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29)]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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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교수 에세이 (29)]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나?

2021. 02. 18 14:12 작성2021. 02. 22 11:40 수정
정형근 교수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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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어렵다며 300만원을 빌려 간 사법연수원 동기. 그는 이후 돈을 갚지 않았지만 속았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참이 지난 뒤 그의 모습을 보며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생겼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셔터스톡

경희대 도서관에서 사법시험 공부를 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서울법대를 나온 친구가 찾아왔다. 그는 근심 어린 표정의 외숙모와 함께였다. 그 친구는 여전히 고시 준비를 하고 있어서, 나는 그에게 수험생활에 보태라고 매달 20만원씩 보내주고 있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내가 여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어느 날 그 친구가 시험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여 거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인연 때문이었는지 친척 사건을 나에게 소개한 것 같았다.


그 친구의 외삼촌은 사기죄로 2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다투려고 상고를 하겠다면서 그 사기 사건을 맡아달라고 했다. 사정이 어렵다고 하여 수임료를 소액으로 정하고, 그날 은행 마감 시간 안에 송금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은행 마감 시간 오후 4시가 되었음에도 수임료의 송금은 없었다. 의뢰인에게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 사건을 소개해준 그 친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렇게 동시에 연락이 끊어진 것은 돈을 떼어먹는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해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상고장을 제출을 하지 않으면 피고인이 선고받은 징역형이 확정되어 복역을 해야 한다. 변호사가 수임료를 받지 않았다고, 무죄를 다투는 피고인의 상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변호사가 수임료 때문에 상고를 하지 않아 억울한 피고인이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될 상황이었다.


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복잡한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의뢰인은 나의 바로 이런 사정을 알고서 수임료를 보내지 않고, 연락도 끊은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변호인 선임서와 함께 상고장을 법원에 제출하였다. 그 후에도 피고인의 처는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구속되어 있는 피고인을 접견하면, 수임료는 걱정하지 마라 등 믿을 수 없는 말만 반복하였다. 사기죄의 피고인이라서 그런지 말로는 당할 재간이 없었다. 남편은 사기죄로 징역형을 살 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는 변호사를 속여 수임료를 편취하고 있었다. 사건을 소개해준 고시 공부하던 그 친구는 굳이 연락을 끊을 필요가 없는데, 그 후에는 만날 수 없었다. 사기꾼은 만나지 않아야 나를 보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일이었다.


1995년 어느 날 군법무관으로 있던 사법연수원 동기가 전화를 했다. 연수원 다닐 때 특별한 친분은 없었는데, 전화를 한 것이 이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통화를 하니 반가웠다. 그는 며칠 후에 결혼을 할 예정인데, 신혼살림으로 마련한 가구가 신혼집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그래서 장롱 대금 500만원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 돈을 빌려주라고 부탁했다. 그 순간 "보통 신혼가구는 신부가 준비하지 않던가? 사법연수생도 중매쟁이에게 돈을 받고 소개팅을 나간다는 말도 들을 정도로 몸값이 높다고 하던데, 이 친구는 장롱 값도 낼 수 없는 상황에서 장가를 가는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사정이 어려워 나에게 부탁 전화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려운 형편이라고 하여 난감했다. 한편으론 오죽 어려웠으면 나에게까지 부탁을 하나 싶었다. 그래서 500만원은 힘들고 300만원 정도는 가능하다고 했다. 그 돈이라도 보내 달라고 했다. 그가 불러주는 계좌번호로 즉시 송금해 주었다. 돈을 보낸 후에 아무래도 속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과거 사법연수원 다닐 때도 별로 대화도 없던 친구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돈을 보냈던 일이 뭔가 이상하고 속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수원에서 개업 중인 연수원 동기 변호사에게 전화를 하였다. 그분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군법무관하고는 같은 대학 출신이라서 그의 사정을 잘 알 것 같았다. 그분에게 아무개 법무관이 혼인 가구비를 부탁해서 송금했다는 말을 했다.


"야! 바보야! 그런 애한테 사기를 당하냐!" 하며 오늘 오전에 자신에게도 장롱 값 500만원 빌려달라고 전화했길래 "어디서 사기 치려고 그러냐?" 그렇게 혼을 내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너는 연수원 다닐 때 어떤 앤지 몰랐냐?"


마치 연수원 때부터 이상한 친구였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정말로 그의 평판이 어떠했는지도 몰랐다. 실제로 그가 군법무관이라고 하여 그런가 보다 했지, 어디서 근무하는지도 전화번호도 몰랐다.


그렇지만 나는 속았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장차 판·검사로 임관될 군법무관이 사기를 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런 사람이 앞으로 판·검사를 한다는 것도 더 상상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은 후 1년쯤 지났을 때 그가 전화를 하였다.


"형이 보내준 돈 잘 썼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보내준 돈을 잘 썼다고?' 정말 사기 친 거 맞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형편이 어려워서 부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변호사 하면서 수임료나 성공보수를 떼이는 일이 많다 보니 그냥 넘어갔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어린 친구에게 당했다는 씁쓸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그 이후 신문에 깨알처럼 적혀있는 법원⋅검찰 인사이동을 보다 무심코 어떤 이름 앞에 눈길이 멈췄다. 내 돈 300만원 받아 간 그 친구의 이름을 인사이동 명단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런 친구도 임관되어 한자리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십여년이 훨씬 지났을 때도 부장 판·검사 인사이동 명단 중에서 그 이름을 보게 되었다. 그는 부장까지 올라가 있었다.


내가 변호사 휴업을 하고 대학교수로 온 후, 어느 날 대한변호사협회 홈페이지를 방문하게 됐다. 그러다 '변호사 징계내역'을 무심코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그 친구의 이름이 보이고, 그 옆에 "변호사 등록취소"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변호사의 등록취소는 변호사 직무를 계속할 수 없는 결격사유가 발생하면, 대한변협이 변호사 자격등록을 취소하여 변호사 직무를 할 수 없도록 한다. 만약 변호사가 징역형을 선고받아 확정되었다면, 변호사의 결격사유에 해당하여 등록이 취소된다. 그러면 교도소에서 징역형을 마치고 출소를 한 후 5년이 지나야 변호사를 다시 할 수 있다.


나는 그가 왜 등록이 취소되었는지 궁금했다. 판사⋅검사⋅변호사들의 사회는 워낙 좁아서 한 다리 건너면 근황을 어느 정도 알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가 공직에 재직하던 중에 발생한 돈 문제로 형사재판을 받아 형이 확정된 결과, 변호사 등록이 취소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니, 오래전에 동기 변호사가 "너는 연수원 다닐 때 그런 애가 어떤 앤지 몰랐냐?"고 하였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그 후 다시 우연한 기회에 그가 서울에서 개업한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청년 변호사 때문이었다. 그는 한 로펌에 취업을 하였는데 급여를 지급받지 못해 퇴사하였다면서 서울지방변호사회에 그 돈을 받아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그런 분쟁을 조정해 주는 위원으로 있었던 나는 "어떤 변호사인데 월급을 안 주던가요?"고 물었다. 놀랍게도 변호사 등록이 취소되었던 그 친구의 이름을 말하였다.


아마 교도소에서 출소하고 5년이 지난 후에 다시 변호사 등록을 하고 개업을 한 후에 그 청년 변호사를 고용했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월급을 안 준 그 변호사는 부장 출신 전관 변호사라 수임료도 몇 천 만원씩 받기 때문에 돈이 없어서 급여를 안 준 것도 아니라고 했다. 변호사는 법률가답게 준법하며 지내야 할 것인데, 고용 변호사의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않는 것을 보니 안타까웠다. 그 일 후에도 어떤 분이 변호사에게 지급한 수임료를 반환받고 싶다고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어느 변호사인가 싶었는데, 또 그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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