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3천만원 내면 방송출연" 무산…법원 "준비했다면 '먹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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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3천만원 내면 방송출연" 무산…법원 "준비했다면 '먹튀' 아냐"

2025. 12. 12 14:59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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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 18명 항공권 예매 등 구체적 준비 확인

출연료로 밀린 임금 줬어도 제작 비용 해당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방송 출연을 조건으로 3,000만 원이 넘는 거액의 협찬금을 받았으나 프로그램 제작이 무산되면서 법적 공방으로 비화된 사건이 있다.


제작사 대표는 받은 돈을 직원들의 밀린 급여로 사용해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법원은 그에게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돈을 받고도 방송을 찍지 못한 그에게 무죄가 선고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흉가 체험 예능 제작… 무속인에게 건네진 3,120만 원

사건의 발단은 2022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사 주식회사 B의 대표인 A씨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사무실에서 무속인 E씨를 만났다. A씨는 E씨에게 솔깃한 제안을 건넸다. 일본으로 건너가 연예인들과 함께 흉가를 체험하고 점을 보는 콘텐츠인 'F(가제)'를 제작할 예정인데, 협찬료 3,000만 원을 내면 해당 프로그램 12회차에 출연시켜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무속인이 일본 현지에서 일본인의 점을 보고 흉가를 방문해 느낀 점을 풀어내는 콘셉트였다. 제안을 받아들인 E씨는 방송 출연 및 무속 영업 광고료 명목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E씨는 2022년 11월 8일부터 12월 14일까지 총 5차례에 걸쳐 합계 3,120만 원을 A씨의 계좌로 입금했다.


그러나 약속된 12월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방송은 제작되지 않았다. 검찰은 A씨가 당시 구체적인 제작 계획이 없었으며, E씨로부터 받은 돈을 회사 운영비나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할 생각이었을 뿐 방송을 제작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보고 그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돈 받고 빚 갚는 데 썼다?" vs "제작 위한 필수 인건비였다"

재판 과정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쟁점은 A씨가 받은 돈의 사용처와 제작 의지의 진실성 여부였다.


검찰 측은 A씨가 협찬금을 받아 회사의 밀린 인건비 등 운영비용으로 '돌려막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A씨는 피해자로부터 받은 돈의 일부를 작가 I와 연출가 J의 밀린 임금을 지급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상적으로 투자금을 사업 목적과 무관한 빚 갚는 데 사용했다면 사기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A씨가 임금을 지급한 작가 I와 연출가 J가 모두 '이 사건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는 핵심 인력'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즉, 이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한 것은 단순한 채무 변제가 아니라, 해당 프로그램 제작을 진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인력을 유지하고 운용하는 비용으로 본 것이다. 이는 협찬금을 엉뚱한 곳에 쓴 것이 아니라, 결국 방송 제작을 위해 사용했다는 A씨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항공권 예매 내역이 증명한 '진짜 제작 의지'

A씨가 단순히 말로만 방송 제작을 떠벌린 것이 아니라는 구체적인 물증들도 무죄 판결의 핵심 근거가 되었다.


조사 결과 A씨는 실제로 일본 현지 촬영을 위해 2023년 1월 6일부터 11일까지 촬영 일정을 잡아둔 상태였다. 단순히 일정만 잡은 것이 아니라, 제작진과 출연진 등 총 18명의 항공권 예매까지 마친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A씨는 사전에 작가, 연출가, 촬영팀을 꾸리고 무속인들의 출연 일정과 대본을 구성했다. 일본 현지 회사와 협업하여 촬영 장소인 흉가를 섭외하고 현지 일본인 출연자를 구하는 등 구체적인 프리 프로덕션(사전 제작) 단계를 모두 완료한 상태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 사건 이전에도 비슷한 콘셉트의 프로그램을 제작해 케이블 방송이나 유튜브에 송출한 경험이 있다"며 A씨의 과거 이력도 참작했다.


결국 이 사건 프로그램이 무산된 결정적인 원인은 사기가 아니라 '자금 부족'이라는 경영상의 악재였다. 당초 계획했던 무속인들의 추가 섭외가 불발되면서 전체 제작비(협찬금)가 부족해졌고, 이로 인해 프로젝트가 엎어진 것이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기망했거나 편취의 범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업이 실패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과, 애초부터 속일 목적으로 돈을 가로채는 것은 법적으로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요지다.


[참고]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2025고단19 판결문 (2025. 11. 21.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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