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믿고 팔았더니 1억 소송... '리셀러' 몰랐던 약사의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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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믿고 팔았더니 1억 소송... '리셀러' 몰랐던 약사의 항변

2025. 08. 21 16:18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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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기식 본사 "계약 위반" vs 약사 "고의성 없었다"

법조계 "구매자 신원 확인할 의무는 없지만, '이례적 대량 구매'는 발목 잡을 수도"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건강기능식품을 팔아줬을 뿐인데 1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장이 날아왔다. 경기도 부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A씨가 겪은 황당한 사건이다. 단골손님인 줄 알고 제품을 팔았다가, 그가 온라인 '리셀러(Reseller, 재판매업자)'였다는 이유로 거액의 소송에 휘말린 것이다.


"단골인 줄 알았는데"... 날벼락 된 '대량 구매'

사건의 발단은 평범했다. 한 손님이 A씨 약국을 찾아 특정 건강기능식품 두 종류를 대량으로 주문했다. A씨는 종종 있는 대량 주문이라 여기고 제품을 구해주었다. 약국에서 손님의 신분이나 구매 목적을 일일이 캐묻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 뒤, 건기식 본사로부터 날아온 소장은 A씨를 패닉에 빠뜨렸다. '리셀러에게 제품을 판매해 온라인 유통 질서를 어지럽혔으니, 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금 1억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본사는 온라인에 풀린 제품의 유통 코드를 역추적해 A씨의 약국을 판매처로 특정했다고 주장했다.


"리셀러인 줄 어찌 아나"... 약사의 항변, 법적 근거는?

A씨의 억울함은 법적으로 타당할까. 법률 전문가 다수는 약사의 손을 들어준다. 핵심 쟁점은 약사에게 '구매자가 리셀러인지 확인할 의무'가 있었는지다.


법무법인 베테랑 김재헌 변호사는 "손님의 신분이나 구입 목적까지 확인하며 물건을 파는 것은 사회 통념이나 거래 관행에 맞지 않는다"며 "단순히 구매자가 온라인에서 재판매했다는 결과만으로 약국의 계약 위반을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즉, 본사가 소송에서 이기려면 '약사가 리셀러인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제품을 공급했다'는 점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례적' 물량이 발목 잡을 수도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 '고의'는 없었더라도 '과실(부주의)'이 인정될 여지는 남아있다. 법무법인 시대로 신규원 변호사는 "만약 판매한 수량이 일반 소비자가 통상적으로 구매한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비정상적으로 많았다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경우 법원은 약사에게 '구매자가 재판매업자일 수 있음을 의심하고 확인할 최소한의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몰랐다'는 주장만으로는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1억 배상금, 전부 물어줘야 할까?

설령 A씨에게 일부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1억 원이라는 거액을 모두 물어줄 가능성은 낮다. 계약서에 적힌 손해배상액이 부당하게 과다할 경우, 법원이 직권으로 감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법 제398조는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은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법률사무소 온경 추민경 변호사는 "본사가 주장하는 1억 원 손해의 구체적 근거와 약국의 판매 행위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할 것"이라며 "법원이 이를 엄격하게 심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선의의 판매 행위와 계약상 책임의 경계를 묻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온라인 리셀링이 보편화된 시대, 제조사의 유통망 통제 욕구와 일선 판매자의 현실적 한계가 충돌한 셈이다.


법원의 최종 판단은 단순히 한 약사의 책임을 넘어, 비슷한 계약 관계에 놓인 수많은 자영업자에게 중요한 판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A씨는 이제 법정에서 자신의 행위가 '정상적 영업'이었음을 힘겹게 증명해야 하는 싸움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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