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40)] 굴착기 운전사가 되고 싶다던 중학생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정형근 교수 에세이 (40)] 굴착기 운전사가 되고 싶다던 중학생

2021. 10. 15 14:19 작성
정형근 교수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중학생이던 어린 피고인. 선고기일에 중형이 선고되었다. 그 어린 피고인도 복역을 마치고 석방되어 지금쯤 중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셔터스톡

재판이 없던 날은 해남 읍내에서 가까운 대흥사를 찾아갔다. 절은 대부분 속세가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한다. 그래서 굽이굽이 산속으로 들어가서 아늑한 장소에 사찰이 들어서 있다. 그렇더라도 출가를 한 수도자의 마음속에 새겨진 추억까지 지울 수 있을까 싶다. 해남 대흥사도 사방이 두륜산으로 둘러쌓여 있다. 절 입구부터 빼곡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조용한 적막을 깨고, 습한 공기가 냉기가 되어 밀려온다. 햇볕이 들지 않은 시냇가 바위는 검푸른 이끼로 가득하다. 사찰의 봄은 움트는 새싹의 생명력으로 충만하고, 가을은 떨어지는 낙엽이 엄숙한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대흥사를 향하는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특히 가을에는 절을 둘러싸고 있는 두륜산 단풍이 수많은 등산객들을 불러들인다. 그런데 높은 나뭇가지에 두툼한 검은 케이블이 걸쳐져 있다. 절에 필요한 통신선 같은데, 구렁이가 축 늘어져 있는 것 같은 섬뜩함이 든다. 자연과 첨단 문명이 조화되지 않은 모습이다. 절이 가까워지면 유선관이라는 단층 여관이 나온다. 단아한 기와지붕에 토방 마루와 창호지를 바른 방문이 있다. 출입문 문턱을 넘어서면 보통 넓은 마당이 나오는데, 그곳은 매화와 온갖 화초를 가꾼 정원이 펼쳐진다. 그 여관에서 서편제, 천년학, 장군의 아들 등의 영화를 찍었다는 안내판이 있다. 하룻밤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뒤로 하고, 개울가를 따라 올라가면 옛 추억의 장소가 다가온다.


중학생 때 대흥사로 수학여행을 와서 그 부근에 있던 여관에서 숙박을 했다.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없고, 텅 빈 공터로 남아 있다. 학교 운동장에 있던 수학여행 버스에 오를 때부터 흥분되었다. 걸어서 학교 다니던 시골에서 차를 타볼 기회가 없었다. 등하교 길에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가 일으키는 흙먼지만 뒤집어쓰곤 하였다. 학교가 있는 강진 칠량면에서 해남 대흥사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그래도 1시간 정도는 걸린 거 같았다. 버스가 해남 입구에 이르러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오를 때 우리는 두려움과 놀라움의 탄성을 질렀다. 우슬재를 넘는 중이었는데, 우리는 그렇게 가파른 길도 처음이었다.


어린 학생들이라고 한 방에 열 명도 넘게 넣어 놓아서 밤에는 편하게 누울 수도 없었다. 그런데 하필 비가 종일 주룩주룩 내렸다. 어디 갈 수도 없어 여관 안에서만 있으니,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에 학생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겹쳤다. 선생님들이 머무는 방 안으로 백숙처럼 보이는 통닭이 여러 차례 들어갔다. 방에서는 화투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날이 개자 대흥사로 몰려갔다. 대웅전 앞에서 모두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대웅전 지붕 중앙에는 청기와가 단 한 개 얹어져 있다고 하여 뚫어지게 올려다보았다. 실제로 지붕 중앙에는 주변의 것과는 다른 청기와 한 장이 있었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야 할 나이에 살인죄로 재판을 받는 중학생을 만났다. 법정에 들어가 변호인석에 앉아 내 재판 순서를 기다리면서 무심코 진행 중인 사건의 피고인을 바라보게 되었다. 재판장이 피고인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니, 그는 중학생이었다. 검사가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사실을 피고인에게 확인하였다. 어린 피고인은 들릴까 말까 하는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범죄사실은 전부 자백하고 있었다. 유치원생을 손으로 목을 졸라서 살해하였다는 내용이었다. 피고인의 변호인은 검찰청에서 근무 중인 공익법무관이 국선변호인으로 변론을 하였다. 그 사건을 기소한 검찰청에서 근무 중인 공익법무관이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된 것이 적절한 것인지 의아했다. 아무튼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에게 반대신문을 하였는데, 딱 세 가지를 물었다.


1. 피고인은 이 사건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하지요?

2. 피고인은 중학교 3학년 재학 중이지요?

3. 피고인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지요?


그렇게 반대신문을 마치는 것이었다. 재판장은 변호인을 향하여 물었다.


"피고인을 위하여 신청할 증인이나 제출할 자료가 있습니까?"

"신청할 증인은 없고, 오늘 결심해 주십시오."


그렇게 법무관은 오늘 재판을 마치고 판결선고 기일을 정해달라고 대답하였다. 그런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나는 "살인사건 변호인이 어떻게 저렇게 무성의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고인에 대한 질문도 세 가지로 끝내더니, 그런 상태에서 재판을 마치고 선고기일을 잡아달라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다음 기일까지 피고인을 위하여 증인을 신청하도록 하세요."


재판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음 재판기일을 정했다. 며칠 후 그 중학생 피고인의 부모님이 나를 찾아왔다. 국선 변호사에게 맡길 수 없으니 아들의 변론을 맡아 달라고 했다. 즉시 교도소로 그 피고인을 만나러 갔다. 이미 법정에서 피고인의 뒷모습을 보았기에 이야기가 왠지 잘될 거 같았다. 교도관의 안내로 접견실에 들어온 왜소한 체구의 피고인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내용을 물어보아도 입안에서 우물우물 뭔가를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람과의 대화 자체가 싫거나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그와 함께 있는 순간이 텅 빈 진공관 안에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마음이 열려야 뭐라도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말로 살인을 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먼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다.


조용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런저런 말을 붙이니, 얼마 후부터는 대답을 한마디씩 했다. 그의 부모님은 산에서 나무를 베는 산판일을 하는 관계로 집을 떠나 지냈다. 그 부모는 중학교 다니는 아들을 혼자 집에 두고 밖에서 일을 하다가, 보름에 한 번 정도 집에 와서 밑반찬을 마련해 놓고 집을 떠났다. 홀로 남은 그는 밥을 제대로 해먹지도 못하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식으로 지냈다. 학교에 가서는 수업 시간에 계속 엎드려 잠을 잤다. 담임 선생님은 그런 학생이 보기 싫어서인지 "잠을 자려면 집에 가서 자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수업 시간에 학교를 나왔다.


집으로 가던 중에 유치원 다녀오는 아이를 만났다. 평소 아는 아이도 아니었고, 그날 처음 보았다고 했다. 그 아이의 부모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아이를 근처에 있는 빈집 헛간으로 데리고 갔다. 집주인은 어디론가 이사를 가고, 뎅그러니 빈집만 남아 있는 곳이었다. 어린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다. 그 자리에서 그 아이를 죽였다. 그리고 헛간을 나와 집으로 갔다. 집에 가면서 기분이 안 좋아 길 위에 있는 돌멩이를 발로 툭툭 차면서 걸었다. 평소처럼 라면으로 식사를 하고 TV를 밤새 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늦게 일어나 학교를 가니 수업 중이었다. 계속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본 선생님은 집에 가서 자라고 해서 다시 학교를 나왔다. 그 후 사건 현장 부근을 지나던 중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리고 구속이 되어 수사를 받고 검찰청에 송치되었고,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여러 차례 그 피고인을 접견하였다. 어느 정도 친밀감이 들게 되자, 비로소 공소장에 적힌 범죄사실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검사는 "피고인이 두 손으로 피해자의 목을 졸라서 죽였다"고 공소장에 기재해 두었다. 그런데 피고인은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아이를 데리고 헛간으로 들어간 다음에 헛간 한쪽에 놓여 있던 줄넘기를 가지고 피해자의 목에 감아서 한참 동안을 질끈 잡아당기니 아이가 쓰러졌다."


피고인은 공소장이 기재된 범죄사실과 다른 말을 하였다. 지금 나에게 했던 말을 경찰이나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을 때도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경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는 경찰관이 불러주는 대로 대답만 했다고 했다.


"피해자를 헛간으로 데려가서 손으로 목을 졸랐지?"

"네!"


검찰청에서도 경찰에서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 내용을 검사 앞에 앉아 있는 분이 그대로 확인하는 것으로 조사가 끝났다고 했다. 피고인은 어차피 사람 죽인 건 맞으니까, 손으로 목을 조른 것이나, 줄넘기로 목 조른 것이나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사관이 묻는 대로 "네", "네" 대답했다고 한다. 저런 식으로 수사를 하니 실체적 진실과 다른 결론에 이르고 억울한 사람도 나온다.


그 후 재판과정에서 나는 피고인이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사실과 다른 행위로 살인을 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피고인도 그런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자 그다음 재판기일에 검사는 공소장 변경신청을 했다. 그 사이에 피고인을 검사실로 불러 살인의 방법에 대하여 다시 조사를 하였다. 새로운 공소장에는 피고인이 말한 대로 변경되어 있었다.


"피고인이 헛간에 있던 줄넘기로 피해자의 목을 졸랐다."


그 후 선고기일에 중형이 선고되었다. 그 어린 피고인도 복역을 마치고 석방되어 지금쯤 중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굴착기 운전사가 되고 싶다던 그가 꿈을 이루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