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서 태어나 베란다에서 멈춘 1.6kg 생명…‘비정한 엄마’는 이미 벼랑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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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서 태어나 베란다에서 멈춘 1.6kg 생명…‘비정한 엄마’는 이미 벼랑 끝이었다

2025. 08. 12 15:13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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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살해’ 징역 6년→3년 6개월

법원 “가해자이자 폭력 피해자”

화장실에서 낳은 미숙아를 방치해 숨지게 한 여성에게 1심은 징역 6년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A씨의 평생에 걸친 가정폭력 피해와 사회적 고립을 참작해 형량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 /셔터스톡

화장실에서 홀로 낳은 1.6kg 미숙아를 방치해 숨지게 한 여성에게 항소심 법원이 1심보다 형량을 대폭 낮춰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죄는 무겁다고 전제하면서도, 피고인이 평생 가정폭력과 사회적 고립에 시달려온 ‘또 다른 피해자’였다는 점을 참작했다.


화장실에서 시작된 비극, 베란다에서 끝나다

2023년 10월 28일 새벽, A씨는 월세 66만 원짜리 원룸 화장실에서 극심한 복통에 시달렸다. 임신 7개월 차였지만, 그녀는 예상치 못한 조산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잠시 후, 1.6kg의 작은 생명이 차가운 변기 안으로 떨어졌다.


아이는 큰 소리로 울었다. A씨는 두려움 속에서도 아이를 꺼내 씻기고 탯줄을 끊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절망이 그녀를 덮쳤다. 아이의 아버지는 이미 연락이 끊긴 전 남자친구였고, 현재 동거 중인 폭력적인 남자친구에게는 임신 사실조차 숨겨왔다. 당장 기댈 곳도, 아이를 키울 돈도 없었다.


"아기를 낳았는데 못 키워요"

"애기 입양 보내기"


A씨는 절박하게 인터넷을 검색했다. 결국 그녀는 아기와 탯줄, 태반을 함께 투명 비닐에 담아 종량제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수건과 패딩으로 감싸 차가운 베란다에 둔 채, 요리주점으로 출근했다.


다음 날 새벽 퇴근해 돌아온 집, 아이는 입술이 파랗게 변한 채 숨져 있었다. 1심 법원은 이런 A씨의 행위를 ‘아동학대살해’로 보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법원이 들여다본 ‘가해자 안의 피해자’

하지만 서울고등법원 제6-1형사부(재판장 정재오)는 원심 징역 6년을 파기하고 형량을 절반 가까이 줄였다. 재판부는 판결의 상당 부분을 A씨가 겪어온 삶을 서술하는 데 할애하며, 그녀가 어째서 그런 비극적 선택에 내몰렸는지 설명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의 삶은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다.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렀다. 초등학생이었던 A씨는 아버지를 피해 칼과 가위를 숨기고, 직접 경찰에 가정폭력을 신고해야 했다.


부모의 이혼 후에도 불행은 계속됐다. 잦은 전학과 불량 교우들의 갈취로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성인이 되어 만난 남자친구마저 폭력적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부친 폭력에 따른 트라우마에 대하여 한 번도 정신과적 진료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범행이 '확정적 고의'에 의한 살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완벽히 고립된 상태에서 겪은 정신적 공황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아이 아빠와는 연락 두절, 폭력적인 동거남과 유일한 버팀목인 어머니에게는 차마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조산을 맞닥뜨렸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정신적, 심리적으로 크게 당황하여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성적,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채 주저하다가 그냥 피해자를 원룸에 방치했다"고 보았다.


법원의 고심…엄벌만이 능사 아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은 법이 지키고자 하는 최고의 가치"라며 A씨의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법원은 그녀의 삶을 짓눌러온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전 남자친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황은 어린 시절 부친의 가정폭력 등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고 보인다"며, "가정폭력, 학교폭력 등에 따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살아가다 이 사건을 겪었다"고 분석했다.


법원은 A씨가 저지른 끔찍한 결과 이면에, 그녀 역시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던 사회적 약자이자 폭력의 피해자였음을 인정했다. 징역 3년 6개월이라는 감형은, 비정한 엄마를 향한 엄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법부의 깊은 고심이 담긴 결과다.


[참고] 서울고등법원 제6-1형사부 2024노2491 판결문 (2025. 4. 16.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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