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권위가 떨어진다" 비판에⋯'존댓말 판결문' 이인석 판사가 생각하는 진짜 권위
"법원 권위가 떨어진다" 비판에⋯'존댓말 판결문' 이인석 판사가 생각하는 진짜 권위
'읽기 쉬운 판결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계기⋯지난해 1월부터 존댓말 판결문 작성 시작
"사극에서 나오는 극존칭을 쓴다?" 이인석 판사가 말하는 '존댓말 판결문'에 대한 오해들
"국민들이 판결문을 잘 읽어야 법치⋯비판과 칭찬 과정 겪어야 발전할 수 있어"

판결문을 존댓말로 써 화제가 된 대전고법 이인석 부장판사. 그를 직접 만나 이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존댓말 판결문에 대한 오해 등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서초=박선우 기자
"저는 후배들에게는 말 놓고, 선배한테는 형이라 하고 그런 때가 있었어요."
한 판사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당시도 늘 존댓말을 쓰는 판사들이 다수 있었는데도 자신은 후배에게는 무조건 반말, 선배에게는 무조건 존댓말을 쓰던 사람이었다는 반성이었습니다. 요즘이라면 '꼰대' 소리 들을 일이지만, 과거엔 그렇게 해야 사람들과 친해졌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식의 너스레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당당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말 일색이던 판결문에 '존댓말'을 사용하자며 앞장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본격적으로 존댓말 판결문을 쓴 '첫 타자'입니다. 존댓말을 쓰기 위해 '국립국어원' 질의응답 게시판에 직접 질문을 올리고 국어학자에게 문의하는 등 많은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존댓말 판결문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따뜻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판결이나 제대로 해라"는 네티즌들의 지적과 보수적인 법조계의 눈치 주기가 이어진 것이죠.
하지만 이것이 궁극적으로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는 소신을 밝힌 대전고법 이인석 부장판사를 만나봤습니다.
편집자주
이인석 판사의 뜻에 발맞춰 이번 로톡뉴스 인터뷰 기사는 존댓말로 구성했습니다.

대전에서 존댓말 판결문 작업을 시작한 지 지금 1년 6개월 돼요. 주변에서는 널리 알리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섣불리 알리는 것보다 연구하고, 어느 정도 형태도 만들어 놓은 다음에 알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존댓말 판결이 아무 문제 없는지 지켜본 다음에 알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대전에 계신 기자들이 판결문 공람을 잘 안 하는 것 같았어요. 누군가 존댓말 판결문을 봤다면, "이상하다"면서 저를 찾아와 취재했을 텐데 아무도 취재를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잘됐다. 조용하게 연구해 볼 틈이 있겠구나" 해서 조용히 1년 넘게 쓰고 있었어요.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 가는 판결문들이 많아요. 존댓말로 미적분 설명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잖아요.
대여섯번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 때문에 '판결문을 읽기 쉽게 하자'는 운동과 노력이 법원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예를 들어 긴 문장을 짧게 하거나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꾸는 등의 노력이에요. 이런 노력이 진화하면서 존댓말 판결까지 나아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판결문은 치열하게 다투는 당사자들의 법률관계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읽기 쉽게 쉬운 언어로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이건 판사 한 명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은 엄두를 못 내고 있지 않았나 합니다.
그렇지만 국민이 받아보는 법원의 공문서는 판결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존댓말로 돼 있어요. 그런 것에 비춰볼 때 국민이 받아보는 문서는 존댓말로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과 출신의 기자는 판결문을 수학에 빗댄 이 판사의 설명이 매우 공감이 됐다. 판결문을 볼 때마다 외계어가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든 건 기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존댓말 판결문이라고 해서 '이다'를 '입니다'로 고치는 것만 하지 않아요. 일본식 말투 남아있는 것을 우리말로 바꾼다거나 주어와 술어를 명확히 해주는 것 등을 동시에 진행해요.
'읽기 쉽게 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이 작업이 굉장히 중요해요. 평서문을 존댓말로 바꾼다고 해서 읽기 쉬워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약간 부드러운 느낌이 날지는 몰라도. 그래서 어미만 바꾸는 게 아니라 문장 전체를 고려해 작업하고 있습니다.
저는 '쓰기 쉬운 판결문'보다 '읽기 쉬운 판결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판결문은 우선 당사자가 받아보지만, 당사자가 아니어도 해당 판결에 관심이 있는 국민들은 읽어보게 되거든요. 그분들이 읽기 쉽게 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판결에서 나오는 법리나 규범에 대한 해석은 모든 국민들한테 적용되잖아요. 국민들이 판결문을 잘 읽어야 법이 취지대로 잘 구현되는 것이고, 이른바 법치국가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법원이 하는 판결을 많은 국민이 읽고, 비판과 칭찬을 해주고 그런 과정에서 발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궁금하면 제 옆방의 판사나 다른 판사들에게 물어보는 편이에요. "이렇게 써도 될까?" "이렇게 쓰면 강제집행하는 데 문제없을까?" "읽는 사람 입장에서 어느 게 더 좋으니?" 이런 식으로요.
제가 오지랖이 넓어요. 학회나 세미나에서 사람들 만날 때 주제가 없어서 멍하니 있으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이거 어떤 거 같아?"라고 물어보기도 했죠.
'국립국어원'에 문의도 했습니다. 국립국어원에 "이 문장을 존댓말로 바꾸려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라고 질의응답 게시판에 글을 쓰면 답을 참 잘해줘요. 이메일로도 보내주고요.
"지급하라"를 어떻게 고치면 좋겠냐고 물어봤더니 "하십시오"하고 "하세요"가 있는데 "하십시오"가 문어체고 "하세요"는 구어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하십시오"가 맞겠다 싶어서 "하십시오"를 쓰고 있어요. 판사라고 말 안 했어요. 국립국어원에서는 저한테 이거 해줬는지 모를 거예요. (웃음)
또, 알기 쉬운 우리 법으로 법령을 바꾸는 위원회가 법무부에 있었는데 거기서 2년 정도 위원으로 있으면서 함께 위원으로 있는 국어학자들에게도 틈나는 대로 조금씩 물어봤습니다.
평서문이나 존댓말이나 시간 차이가 거의 없어요. 생각보다 오래 안 걸리더라고요. 분량도 생각보다 안 늘어났어요. 물론, 처음 쓸 때는 연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죠.
판결문은 '강제집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존댓말 판결을 해도 강제집행이 잘 되는지, 판결문으로 기능하는 데 문제점이 없는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존댓말로 판결문을 작성해도 아무 문제 없다고 얘기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이유는 한 번에 혼자서 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던 거죠.
민사 판결문만 놓고 보면 주문부터 존댓말로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판결문 전체를 존댓말로 만드는 데는 1년 2개월 ~ 1년 4개월 정도 걸렸어요. 짧은 것부터 시작한 뒤 조금씩 해나간 거죠.
"존댓말 판결하면 위법 아냐?"는 얘기도 있었어요. 저는 아무리 찾아봐도 존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법령, 판례가 전혀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판단한 거죠. 이견이 있는 분도 있으실 거예요.
그리고 법조가 가장 보수적인 곳이에요. 그래서 존댓말로 바꾸자고 하면 "왜 그런 거 하냐" "괜히 일만 늘어난다" "법원의 권위가 떨어지는 거 아니냐" 등의 의견이 있어요. 힘든 정도는 아니지만, 말썽을 피우는 사람같이 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게 부담스럽긴 합니다.
튀거나 무언가 먼저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문화가 있긴 하죠. 그래도 누가 먼저 시도해서 괜찮다면 같이하는 분이 더 늘어날 것 같아요.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야 해요.
대법원에서는 공식이나 비공식적으로 아무 의견 못 들었어요. 보긴 봤을 텐데 아무 얘기도 없더라고요.

제가 존댓말 판결을 한다니까 "나도 해보겠다" 한 판사님이 있어요. 판결문은 아니지만, 법정에서 선고할 때 존댓말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주문은 명령문이니까 "~하라"는 식으로 하는데 "피고는 원고에 100만원을 지급하십시오"라고 존댓말로 선고하는 식이죠. 배석 판사들이 그 모습을 보고 "경륜이 많은 판사가 존댓말로 선고하는데 참신하고 인상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해요.
또, '화해권고결정문'을 존댓말로 쓴 판사님도 계세요. 하고 싶다는 분들 많은데 그분들만 존댓말 판결문을 작성해도 법원이 많이 바뀔 것 같아요.
존댓말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 극존칭을 떠올리는데, 일상적으로 쓰는 존댓말을 생각하면 돼요. 예컨대 "피고인께서는 강간을 하시었사옵니다"가 아니라 "피고인이 강간을 하였습니다"는 식으로 쓰는 것이죠. 하지만 처음에는 잘 모르고 "나쁜 사람에게 높여줘도 돼?"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평소에 사용하는 존댓말을 쓰는 것이고, 사극에 나오는 그런 존댓말을 쓰는 게 아니라고 말씀드리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사회에서는 권위가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한테 명령하는 것이 권위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을 해서 상대방의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힘이 권위라고 생각해요.
현대사회에 맞는 판결의 권위는 읽기 쉬운 판결을 쓰되, 판결에 나오는 논증과 증거에 기초한 사실인정들이 설득력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런 판결 내용을 국민들이 존중하고 따른다면 거기서 진짜 권위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존댓말 쓰는 게 좋을 뿐만 아니라 대세, 시대의 흐름이라 생각해요.
제가 법원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남자들 세계에서는 '호형호제'하는 문화였어요. 무조건 나이 어린 사람한테 반말 쓰고 나이 많은 사람한테 형이라고 해야 친해지는 거로 생각하는 "으쌰으쌰 우리가 남인가" 이런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서 살다가 "법원에서 재판할 때는 후배 판사도 동일한 권리를 갖고 있고 동일하게 존중받으면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하는 거는 안 맞다"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요새는 존댓말 쓰는데 좋더라고요.
법원에서도 저만 그런 게 아니라, 후배들한테 존댓말 하는 판사들이 다수파가 됐어요. 제가 자신 있게 존댓말 판결문도 나중에 다수파가 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가 존댓말 판결문을 쓴다고 해서 이제까지 평서문으로 판결문을 쓴 판사들이 잘못해 왔다는 취지는 전혀 아니에요. 많은 판사들이 평서문으로 판결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서 국민을 존중하고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평서문을 썼기 때문에 국민 존중 안 하는 나쁜 판사라고 얘기하려는 취지도 전혀 아닙니다.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존댓말로 판결문을 쓰는 게) 좋으니까 같이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