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의 재판 끝에 "전기 도살은 잔인하다" 인정⋯미약하지만 법원도 변하고 있다
5번의 재판 끝에 "전기 도살은 잔인하다" 인정⋯미약하지만 법원도 변하고 있다
1·2심 무죄 받았던 '전살법'⋯잔인한 방법에 해당하는지 두고 법적 공방
대법원, "'잔인'의 의미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하는 유동적인 것" 전향적 판단

개를 전기로 감전 시켜 죽이는 '전기 도살'이 동물보호법에 어긋난다는 대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처음 재판이 시작된 지 4년 만의 결론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재래시장의 길목. 한 가게 입구에서 개 한 마리를 놓고 참혹한 광경이 벌어졌다. 한 남성이 긴 쇠꼬챙이를 개 입에 쑤셔 넣었다. 순간 개는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목줄에 묶여 있어 꼼짝할 수 없는 상황. 개는 한참을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더니 바닥에 축 늘어졌다. 충격 때문인지 다리 한쪽이 떨리듯 움직였다.
한 동물단체가 공개한 개 도축 현장 모습이다.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동물의 입에 넣어 감전 시켜 죽이는 이른바 '전살법(電殺法)'으로, 재래시장과 개 농장 등에서 흔하게 쓰이던 도살 방법이었다.
10년 전부터 동물단체들이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하는 '동물 학대'"라고 비판했지만, 형사처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는 상태였다. 핵심은 "전살법이 동물보호법에서 금지하는 '잔인한 방법'에 해당하느냐"였다.
잇따른 형사 고발 끝에 드디어 지난 9일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왔다. 유죄 판결이었다. 1심과 2심 때만 해도 '무죄'가 나왔던 사건이었지만 대법원은 "전기 감전을 시켜 동물을 죽이는 행동은 동물보호법 제8조에서 말하는 '잔인한 방법'에 해당한다"고 명확히 했다.
이런 기준이 세워지기 전까지 동물보호에 대한 법적인 인식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해왔을까. 최근 3년간 전살법을 포함해 '도살'로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은 대표적인 사건 3개를 중심으로 분석해봤다.
사건들을 분석한 결과, 도살에 대한 법원의 입장은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동물의 죽음은 함부로 이뤄져선 안 되며, 동물보호법에서 정한 바에 따라 엄격히 이뤄져야 한다는 방향으로의 진전이 눈에 띄었다.
동물보호법 제8조는 누구든 동물에 대해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여기엔 △목을 매달거나 △고의로 사료를 주지 않거나 △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이 행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전향적으로 바뀐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개농장주 A씨의 경우 전기충격기 등을 이용한 전살법으로 5년 동안 연간 30마리의 개들을 도살한 혐의를 받았는데 1심과 2심 모두 무죄였다. 지난 2017년 당시 재판부는 "전살법을 이용해 개를 죽인 것은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한 경우가 아니다"고 봤다.
비슷한 시기, A씨와 같은 방식인 전기 충격으로 개 5마리를 죽인 다른 사건에서도 유죄가 나오긴 했지만, 처벌 수위는 아주 낮았다. 광주지방법원 재판부는 지난 2017년 11월, 피고인 B씨에게 "다른 개가 보는 앞에서 개를 죽였다"며 벌금 50만원을 처했다.
만일 B씨가 다른 개가 보지 않는 곳에서 전살법으로 개를 죽였다면 무죄가 나올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처벌 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한 건 지난 2018년이었다.
법원은 강한 처벌을 잇달아 내렸다. 지난 2018년 3월, 제주지법은 개를 오토바이에 연결해 끌고 간 뒤 목을 매달아 죽인 피고인들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를 탈진하게 만들어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고 본 것이다.
같은 해 4월 '쇠파이프 올무'로 개의 뒷다리를 걸어 강제로 끌고 간 또 다른 사건을 맡은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은 "동물의 생명과 신체를 존중하려는 국민의 정서를 저버린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피고인들을 꾸짖으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그 기조가 대법원판결로까지 이어졌다. 항소심(2심)까지 무죄가 나온 개농장주 A씨 사건을 "유죄 취지로 봐야 한다"고 파기해서 항소심 재판부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잔인한 방법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해당 도살 방법(전살법)으로 인해 겪을 수 있는 고통의 정도와 지속시간, 사회의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원심은 이 사건 도살 방법이 잔인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섣불리 단정했다"고 지적했다.
특정한 방법 자체를 금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동물이 느끼는 고통을 최소화하고, 동물에 대한 사회적 통념 등을 고려해야만 '잔인한 방법'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당시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고법에 돌아온 A씨 사건은 벌금 100만원으로 바로잡혔고, 다시 대법원에 올라갔다. 피고인이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상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9일 열린 대법원 재상고심에서도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가 확정됐다. 선고는 유예됐지만, 유죄는 유죄였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전살법이 동물에게 상당한 고통을 주는 방법이 "맞다"고 확실히 했다. 잔인한 방법을 더 폭넓게 인정하며 1심과 2심의 무죄 판결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재판부는 "동물의 생명 보호와 그에 대한 국민 정서의 함양이라는 동물보호법의 입법 목적을 충실히 구현한 판결"이라고 자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