이 사건 살인 범행 방법이 매우 참혹하고 무자비하며, 증거 인멸을 위해 불까지 지르는 등 범행이 치밀하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평화로운 저녁을 보내던 이웃집 모녀의 생명을 잔혹하게 앗아간 비극. 대법원 역시 2023년 11월 무기징역을 최종 확정했다.
거짓으로 일관했던 살인범의 최후는, 결국 딸이 남긴 마지막 사진 한 장의 진실을 넘어서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