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화성연쇄살인사건 9건 모두 저질렀다" 이춘재의 자백
"내가 화성연쇄살인사건 9건 모두 저질렀다" 이춘재의 자백
여죄는 화성사건 9건 외 성폭행 사건 30여건 등
부인으로 일관하다 급변한 자백 신빙성 검증작업 착수
사실로 확인될 경우 추가 처벌은 불가능하지만 신상공개는 가능

지난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우리나라 범죄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의 고등학생 무렵 사진(왼쪽)과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이 그린 몽타주.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56)가 화성사건 9건을 모두 자신이 저질렀다고 1일 자백했다. 여기에 더해 다른 30여건의 살인⋅강간 범죄를 추가로 저질렀다고 경찰에 털어놨다. 이 범죄 가운데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화성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 성폭행 사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까지 모두 9차례에 걸쳐 이춘재가 수감 중인 부산교도소에서 대면조사를 진행해왔다. 이춘재는 처음에 완강히 혐의를 부인했지만, 지난주부터 서서히 자신의 범행을 털어놨다고 한다. 기존에 DNA가 확인된 5, 7, 9차 화성사건 외에 4차 사건 증거물에서도 자신의 DNA가 나온 점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춘재의 자백이 사실이라면 모방범죄로 드러난 화성 8차 범행을 제외한 나머지 9건의 화성사건 전부와 화성사건 전후 화성 일대에서 3건의 범행, 이춘재가 충북 청주로 이사한 뒤 처제를 살해하기 전까지 2건의 범행 등 총 40여건의 미제사건이 해결되는 셈이다.

경찰은 그러나 이춘재가 당초 혐의를 부인하다가 뒤늦게 자백한 점에 미루어 '거짓 자백' 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재확인 검증 작업에 들어갔다.
경찰 프로파일러들은 "모범수로 복역 중인 이춘재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가석방 가능성이 사라지자 '소영웅심리'로 자신이 모든 화성사건을 저질렀다고 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춘재는 화성사건 이후인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자백의 신빙성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관련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춘재의 자백이 모두 사실로 드러난다 하더라도 추가 처벌 가능성은 전무하다. 공소시효가 모두 지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무기한'이지만, 그렇게 법이 개정된 건 2007년에서다. 그 전에 발생한 살인사건의 경우 공소시효가 15년인데,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마지막 범행이 지난 1991년 4월 3일 벌어져 이미 2006년에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이 때문에 경찰 수사로 이춘재의 여죄를 밝혀내는 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실제 수사 초기 법조계에서는 "원칙적으로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의 용의자를 피의자로 입건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놓으면서 범죄사실 확인이 어려울 거라고 내다봤다.

수사란 기본적으로 공소를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즉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기 위한 것인데,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은 기소할 수 없다. 그래서 이춘재에 대한 수사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백성문 변호사는 "원래 수사를 하는 목적은 기소를 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를 못한다"고 했다.
경찰이 적극적인 강제 수사에 나서지 못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경찰은 처음부터 '강제 수사'는 포기하고 진상 규명과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조사'에 집중했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의 용의자를 피의자로 입건해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을 수 없으니 이춘재를 계속 만나 설득하고 압박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과잉 수사'의 여지가 있었다"며 "그런 문제가 수면 위로 불거지기 전에 수사가 마무리돼 다행"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만약 이춘재가 "경찰의 과잉수사로 인한 거짓 자백"이라고 폭탄 선언을 하고 나오면 사건은 또다시 미궁 속에 빠질 수 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무게를 잘 알고 있다"며 "사건을 종결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만일 경찰이 사건을 이춘재의 범행으로 최종 결론 내린다면 신상 공개는 가능하다. 강력범죄가 확인됐다면 공소시효가 지났어도 신상공개까지 못할 까닭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백성문 변호사는 "신상 공개와 관련한 요건을 검토해볼 때 '신상 공개 못 한다'고 볼 만한 내용은 없는 것 같다"는 입장을 보였다. 조수진 변호사 역시 "신상공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조 변호사는 "특정 범죄 강력 처벌에 관한 법률에 보면 신상을 공개할 수 있는 요건이 열거돼 있는데, 그 중에서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을 것'이라는 요건은 없다"고 말했다.
공소시효가 지나면 신상공개를 하지 못 한다는 규정이 없으니 공개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