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부터 펑크 낸 악인전⋯광고주는 가능해도, 시청자는 KBS에 책임 물을 방법이 없다
첫날부터 펑크 낸 악인전⋯광고주는 가능해도, 시청자는 KBS에 책임 물을 방법이 없다
'송창식과 송가인' 출연 대대적 홍보해놓고 첫 방송부터 사고
불만 폭주에도⋯변호사들 "시청자들이 딱히 손쓸 방법이 없다"
시청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민원 제기'밖에 없어

본래 1⋅2부가 이어서 방송되어야 했던 KBS의 '악인전'이 절반만 방송되며 논란이 됐다. 이에 사과문을 올렸지만 제작진의 안일한 의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KBS캡처
"가왕 송창식과 대세 송가인과의 만남!"
KBS의 새로운 예능프로그램 '악(樂)인전'. 1970년대 '쎄시봉' 열풍으로 가요계를 이끌었던 송창식(72)과 최근 트로트 열풍을 이끈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33)이 동시에 고정 출연한다는 소식은 화제였다. 그러나 정작 첫 회에 송가인은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1부가 끝난 다음 "2부가 방송된다"는 예고와 함께 광고가 길게 이어졌지만, 광고 이후에 2부는 방송되지 않았다. 대신 다음 시간에 편성되어 있던 다큐멘터리가 갑자기 화면을 채웠다. 하단 자막에는 "방송사 사정으로 2부는 다음 주에 방송된다"고 고지됐다.
KBS는 다음날에서야 "미처 후반 작업을 다 마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애타게 방송을 기다렸던 시청자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송가인 보려고 기다렸는데 속은 것 같다"고 하는 등 불만이 터져 나왔다.
시청자와 약속을 어긴 KBS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까. 방송법, 방송심의에관한규정 등을 깊이 들여다본 변호사들은 "시청자 입장에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10년 가까이 KBS에서 프로듀서(PD)로 근무한 한상훈 변호사는 "방송사마다 방송편성규약 등이 있지만, 방송 사고의 경우 그 책임을 명확히 적시한 규정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밤. 본래 1⋅2부가 이어서 방송되어야 했던 '악인전'이 절반만 방송된 건 KBS 측의 명백한 실수였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문을 냈지만, 애초에 후반작업이 완료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방영을 강행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제작진이 시청자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 같다"는 글이 쏟아졌다.
①형사책임 물을 수 있을까?
"불가능. 처벌 조항 없기 때문"
이번 방송 사고를 낸 KBS 책임자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변호사들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처벌을 하려면 명시적인 처벌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관련 법에 그러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었다.
법무법인 101의 한상훈 변호사는 "형사책임을 물으려면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 원칙에 따라 형법 및 방송법 등에 처벌 규정이 명시적으로 있어야 한다"며 "그런데 이번 사건의 경우 관련 규정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법률사무소 용기의 박예지 변호사도 같은 의견이었다. "형사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률 자문

② 민사책임은 물을 수 있을까?
"시청자는 불가능. 광고주는 가능할 수도."
프로듀서 출신 한상훈 변호사는 "이런 방송 사고가 생기면, 민법상 책임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손해배상 가능성을 따져보면 크게 "민법상 채무불이행(민법 제390조)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방송사가 편성한 대로 방송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 자체는 물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해당 방법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시청자 입장에서는 마땅치 않다고 했다.
한상훈 변호사는 "실질적인 피해자는 (시청자가 아닌) 프로그램에 광고를 제공한 광고주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해당 프로그램에 막대한 광고비를 들인 광고주는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할지라도, 별도의 금전적 손해가 발생하지 않은 이상 시청자는 문제 제기가 어렵다는 취지였다.
박예지 변호사도 "시청자가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맞지만, 이것만으로는 구체적인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프로그램 편성은 방송사 고유의 업무고, 방송 예고만으로는 반드시 방송을 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변호사들이 말한 현실적인 대응은 '방송사에 직접적인 민원 제기' 정도였다.
한상훈 변호사는 "KBS는 시청자상담실을 통해 민원을 수리하고 있다"며 "각 방송사는 시청자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니, 여기에 민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만약 이런 사태가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방송법 위반은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방송법은 제85조의2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채널 편성을 변경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어긴 경우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에 시정조치, 과징금, 자료 제출 요청 등의 행정행위를 할 수 있다.
시청자가 직접 방통위에 심의를 청구할 수는 없을까. 변호사들은 "가능은 하지만,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박예지 변호사는 "방송심의에관한규정을 보면 프로그램 자체가 지켜야 할 기준이 있지만, 해당 기준은 사생활 보호나 명예훼손 금지, 인권침해의 제한 등"이라며 "예고와 달리 방송이 되지 않은 경우까지 규율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한상훈 변호사도 같은 의견이었다. "제작진의 과실로 인한 방송 사고까지는 심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