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18)] 청개구리 같은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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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교수 에세이 (18)] 청개구리 같은 마음으로

2020. 07. 02 12:21 작성
정형근 교수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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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어머니가 교회 가자는 말씀을 이제라도 들어주자는 청개구리 같은 심정으로 선교 단체에 나가기 시작했다. /셔터스톡

꿈에 그리던 법대생이 되었는데, 우리 가족은 그해 겨울도 함께 살지 못하였다.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왔다. 부엌에는 아직도 어머니의 손길이 살아 있었다. 냄비에는 고등어 찌개가 맛있게 끓여져 있었다. 지친 육신으로 그 밤 중에 아침 준비를 해놓은 것이다. 차라리 그 마지막 밤이라도 편히 주무시지⋯.


방 한편에는 엊그제 아침에 놓고 간 내 책가방이 놓여 있었다. 방 보증금을 빼고 부조금을 합하니 몇 백 만원 정도가 두 분이 남기고 간 유산이었다. 주인 잃은 장롱과 옷가지를 뒷산에 가져다 태웠다. 혼자 하기가 힘들어 동기들의 도움을 받았다. 타닥! 타닥! 소리와 함께 망자들의 흔적들이 사라져 갔다.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애썼던 그 모든 희망도 불길 속의 재가 되었다. 혹독한 가난에 두 생명을 빼앗겼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했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도 않고, 오히려 정신이 말짱해졌다. 자려고 누워있으면 베갯잇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폭포수 같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길을 걸을 때는 신발이 땅에 닿는 충격으로 머리가 아파 걷는 것도 힘들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은 가슴을 뻥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침이 오고 저녁이 되었다. 무심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장례를 치른 지 며칠 후에 법대에서 시행하는 겨울방학 합숙에 참석하였다. 슬픔에 젖어 낙담하고 있을 겨를도 없었다. 합숙하는 장소는 서울 외곽 구파발에 있는 고시원이었다. 일반 주택가에 민가 한 채를 고시원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환경이 아주 열악했다. 다락처럼 생긴 2층 방에서 책상을 벽에 일렬로 놓고 공부를 하였다. 잠도 그 방에서 함께 자야 했다. 천정이 낮아 방 안에서 허리를 펴고 자유롭게 걸어 다니기도 어려웠다. 그해 겨울은 유달리 눈이 많이 내렸다. 옥상에 나와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 늘 눈길이 닿는 곳은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 있는 이름 모를 무덤들이었다. 하얀 눈으로 덮인 봉분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미어져 왔다.


급히 고시원을 박차고 나가 불광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벽제 공동 묘지를 가는 버스에 올랐다. 한겨울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공동묘지 산길을 올랐다. 계곡을 훑어 내리는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얼어붙은 마음을 시리게 했다. 두 분의 무덤 위에도 흰 눈이 쌓여 있었고, 세상 모든 풍파에서 벗어나 고요히 안식하고 있는 듯했다. 복받쳐 오르는 설움, 외로움, 고독을 눈물로 쏟아냈다. 두 무덤을 오르내리며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되뇌었다.


언제까지 눈물 속에 지낼 수는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두 분의 못다 한 몫까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쫓기는 심정으로 공부에 매진했다. 고시원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밖으로 나와서도, 어머니 산소가 있는 북쪽 하늘을 바라보곤 하였다. 그때 들었던 노래는 지금도 슬픔이 가득 베인 노래로 기억되었다. 마음이 힘들어 평소 대화를 잘 하지 않았던 선배에게 다가갔다. 누비바지를 입고 상체를 바짝 책상 앞으로 붙이고 있는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잠시 이야기 좀 하자고 하여 옥상으로 갔다. 나는 그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사실 때문에 힘든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동안 대화를 나눈 후, 그는 신앙생활을 해보라고 자신이 다니는 선교단체(UBF)에 한번 나와보라고 하였다. 2학년 1학기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면 함께 가보자고 했다.


그해 겨울 합숙은 완전 실패로 끝났다. 고시원 주인과 여러 마찰 때문에 결국 예정 기일보다 일찍 철수하게 되었다. 캠퍼스의 초목들이 새싹을 내던 봄에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나올 때까지 여러 해를 지내게 될 곳이었다. 약속대로 선교단체에 나갔다. 생전에 어머니가 교회 가자는 말씀을 사후에라도 들어주자는 청개구리 같은 심정이었다.


신 앞에서 더 이상 불경스런 태도를 보였다가는 이제 내 생명이 없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2학년 1학기부터 매주 한 번씩 성경공부를 하였다. 공부하려고 교문을 나설 때면 억지로 가는 듯한 무거운 심정이었지만, 마치고 도서관으로 돌아올 때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느 날 밤 11시 무렵, 도서관 폐관 시간에 동기와 같이 도서관을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4~5미터 앞에 어떤 아주머니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흰 한복에 손가방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어떤 학부모가 자녀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두 걸음 더 앞으로 갔는데,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어머니의 모습 같았다. 순간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바로 옆에 있던 동기 때문에 태연하게 그냥 걸어나갔지만, 머리가 쭈뼛 섰다. 몇 걸음 앞으로 걸어나가자 그분은 넓은 도서관 앞마당에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동기는 하숙집으로 향하였고, 나는 기숙사로 가야 했기에 방향을 달리했다. 그 순간 가로등이 꺼진 가파른 어두운 길을 기숙사를 향하여 뛰었다. 숨이 헉헉거려 왔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어머니 같은 모습을 보고, 왜 그렇게 무서움에 사로잡혔을까? 이제는 안타깝게 아련한 추억 속에 존재해야만 했던 분이라서 그랬을까?


기숙사에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헛것을 본 것 같았다. 같이 나왔던 동기에게 내일 물어보면 확실히 알 일이었다. 다음날 얼굴을 보자마자 "어제저녁에 도서관 나올 때 어떤 아주머니가 있는 것 봤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역시 한복 입은 분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는 그 아주머니가 나의 어머니 같다는 생각을 하여 순간적으로 무서웠는데, 옆에 있던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태연하게 지나쳤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 헛것을 본 것은 아닌 거 같은데, 그 밤 중에 누가 그곳에 있었을까? 그 후 도서관의 퇴관 시간이 다가오면 기숙사로 향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가려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늦은 밤에 혼자 걷기도 무서웠다.


휴강하는 날이면 벽제 공동 묘지로 갔다. 수많은 무덤들이 산을 뒤덮고 있는 공동묘지에도 봄이 오고 있었다. 첫봄을 맞이한 무덤에 풀들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무덤 앞에서 멍하니 서 있다, 터덜터덜 내려왔다. 중간고사를 마친 후에 봄 주말 수양회를 한다며, 함께 가자는 권유를 받았다. 공부에 방해될 것 같고, 등록비 몇 천원 내는 것도 부담스러워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고시 공부를 하면서 너무 신앙생활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경계심도 컸다.


그 무렵 매달 생활비를 대주던 누님 집에 새벽마다 절도죄로 구속된 적이 있었던 친척 동생이 갑자기 찾아와 돈을 뜯어 가곤 했다.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면서 한 움큼의 알약을 입에 털어 넣겠다고 협박을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몇십만 원을 주었다고 했다. 그러기를 3일이나 반복하였다. 그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만나서 혼내 주고 싶지만 그는 체격이 좋았고, 경찰에 신고하자니 훗날 보복이 두려웠다. 그동안 전혀 소식이 없던 그가 어떻게 갑자기 나타나 그런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흉기라도 들고 오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도 컸다. 누님도 두려운 나머지 나에게 집에 와서 같이 있어 달라고 했다. 기숙사에서 지낸 내가 새삼 누님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다시는 그 녀석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처음으로 수양회라는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처음 가보는 것이라 뭘 하는지도 궁금했다. 자정 무렵 모임을 마치자마자, 침낭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런데 열심히 살면서도 외롭고 고독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언제까지 그 무겁고 힘겨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하는지 생각이 스쳤다. 불쑥 침낭의 지퍼를 열고 나왔다. 강당 안에 불이 꺼지고 대부분 잠을 자는 분위기였다. 강당으로 나와 찬찬히 성경을 읽어 보기 시작했다. 금방 자려던 참이었는데, 어느덧 어둡던 밤이 물러가고 새벽이 다가왔다. 환하게 동이 터오는 새벽녘에 이슬 맺힌 논둑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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