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성폭력 가해자, 그는 유죄도 무죄도 아닌 '면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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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 성폭력 가해자, 그는 유죄도 무죄도 아닌 '면죄'를 받았다

2021. 07. 13 16:05 작성2021. 07. 13 19:09 수정
강선민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mea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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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사촌에게 성추행 당했지만⋯30대 돼서야 항소심 시작

친족 성폭력 피해자 중 절반, 10년 만에 용기내지만⋯공소시효 끝나기 부지기수

친족 성폭력 피해자가 성년이 된 지 10년 만에 법정다툼을 시작했다. 내 탓이 아님을 안 뒤, 고소를 만류했던 가족들이 뒤늦게 소송을 지지한 뒤, 그리고 소송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자립한 때였다. 하지만 이 용기에 대한 법원의 대답은 "너무 늦었다"였다. /게티이미지코리아⋅셔터스톡⋅편집=조소혜 디자이너

피해자가 말했다. 한 남자가 어릴 적부터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그를 처벌해달라고.


법원이 답했다. 너무 과거의 일이라고. 그 남자는 이미 자유의 몸이라고.


지난 4월, 한 하급심이 이 같은 판결을 내놨다. 그리고 3개월 뒤인 지난 8일, 서울고법 서관 505호에서 이 사건 항소심 공판이 열렸다. 피해자에 따르면, 매년 설과 추석 등에 친척들이 모인 집 안에서 범죄가 이뤄졌다. 피해자가 잠든 순간마다 피고인인 사촌이 강제로 신체를 만졌고, 피고인의 벗은 모습을 보도록 하는 날도 있었다. 검찰은 이 추행이 10년간, 22차례나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 범행으로부터 13년, 피해자가 성년이 된 지 10년 만에야 법정 다툼은 시작됐다. 내 탓이 아님을 안 뒤에, 그리고 소송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으로 자립한 뒤였다. 내내 고소를 만류했던 피해자 가족들이 뒤늦게 소송을 지지한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늦게나마 용기를 낸 피해자에게 법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너무 늦었다."


"실제 추행이 있었다고 볼 여지 있다"했지만⋯공소시효 만료

지난 4월, 1심을 맡았던 서울남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성보기 부장판사)는 피고인을 '면소'(免訴·소송의 종결) 처리했다. 법적으로 더이상 다툴 수가 없다며 소송을 끝내는 일이다. 공소시효가 문제였다.


성보기 부장판사는 "피해자가 범행 경위나 수법, 전후 사정을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다"며 "실제 추행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법원도 추행이란 범죄 사실은 인정한 셈이다. 피해자가 해외에서 생활하던 중, 이 소송만을 위해 가족들과 함께 귀국까지 했다는 점들도 유의미하게 봤다.


하지만 재판부가 인정한 강제추행죄는, 공소시효 7년이 지난 상태였다. 피해자가 성년이 된 게 2010년이었으니, 적어도 2017년에는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은 건 공소시효가 10년인 강제추행치상죄였는데, 1심 재판부는 이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겪고 있는 우울 장애나 수면 장애가 이 추행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법원은 신체적 상해와 달리 정신적 고통 등을 상해로 인정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찍이 피고인 측도 공소시효에 주력해 변론을 폈다. 공소시효만 지났다면 복잡하게 다툴 필요 없이 소송을 끝낼 수 있어서다. 그래서 "검찰의 공소사실 중 가장 긴 10년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이미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주장했다.


결국 피고인은 유죄도 무죄도 아닌, 면죄를 받았다.


피해자 A씨의 강제추행과 강제추행치상 공소시효.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피해자 A씨 사건에서 강제추행과 강제추행치상 공소시효.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항소심의 쟁점⋯공소시효 아직 남은 강제추행'치상' 입증

항소심(2심)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강제추행 때문에 상해가 발생했다"라는 연결고리를 어떻게 입증하는가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유일하게 피고인의 범행을 밝히고,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할 수 있는 길이었다.


앞서 원심은 ① 피해자가 우울장애나 수면장애 등으로 치료를 받기는 했지만, ② 추행 행위가 원인인지는 알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에도 진료기록(①)과 피해 사실(②) 사이의 인과관계가 깨지면, 이 소송은 더이상 다툴 수 없다.


지난주 열린 공판 첫날. 서울고법 제10형사부(재판장 이재희 부장판사)는 검찰 측에 '진료기록 감정'을 일 순위로 주문했다. 강제추행치상을 주장하려면, 1심 재판부가 배척했던 추행과 상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다시 찾아오라는 이야기였다.


검찰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진료기록 감정과 동시에, 해외에서 피해자와 함께 생활했던 지인들도 법정에 세우겠다고 했다. 피고인의 추행 행위만이 피해자에게 정신적 장애를 입힌 유일한 사건이었다는 걸 입증하겠다는 뜻이었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조우선 변호사(법무법인 윈스)는 의학 전문가들이 직접 심리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조우선 변호사는 "어릴 적부터 장기간 지속된 친족 성범죄에선 복합적인 정신적 상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서 "법원이 이를 단편적인 범죄로 인한 상해 정도로 검증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날 피고인 측은 특별히 변론에 나서지 않았다. 가만히 있더라도, 피고인에게 불리할 건 없는 상황이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 중 절반이 첫 상담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 '10년'

관련 전문기관들은 지속적으로 "법원이 친족 성폭력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친족 성폭력 피해자 중 55.2%가 첫 상담을 받기까지 10년이 걸렸다.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것이 범죄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단죄를 결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다.


이 사건 피해자도 같은 과정을 겪었다. 우울증과 수면장애가 생겼을 때, 피해자가 가장 먼저 책임을 돌린 건 자기 자신이었다. 성(性)에 대한 인지조차 없었던 시절 당한 피해였다. 처음엔 공부가 힘들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라고 여겼다고 했다. 뒤늦게 추행에 대한 인식이 생겼을 때도, 스스로를 탓했다. 자신이 잠에 들었기 때문에 추행을 당한 거라고.


목격자가 없는 집 안에서, 정서적 유대를 가진 가족에게서 당하는 성범죄. 특히나 미성년자 시절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성년이 될 때까지 범죄 현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부터 어렵다. 가해자를 고소하는 일은 피해자가 가족을 저버렸다는 2차 가해로 돌아온다.


지난 12일,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로톡뉴스와의 통화에서 "친족 성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조속히 신고를 하지 못하는 현상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며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 전했다.


피해자는 과거에서 손톱 만한 증거들까지 찾아 헤매야 한다. 피고인은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시간을 자기편으로 삼고 있다.


다음 공판은 오는 8월 26일 오전 11시, 서울고법 505호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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