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조제마다 전화 전쟁…새 정보시스템이 갈등 끝낼까”
대체조제마다 전화 전쟁…새 정보시스템이 갈등 끝낼까”
대체조제 시스템 구축의 법적 의의와 과제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2000년 7월 의약분업 제도의 도입은 의사와 약사가 각자의 전문 영역을 분담하여 처방과 조제를 상호 점검하고, 환자에게 투약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획기적인 변화였다.
이 제도는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투약을 방지하고, 환자에게 처방된 약의 정보를 알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 제도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갈등과 불편이 끊이지 않았다.
갈등의 핵심은 대체조제였다.
약사법상 약사는 의사가 처방전에 적은 의약품과 성분, 함량, 제형이 같은 다른 의약품으로 대체하여 조제할 수 있다. 이는 의약품 동등성을 통해 약제비를 절감하고, 혹시 모를 품절 상황 등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행 약사법 제27조는 원칙적으로 약사가 대체조제를 하려면 미리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발생한 법적 쟁점을 해소한 것이 대법원 2007. 9. 6. 선고 2005두13940, 13957 판결이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대체조제에 필요한 '동의'는 처방전별로 이루어지는 개별적·구체적인 동의만을 의미하며, 의약품별로 이루어지는 포괄적인 동의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이는 의약분업의 취지를 달성하고 국민 건강에 대한 침해 우려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 안전장치였으나, 동시에 현장에서는 심각한 비효율을 낳았다.
팩스와 전화에 멈춰버린 조제: 환자의 '골든타임'을 위협하는 비효율
대법원 판결 이후 약사들은 매번 처방전마다 의사에게 전화나 팩스를 보내 동의를 구해야 했다.
약사법 시행규칙 제17조도 전화·팩스 또는 컴퓨터통신 등을 이용한 동의를 규정하고 있으나, 실무는 만만치 않았다.
현행 제도의 주요 문제점으로는 의사와의 연락 어려움이 가장 먼저 꼽힌다. 의사가 진료 중이거나 수술 중인 경우, 연락이 지연되면서 환자는 약을 받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고, 이는 환자의 불편으로 직결되었다.
또한, 전화나 팩스는 동의 여부를 명확히 기록하고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사후 법적 분쟁의 소지를 남겼다. 이 외에도, 사전 동의 없이 대체조제한 경우에도 약사는 의사에게 1일(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3일) 이내에 통보해야 하는 번거로운 사후 통보 의무를 이행해야 했다.
이러한 비효율적이고 복잡한 절차는 의료기관과 약국의 업무 부담을 가중하는 주범이 됐다. 실제로 부당한 대체조제에 대한 약사법 위반 처벌 사례가 다수 발생하며, 현장의 긴장감은 높아졌다.
긴급 해결책, '대체조제 정보시스템' 구축 법적 근거 마련되다
이러한 비효율과 갈등을 해소하고 의약분업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한 해법으로, 정부는 약사법에 의사와 약사 간에 대체조제를 효율화할 수 있도록 대체조제 정보시스템의 구축·운영 근거를 마련했다.
이 시스템은 전화나 팩스로 이루어지던 동의 및 통보 절차를 전산화하여 의료 현장의 골든타임을 지키겠다는 목표다.
시스템 도입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장점은 명확하다.
첫째, 업무 효율성이 크게 제고된다.
번거로운 전화나 팩스 절차를 전산화하여 의사와 약사의 업무 부담을 경감시키고, 실시간 동의 확인 및 통보가 가능해 대체조제 절차가 신속해진다.
둘째, 환자 안전이 강화된다.
대체조제 내역의 체계적 관리를 통해 약물 이상반응 모니터링이 강화되고, 원활한 의사소통으로 부적절한 대체조제를 방지하며,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
셋째, 의약품 유통 관리 개선과 약제비 절감 효과도 기대된다.
대체조제 현황 통계는 의약품 수급 정책 수립에 활용되며, 생물학적 동등성이 인정된 제네릭 의약품 사용을 촉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동의 및 통보 내역의 명확한 기록은 법적 분쟁 발생 시 입증을 용이하게 하여 법적 리스크를 경감시킨다.
그러나 시스템 도입에는 단점과 우려사항도 따른다.
막대한 시스템 구축 및 운영 비용이 소요되며, 특히 환자의 처방 정보와 조제 내역 등 민감한 정보를 전산 관리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정보시스템 장애 발생 시 대체조제 업무가 마비될 우려도 있다.
또한, 의료 현장에서는 새로운 시스템 사용에 대한 거부감이나 적응 기간이 필요하며, 시스템이 대체조제를 지나치게 용이하게 만들 경우 의사의 처방 의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처방권 침해 우려도 제기된다.
따라서 대체조제 정보시스템의 성공적인 도입은 단순히 행정 절차의 간소화를 넘어, 의약분업 제도의 취지인 환자 안전 강화와 효율적인 의약품 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핵심 해결책으로 주목받는다.
다만,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 체계 구축, 안정적인 시스템 운영을 위한 기술적 대비, 그리고 의료 현장의 의견 수렴을 통한 의사-약사 간 역할 분담의 균형 유지가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정보시스템이 의사-약사 간 협력의 다리가 될지,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지는 향후 시스템의 설계와 운영 방식에 달려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