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뺑뺑이'의 원인? 응급실 의사들을 얼어붙게 만든 10억 배상 '그 판결'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 응급실 의사들을 얼어붙게 만든 10억 배상 '그 판결'
전문의 휴가 중 유방외과 전문의가 집도한 신생아 응급수술
1심 "의사라면 당연한 선택"
2심 "교과서적 수술법 안 지켜 10억 배상"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는 응급 상황에서 다른 외과 의사가 생후 7일 아기를 수술했다. 1심은 “최선을 다했다”고 봤지만, 2심은 10억 배상을 판결했다. /연합뉴스
최근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환자 거부 사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의료계는 그 원인 중 하나로 "선의로 환자를 받아 수술해도 결과가 나쁘면 거액을 배상해야 하는 가혹한 판결"을 지목한다.
도대체 어떤 판결이기에 의사들이 '환자를 받는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것일까. 의사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는, 바로 그 10억 배상 판결의 전말을 살펴봤다.
생후 7일 아기의 초록색 구토⋯ 수술대에 오른 유방외과 전문의
사건은 2017년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 시작됐다. 생후 일주일 된 아기가 담즙성(녹색) 구토 증세를 보여 응급실을 찾았다. 진단명은 '중장 이상회전 및 염전증'. 장이 꼬여 피가 통하지 않고 썩어가는, 분초를 다투는 응급 질환이었다.
하지만 당시 병원에는 소아외과 전문의가 휴가 중이었다. 수술을 지체하면 아기가 사망할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당직 중이던 유방외과 전문의 A씨가 메스를 들었다.
1차 수술 결과 꼬인 장은 풀렸지만, 이틀 뒤 장이 다시 꼬이는 불행이 닥쳤다. 결국 2차 수술을 통해 아기의 소장 대부분을 잘라내야 했고, 아기는 사지마비와 발달지연이라는 평생의 장애를 안게 됐다.
1심 “최선을 다했다” vs 2심 “교과서적 원칙 무시”
부모는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아외과 전문의도 아닌 유방외과 의사가 수술한 게 문제"라는 주장이다. 1심과 2심의 판단은 180도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다고 다른 병원으로 보내느라 시간을 지체했다면 아기가 사망했을 것"이라며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유방외과 전문의라 하더라도 외과 전문의로서 응급 수술을 한 것 자체에는 과실이 없다고 본 것이다. 오히려 부모가 미납한 진료비 2억 3천만 원을 병원에 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인 서울고등법원은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집도의가 중장염전 수술의 표준인 ‘래드 수술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단순히 꼬인 장을 푸는 것을 넘어, 장간막 기저부를 넓히고 소장과 대장을 재발하지 않는 위치로 배치했어야 함에도 이를 생략해 결국 재발과 괴사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2심 재판부는 "전문의가 직접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전공의 보고에만 의존해 수술 시기를 결정한 점, 표준 수술법을 따르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병원 측의 책임을 70%로 인정해, 지연이자까지 합쳐 약 10억이 넘는 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의료계의 절규 “최종 치료 못 하면 환자 받지 말라는 건가”
이 판결이 나오자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등은 "생명을 살리려 위험을 무릅쓴 의사에게 '교과서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10억 원을 물리는 나라에서 누가 응급실을 지키겠느냐"고 성토했다.
실제로 이 판결 이후 응급실 현장에서는 소아 전문의가 없거나 장비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처음부터 환자 수용을 거절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 사태의 중요한 도화선이 된 것이다.
[참고]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가합556288(본소), 2018가합586170(반소) 판결문 (2022. 2. 9. 선고)
서울고등법원 2022나2010529(본소) 2022나2010536(반소) 판결문 (2023. 10. 19.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