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위조' 고소했다 되레 유죄 받은 스님, 항소심서 누명 벗은 사연
'계약서 위조' 고소했다 되레 유죄 받은 스님, 항소심서 누명 벗은 사연
1심서 무고죄 징역형 선고받았지만
'증인 진진술 번복'과 '결정적 증거'로 무죄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사기 피해자가 순식간에 '거짓말쟁이'로 몰려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계약서 한 장에서 시작된 진실 공방은 1심 유죄, 2심 무죄라는 극적인 반전을 낳았다.
법정 다툼 끝에 드러난 것은 임대차 계약 뒤에 숨겨진 집주인의 치밀한 사기극과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한 한 스님의 고독한 싸움이었다.
민박집의 꿈, 알고 보니 '무허가 건물' 사기
사건은 2013년 3월, 경기도 양평의 한 사찰 승려 A씨가 민박집 운영을 꿈꾸며 집주인 D씨와 임대차 계약을 맺으며 시작됐다. 계약 당시 입회인으로 나섰던 마을 이장 H씨는 A씨가 가진 계약서에만 '입회인'으로 서명했다. 하지만 A씨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비극의 씨앗은 여기서 싹텄다.
A씨는 D씨가 "민박업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 말을 믿고 보증금과 월세 1600만 원을 내고, 5500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대대적인 공사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해당 건물은 준공 허가조차 나지 않아 민박업이 불가능한 무허가 건물이었다.
뒤늦게 사기당한 사실을 깨달은 A씨
설상가상으로 집주인 D씨는 A씨를 상대로 건물 명도 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D씨가 법원에 제출한 임대차 계약서에 H씨의 입회인 서명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의 계약서와 다른 점을 보고 D씨가 계약서를 위조했다고 확신한 A씨는 2015년 6월, D씨를 사문서변조 혐의로 고소했다. 사기 피해자였던 그가 D씨를 고소하며 또 다른 법정 다툼의 문을 연 순간이었다.
사기 피해자에서 '무고죄' 피고인으로 1심의 엇갈린 판단
하지만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A씨는 D씨를 허위 사실로 고소했다는 '무고죄' 혐의로 기소되어 피고인석에 앉게 됐다.
1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여주지원은 2016년 5월,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계약서의 중개인 부분은 처음부터 공란이었을 뿐 D씨가 계약서를 변조한 사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결정적 증거는 입회인이었던 H씨의 진술이었다. H씨는 "계약일로부터 3개월이 지난 시점에 A씨의 부탁으로 입회인 서명을 해줬다"고 증언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사기 피해를 호소하던 A씨는 한순간에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진술 번복, 물증 발견"…항소심, 극적인 무죄 선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항소한 A씨에게 극적인 반전이 찾아왔다. 2심 재판부는 2017년 2월, 원심을 깨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1심의 유죄 판단 근거였던 증인 H씨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H씨는 경찰 조사에서는 "계약 3개월 뒤에 서명했다"고 했다가, 다른 자리에서는 "한 달 뒤인 것 같다", "계약 당일인 것 같다"며 말을 바꾸는 등 진술이 오락가락했다.
심지어 H씨는 A씨에게 사기죄로 고소당한 상태여서 자신의 상황에 따라 진술을 번복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결정적인 증거도 나타났다. A씨가 계약 두 달 뒤인 2013년 5월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을 하며 제출한 임대차계약서 사본에 H씨의 서명이 이미 기재돼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계약 3개월 뒤에 서명했다"는 H씨의 진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객관적 물증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문서 감정 결과 역시 A씨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무고죄는 타인이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임을 알면서도 신고해야 성립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A씨)으로서는 자신의 계약서와 다른 계약서를 보고 상대방이 문서를 변조했다고 오인할 수 있었다"며 "허위라는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고소한 것이므로 무고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1년여 만에 '거짓말쟁이'라는 누명을 벗는 순간이었다.
모든 비극의 시작, 집주인의 '사기극' 전말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집주인 D씨의 '민박집 사기'였다.
A씨와 D씨 사이에 진행된 민사소송 판결문은 사건의 전말을 명확히 보여준다.
법원은 D씨가 민박업이 불가능한 무허가 건물임을 알면서도 A씨를 속여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과 월세 1600만 원을 가로챘다고 인정했다.
D씨는 이 사기 혐의로 별도의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기도 했다.
민사 재판부는 D씨에게 "A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법원은 A씨가 지출한 보증금과 월세 1600만 원 전액과 공사비 5544만 원 중 70%를 손해액으로 인정했다. 다만 A씨 역시 계약 전 건물의 허가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보아 손해배상 책임을 일부 제한했다.
D씨가 이미 공탁한 1600만 원을 제외하고, 법원이 최종적으로 인정한 배상액은 3881만 원이었다.
계약서 한 장으로 시작된 오해와 갈등은 사기, 무고, 손해배상이라는 복잡한 소송전을 낳았다.
법정 다툼 끝에 스님 A씨는 무고 혐의를 벗고 사기 피해를 일부 배상받게 됐지만, 그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과 시간은 무엇으로도 보상받기 어려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