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 (1)] 동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 (1)] 동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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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셔터스톡
-편집자 주-
원로법학자 호문혁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시민이 알아야 할 기초적인 법 이야기를 재미있는 에세이 형식으로 연재한다.
호문혁 교수는 사법정책연구원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초대 이사장 등을 지내고 저서 「민사소송법」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민사법학자다.
필자가 사는 대모산 기슭에 여름이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신선하다. 비오는 날이면 이 녀석들이 더 신바람이 나서 개굴개굴 합창을 한다. 날이 가물 때면 ‘저 녀석들은 어떻게 되나, 어디 물 있는 곳을 찾아야 되는데’ 하는 걱정도 된다. 그러다 만일 사람들이 산을 허물어 그 터에 아파트라도 짓는다면, 녀석들은 살던 터가 없어져버리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16년 전 정부가 경부고속전철을 건설하면서 천성산에 터널을 뚫기로 했을 때, 공사중지 가처분 사건에서 산에 살던 도롱뇽까지 원고로 등장했었다.
그러나 법원은 “도롱뇽은 소송에서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하여 도롱뇽 이름으로 청구한 부분은 소를 각하하였다.
2년 전에는 동물의 권리를 연구하는 변호사단체가 설악산에 사는 산양 28마리를 원고로 내세워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허가를 취소해달라고 소를 제기했다. 역시 “산양은 소송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소각하 판결을 받았다.
사람은 당사자가 될 수 있는데, 도롱뇽이나 산양은 왜 안 된다고 하는가? 듣기로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도롱뇽을 당사자로 인정한다던데...

산양이 소송의 원고가 된다? / 이미지 편집 : 김주미 기자
‘도롱뇽 등이 소송에서 당사자가 될 수 있는지’는 그 전 단계인 ‘도롱뇽 등이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와 직결되어 있다.
우리 민법은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규정한다(제3조).
이처럼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권리능력’이라고 하는데, 이 능력은 사람에게만 인정된다. 법률상 도롱뇽이나 개구리, 산양 등은 ‘물건’의 범주에 포함되어 권리의 객체가 될 수 있을 뿐, 권리능력은 없다.
그리고 우리 민사소송법은 소송에서 당사자가 될 자격, 즉 ‘당사자능력’에 관해서는 민법에 따른다고 규정하여(제51조), 민법상의 권리능력이 있어야 소송에서 당사자능력이 인정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 도롱뇽 등이 소송에서 원고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왜 우리는 법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미국에서처럼 ‘우리도 도롱뇽 등에게 권리를 인정할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 법하다.
여기에 우리가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법체계는 체계를 중시하지 않는 ‘영미법계’에 속하는 미국과는 달리 ‘대륙법계’에 속한다는 점이다.
유럽 대륙에서 법문화를 선도한 국가가 프랑스와 독일이다. 이 나라들은 모두 로마제국 전성기에 고도로 발달한 로마법을 받아들였다.
프랑스는 19세기 초에 나폴레옹의 명으로 시민생활을 거의 완벽하게 규율할 법전을 편찬하여 유럽 여러 나라에 큰 영향을 주었다. 뒤늦게 통일을 이룬 독일은 19세기 말에 로마법을 자료로 정밀한 법체계를 만드는 법전편찬 작업을 하였다.
이 두 나라는 공통적으로 자유주의에 터잡은 사적자치(私的自治)에 따라 개인의 권리를 중심으로 하는 법체계를 수립하였는데, 그들에게 법률관계에서 가장 핵심은 개인이 법률생활에서 이루고자 원하는 ‘의사(意思)’였다.
권리란 법으로 부여된 ‘의사의 힘’이고, 그에 따라 개인이 ‘의사표시’를 핵심으로 하는 법률행위(예: 계약)를 하면, 거기에 법률상의 효과가 생긴다고 체계를 잡았다. 법률효과가 생긴다는 것은 국가가 개인의 의사가 최대한 그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법으로써 뒷받침을 한다는 의미이다.
대륙법에서 권리라는 것이 이러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도롱뇽 등 동물은 어떤 권리를 누리겠다는 의사를 가질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어서 권리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현대사회에서 계속 파괴되는 환경을 보존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한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영미식으로 도롱뇽 등 동물들에게도 권리를 인정하자”는 주장이 대두된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도 생명체이니 만큼 그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다만 그 방법이 그들에게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겉보기에는 멋있지만 적어도 대륙법 국가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다. 권리의 본질은 ‘권리자가 스스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으로 이를 행사한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동식물과 자연환경을 보호, 보존하려면 그들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할 것이 아니라 보호의 객체로 인정해서 법제도로써 강력히 보호하는 것이 우리 법체계에 맞는 올바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산기슭의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