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19)] 술을 마시지 않겠다!
[정형근 교수 에세이 (19)] 술을 마시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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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준비는 늘 장래에 대한 장밋빛 환상과 실패에 대한 불안감을 동반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합격과 낙방의 순간을 상상하며,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짬이 나면 한 잔의 술로 내면의 불안을 잊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술을 그만 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셔터스톡
법대 2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교회 전도사로 있던 친구가 아가씨를 소개해 주었다. 기말고사를 마친 홀가분한 날, 오랜만에 양복을 입고 광화문에 있는 다방으로 나갔다. 친구와 함께 나온 아가씨는 색동 한복을 입고 있었다. 울긋불긋한 색동저고리와 치마가 눈에 확 띄었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왜 저런 복장을 하고 나왔나 궁금했다. 다방 안에 있던 주변 사람들도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후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아 사업가의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다방을 나와 근처에 있는 덕수궁으로 갔다. 덕수궁은 서소문 검찰청에 다닐 때 자주 다녔던 곳이었다. 마치 신혼부부가 덕수궁 나들이를 하는 모습 같았다.
학교에서는 겨울방학 고시 준비 합숙을 신림동 고시원에서 하기로 했다. 20여 명을 선발하여 고시원에 들어가도록 하고, 그 비용을 학교에서 제공하였다. 나도 합숙에 참가하였다. 처음으로 신림동 고시촌으로 갔다. 나는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던 월산서원이라는 고시원으로 정했다. 비좁은 방에서 종일 공부하고 잠도 자면서 24시간을 그 방에서 지냈다. 거의 모든 집에 고시생들이 숙식을 하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운동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청년들은 거의 고시생들이었다. 신림동은 저마다 고시합격의 꿈을 품은 수험생들이 전국에서 모여든 장소였다. 결연한 각오를 한 표정들을 대할 때면 긴장이 되었다. 특히 검은 뿔테 안경 속에 빛나는 눈동자들이 주눅 들게 했다. 며칠을 깎지 않아 덥수룩한 수염을 한 사람들은 빵빵한 실력으로 무장해 있는 듯했다.
청년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4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아저씨들도 많았다. 내가 지내던 고시원에도 서너 분이 있었다. 식사 시간에 TV에서 뉴스가 나오면 노장 수험생들은 전두환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무섭다. 무서워" 군사정권답게 분노하고 놀랄만한 인권유린 행위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공중전화 부스 옆을 지나는데, "빨리 돈 보내줘! 여기서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 심각한 표정의 노장 수험생이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나이 든 고시생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면 안되는데⋯"라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제 막 고시 준비하는 저학년 법대생에게 신림동은 무서운 동네였다.
매일 밤 산동네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시내의 야경을 보면서, 창살 없는 감옥에 홀로 갇혀 있는 소외감을 느꼈다. 그래서 소개받은 아가씨를 만나러 신림동에서 광화문까지 나가곤 했다. 그렇지만 얼마 후에 생전 처음 응시하게 될 사법시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내게는 사법시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네요."라고 통보한 후 공부에 전념했다. 그 무렵 일기 한편을 펼쳐본다.
1986년 2월 21일(금)
마음이 무거워 기도합니다. 이제 7일 후면 기숙사로 돌아갑니다. 신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월이면 제28회 사법시험 1차가 있습니다. 제 나이 30에 처음 응시하는 고시입니다. 이 순간까지 제가 얼마나 헤일 수 없는 역경을 거쳐 왔습니까? 어느 한순간 이 시험 합격에 대한 생각을 잊을 때가 없었죠. 더구나 나의 일관된 사법시험에 대한 도전 의지는 급기야 어머님과 형님을 저세상으로 보내야 하는 사태까지 야기했습니다. 암담한 현실에서 탈출하자는 응시(應試)와 합격의 저의가 이제 하나님 백성의 한 사람으로 주님의 크신 능력과 사랑을 힘입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조그만 소망으로 바뀌어졌습니다. 두 분 죽음의 유산인 200만원은 이제 이 봄이 가기 전에 바닥이 납니다. 제가 이제 결단할 때가 온 것을 압니다. 장학고사에 개의치 않고 초지일관 5월 18일에 있을 1차 합격만을 위해서 사투를 벌일 것입니다. 1차 합격이 되어야만 학비와 기숙사가 보장되고 남은 대학 생활이 되살아납니다.
드디어 3학년 1학기 개학이 되어 학교로 돌아왔다. 쌀쌀한 날씨에도 캠퍼스 나뭇가지에는 푸른 물이 오르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새싹을 띄워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온 산이 봄 색으로 변해갔다. 불현듯 세찬 바람결에 실려 가 버린 꽃잎 같았던 어머니를 그리며 산소를 찾아갔다. 온 산에 진달래 가득 피어나는데, 어머니 묘소에는 잔디 한 포기 없이 맨흙 그대로여서 마음이 아팠다. 고시합격만을 향해 달려가는 나를 보고 "장차 개도 소도 안 되면 어떡하냐?"고 걱정했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오는 듯했다.
법대 고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도서관 퇴관 시간에 기숙사로 향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가끔 기숙사로 향하지 않고 학교 앞 소줏집에서 한잔하고 돌아오곤 하였다. 고시 준비는 늘 장래에 대한 장밋빛 환상과 실패에 대한 불안감을 동반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합격과 낙방의 순간을 상상하며,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짬이 나면 한 잔의 술로 내면의 불안을 잊어보려고 애를 썼다. 힘들다고 자꾸 옛 습관대로 음주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술을 그만 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술을 마시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직후에 옆에서 공부하던 선배가 "이따 한잔합시다."라고 했다. 우리는 평소 도서관을 나가면 기숙사 가기 전에 학교 앞에 나가 소주를 마셨었다.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에게 순간적으로 거절할 수가 없었다. 방금 전의 금주 결심도 있었지만, 그거야 차차 실행하면 될 일이었다.
평소대로 밤 11시에 도서관을 나와 학교 앞으로 갔다. 소주 한 병에 파전을 안주 삼아 새로울 것도 없는 고시생의 애환을 주고받았다. 그렇지만 그날은 왠지 술맛이 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부담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한두 잔 마시고 일찍 일어났다. 기숙사로 가려고 다시 교문을 들어서는데, 교정에 가로등이 꺼져 있어 온통 어둠이 가득했다. 우리는 별다른 말이 없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평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웃고 떠들면서 걸었는데, 그날은 그 선배도 말이 없었다.
기숙사까지 100미터도 남지 않은 곳까지 이르렀을 때,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서너 사람은 되어 보였다. 어둠 속이었건만 신체도 건장한 젊은 사람들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칠흑처럼 어두운 교정을 걸어올 때 불안했는데, 막상 불량배일지도 모를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자꾸 걸음이 빨라졌다. 그런데 옆에 같이 걷던 선배는 태연했다. 우리를 발견한 상대방이 말을 걸었다. "어이, 형씨들! 담배 한 대 얻읍시다." 그러자 "담배 없소이다." 느긋하고 농담 섞인 말로 선배가 대꾸했다. 그 말이 끝나자 마자 "이 새끼들이!" 하며 서너 명이 우리를 향하여 우르르 달려들었다. 기어코 무슨 일이 벌어지고 마는구나 싶어, 나는 앞을 향하여 무조건 달렸다.
그런데 서너 걸음 뒤편에서 나를 쫓는 사람이 내 뒷덜미를 움켜잡을 것 같았다. 뒤통수 부근에 그의 손이 닿을 듯 말 듯 했다. 달리던 걸음을 갑자기 멈추고 그를 향하여 외쳤다. "아니, 왜 이러는 거요?" 힘껏 달리던 탄력으로 그가 두어 걸음 앞으로 나갔다가 멈춰선 다음, 나를 향하여 "이 새끼가!" 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상체를 아래로 굽혔다. 그의 주먹이 정수리 부근을 스쳐 갔다. 다시 앞으로 달렸다. 그대로 달리면 잡힐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문리대 앞에 있는 돌다방으로 불리던 곳으로 들어가 돌기둥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 그를 따돌렸다. 기숙사가 바라보이는 길목에 올라서 뒤쳐져 있던 선배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선배 있는 곳으로 다시 가야 하나, 아니면 기숙사로 혼자라도 도망을 가야 하나 고민되었다. 혼자 도망을 한다면, 마치 친구와 같이 산길을 걷던 중 곰을 만나 친구를 버려두고 혼자만 나무 위로 오른 사람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불량배들을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심야에 컴컴한 어둠은 불안과 두려움을 더해주었다. 그래서 급히 기숙사로 달려갔다. 12시가 넘었는데도 모두들 공부 중이었다. 나의 다급한 구조요청을 받은 법대생들이 불량배들이 나타났던 곳으로 뛰어나갔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땅바닥에 그 선배의 안경이 떨어져 있었다. 안경알이 하나 깨져 버린 상태였다. 주먹으로 얼굴을 맞고 코피가 흘렀는지 땅에 핏자국이 여기저기 선명했다. 바로 그 곁에 운동화 한 짝이 있었다. 그놈들에게 맞고 끌려갔는지 알 수 없었다.
체격이 좋게 보였다는 내 말에 일부는 학군단 회관 방면으로 달려갔다. 나도 그편에 끼어 달렸다. 학군단 건물에는 아무런 인적이 없었고 불이 켜진 곳도 없었다. 다시 돌아왔더니, 도서관 쪽에서 그 선배가 나타났다. 그 선배는 불량배들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얼굴을 맞고 쓰러진 상태에서 발길질을 당했다고 한다. 겨우 일어나 근처에 있는 도서관으로 도망을 하면서 가방을 놓고 갔는데, 그들이 가져가 버렸는지 현장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사법시험이 임박한 상태에서 평소 보던 책을 잃어버렸으니 큰일이었다. 그 선배를 구하려고 기숙사에서 몰려나온 동료들이 20여 명이 넘었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중에 얻어맞아 안경도 깨지고 책가방도 빼앗겨 버린 선배의 모습을 보면서, 나 대신 선배가 당한 것이 아닌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