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십억 추징금? 교도소? 불륜 감추려 짠 남편의 '이혼 각본'
[단독] 수십억 추징금? 교도소? 불륜 감추려 짠 남편의 '이혼 각본'
주가조작 연루 위장, 아내 속여 이혼 후 직장동료와 부정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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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 급하게 지방에 내려가고 있어. 얼른 택시 타고 집으로 와."
2022년 10월 9일 일요일 오전. 평소처럼 교회에 가족을 데려다주고 돌아온 남편 B씨(52)가 갑자기 사라졌다. 13년간 함께 살던 아내 A씨는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 앞 테이블에는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편지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주식 거래 과정에서 불법적인 일에 연루됐고, 수사망을 피해 1년 동안 잠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추징금이 수십억 원이 넘을 수도 있다"며 "빨리 이혼 절차를 밟아달라"고 했다. 가족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거짓말이었다. B씨는 주가조작에 연루된 적이 없었고, 수사를 받을 일도 없었다.
그가 진짜 숨긴 것은 수년간 이어온 직장 동료와의 부정행위였다.
치밀하게 계획된 '이혼 각본'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최근 공개한 판결문(2024가단219677)에 따르면, B씨의 잠수 이혼은 철저히 계획된 것이었다.
가출 전날까지 B씨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아들 사진을 주고받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고, 다음날 가족과 놀이공원에 가기 위한 티켓까지 예매해 둔 상태였다. 그러나 일요일 아침, 가족을 교회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그는 미리 준비해 둔 편지를 남기고 잠적했다.
편지에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담겨 있었다. 올해 초 주식 관련 사건이 터졌지만 가족에게 말하지 못했고, 상황이 악화돼 퇴직금과 연금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자신이 교도소에 갈 수도 있으니 "내년 10월까지 연락이 없으면 그때 다시 실종신고를 해달라"는 세밀한 지시까지 있었다.
속아 넘어간 아내, 36일 만의 '스피드 이혼'
충격에 빠진 A씨는 남편이 극단적 선택을 할까 두려워 경찰에 실종신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B씨로부터 "나 안 죽어. 걱정하지 말고 실종신고 해제해"라는 문자가 왔다. 이후에도 그는 "편지대로 잘 챙기고" "이혼 서류 정리 안 되면 추징금이든 사채빚이든 우리 재산 다 날릴 수 있다"며 이혼을 종용했다.
결국 A씨는 남편의 말을 믿고 이혼 절차를 밟았다. B씨가 미리 선임해둔 변호사가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불과 36일 만인 11월 15일 화해권고결정이 내려졌다. 이혼 사유는 '대화 단절, 극복할 수 없는 성격 차이'였다.
드러난 진실...수년간의 불륜 관계
이혼 후에도 B씨의 거짓말은 계속됐다. 2023년 5월, 그는 A씨에게 "어떤 여자와 동거하고 있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이것마저 거짓이었다.
A씨가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소송 과정에서였다. 법원의 금융거래정보 조회 결과, B씨와 직장 동료 C씨 사이에 2021년 6월부터 2024년 6월까지 330건이 넘는 송금 내역이 확인됐다.
특히 B씨는 C씨의 범칙금과 월세를 대신 납부했고, C씨가 근무하는 자치단체 청사를 수시로 방문했다. 이미 퇴직했음에도 서울시공무원수련원 앞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한 기록도 있었다.
"인륜을 저버린 행태"...법원의 판단
법원은 B씨의 행위를 "인륜을 저버리는 행태"라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이혼을 위해 치밀한 각본에 따라 원고를 속였다"며 "원고는 13년 이상 혼인생활을 유지해온 피고가 이런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피고는 주가조작 연루 등 원고와 자녀들에게까지 위험이 발생할 것처럼 기망했다"며 "원고가 극도의 불안 상태에서 고통받게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또 "이혼 후에도 피고는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원고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며 "심지어 '스트레스로 죽을 병 걸리지 말고 재수 없게 사고 나서 죽지나 마라'는 메일까지 보냈다"고 지적했다.
5천만 원 배상 판결...그러나 남은 상처는
법원은 B씨에게 위자료 5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부정행위와 기망행위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이었다.
그러나 A씨가 받은 상처는 돈으로 보상받기 어렵다. 13년간의 결혼생활이 한순간에 무너졌고, 두 자녀는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잃었다. 무엇보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철저히 속았다는 배신감은 평생 안고 가야 할 상처로 남았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의뢰인이 겪은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특히 자녀들이 받은 상처가 크다. 이런 비인간적인 이혼 방식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참고] 서울서부지방법원 2024가단219677 판결문 (2025. 1. 7.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