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폭행 고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의붓아빠의 8살 딸 성폭행 무죄 선고
[단독] "성폭행 고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의붓아빠의 8살 딸 성폭행 무죄 선고
1심에서는 "폭행⋅협박 없었다"며 징역 12년⋯2심에서는 "자세히 진술 못했다"며 감형
피해자에게 바라는 게 많았던 재판부⋯어린 피해자는 얼마나 더 자세히 말했어야 했나
변호사들 "피해자 나이 고려하지 않은 아쉬운 판결"
![[단독] "성폭행 고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의붓아빠의 8살 딸 성폭행 무죄 선고 기사 관련이미지](https://d2ilb6aov9ebgm.cloudfront.net/2020-05-26T17.18.04.896_571.jpg?q=80&s=832x832)
만 8살 아동 피해자가 성폭행당했을 때 고통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재판부가 가해자인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 나왔다. /셔터스톡
만 8살 아동이 성폭행을 당했을 때 고통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가해자인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 나왔다.
피해 아동을 진료한 산부인과 의사가 "(질막 파열은) 성관계에 의해 생긴 결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냈지만, 서울고등법원 제8형사부(재판장 정종관 부장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추행죄만 인정했다. "(피해 아동이) 잘못 알고 진술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사건 당시 만 8살이었던 피해자 A양은 "아빠가 올라가서 막 넣다가 뺐다가 했었어요. 아팠었어요" 라고 까지 진술했지만, 서울고법 재판부는 "막연한 진술"이라고 판단했다. 피해자가 더 구체적이고 더 상세하게 표현했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 판결은 2심 판결이었는데,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인정됐다.
사건은 지난 2018년 여름으로 올라간다. 당시 8살 A양과 의붓아버지 B씨 사이에는 다른 사람은 모르는 '비밀'이 있었다.
의붓아버지 B씨는 A양을 성적으로 학대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한테 비밀이야.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야"라고 말하며 A양의 입을 막았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A양은 '말하지 못한 이유'로 "(아빠가) 나를 때리거나 엄마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는 B씨의 평소 태도에서 드러난다. 판결문에 따르면 의붓아버지 B씨는 부인에게 "남의 아이 키워주는데 고마운 줄을 모른다"고 소리치기도 했고, A양에게는 "너희 아빠에게 가라"고 말하면서 집 밖으로 내쫓기도 했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손바닥으로 때리는 일도 잦았다.
자신의 눈치를 보는 A양을 B씨는 성적으로 유린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게 하거나, 거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자고 있을 때도 대범하게 A양의 몸을 만졌다.
한번은 A양이 의붓동생과 싸워 울고 있었는데, B씨는 이런 A양을 달래주는 척 침대 위로 올라오게 해 성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A양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자 평소 A양이 좋아하는 영상을 휴대전화로 보여주면서 유인했다.
사건을 맡은 검사는 의붓아버지 B씨가 A양을 협박해서 저항하지 못하도록 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13세 미만 미성년자 ①강간 ②유사성행위 ③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했다.
이 혐의가 인정되려면 '폭행 또는 협박'이 먼저 인정돼야 했다. 검사는 평소 B씨가 보여준 태도와 A양이 품었던 두려움을 근거로 제시했다. 특히 자신이 B씨를 거부하면 어머니가 다칠까 봐 무서워했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의붓아버지 B씨가 한 일련의 행동들이 '폭행 또는 협박'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전국진 부장판사) "A양이 소극적인 거부 의사만 밝혔을 뿐이었고,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며 "A양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대신 '위력'에 의한 범죄라고 판단했다. 위력이란 폭행·협박에 이르지는 않지만,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이다.
이에 의붓아버지 B씨는 1심에서 13세 미만 미성년자 ①위계 등 간음과 ② 위계 등 추행 혐의가 인정돼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의붓아버지는 1심에 불복해 항소했다. 검사도 의붓아버지의 폭행 또는 협박을 인정해달라며 항소했다.
하지만 지난 2019년 8월 30일, 2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제8형사부는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의붓아버지는 9년으로 감형되고 10년이었던 취업 제한도 5년으로 줄어들었다.
감형된 이유는 '강간'이 '추행'으로 뒤집혔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피해자 A양이 '강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하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만약 성인인 피고인이 나이 어린 피해자를 성폭행 한 게 맞는다면, 당시 피해자는 상당한 통증이나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는데 피해자는 '그때 아빠가 넣었을 때는 아팠는데 맨날 아픈 것은 아니었다.' '잠깐만 아팠어요.' 라는 등 다소 막연하게 진술했을 뿐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관해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하지 못했다"고 했다.
산부인과 의사의 "성관계에 의한 질막 파열로 추정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질막 상태가 선천적인 모양일 수도 있고, 손상의 원인을 의학적으로 명확히 구별하기 어렵다"는 소견을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변호사들은 '아쉬운' 판결이라고 의견을 내놨다.
법률 자문

법무법인 해자현의 조은결 변호사는 "8살 여아에게 (해당 범행 과정에서) 과연 아무런 신체적 유형력의 행사가 없었을지 의문"이라며 "간음을 하는 과정이나 유사성행위를 하도록 하는 과정에서도 신체를 상당히 누르거나 붙잡거나 하는 행위가 있었을 것이고 이것 자체가 아이에 대한 심각한 폭행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속적으로 피고인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지속적인 협박 아래에 있었다고 판단했어도 무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사건 당시 피고인의 피해자에 대한 협박이 존재했다고 보이며 이를 폭행·협박으로 인정할 여지가 있었다는 취지다.
법무법인 굿윌파트너스의 주명호 변호사는 "(판결문에 제시된) 증거 목록 상의 진술분석 등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위계와 위력을 인정한 법원의 판단이 반드시 잘못됐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피해자가 피고인의 말과 행동에 의해 충분히 억압된 상황에서 성폭행 등이 이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내용이 판결문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어 판결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기원의 강기원 변호사는 "피해자가 피고인을 두려워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다면 이 역시 폭행이나 협박으로 볼 수 있다"며 "이 정도에 해당했음에도 폭행으로 보지 않았다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강 변호사는 "그 두려움의 정도가 어느 정도가 돼야 직접적인 폭행·협박이 없어도 폭행·협박이 있었던 것으로 인정할지는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위계로 본 것은 아니고, 평소 아버지에 대한 무서움이 해당 범죄에서 말하는 폭행·협박에까지 이르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변호사들은 법원이 '어린' 범죄 피해자를 대하는 데 있어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피해자와 같은) 연령대의 아이들은 아직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분별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자신이 어떠한 행위를 하고 있고, 어떠한 일을 당하고 있는지 그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며 "이러한 아이들의 정신적인 수준이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주 변호사는 "법원이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하지 못한다고 하여, 기존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하고 성폭행 대신 추행으로 인정한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라며 "어린 피해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질문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발전 시켜 체계화된 질문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