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직원이 쓴 '불법 프로그램'에 날벼락 맞은 회사, 법적 책임은 어디까지?
퇴사 직원이 쓴 '불법 프로그램'에 날벼락 맞은 회사, 법적 책임은 어디까지?
전문가들 "섣부른 합의는 금물
'업무 무관성' 입증이 관건"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평온하던 A사에 날아든 한 통의 등기우편이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C사를 대리하는 법무법인이 보낸 '내용증명'이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A사 소속이었던 B직원이 3년간 C사의 프로그램을 불법 다운로드해 사용했다며, 합의하지 않으면 회사와 직원 모두를 형사고소하겠다는 최후통첩이었다.
A사는 발칵 뒤집혔다. 문제의 B직원은 이미 퇴사한 뒤였고, 업무용 PC는 깨끗하게 포맷된 상태였다. 회사 차원에서 구매하거나 사용을 지시한 적도 없는 프로그램. 심지어 해당 프로그램은 '학술적 목적'으로는 무료 사용이 가능했다.
A사로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이득 본 것도 없는데, 왜 우리가 거액의 합의금을 물어야 하느냐"며 가슴을 칠 노릇이었다.
직원은 퇴사, PC는 포맷...회사는 책임져야 하나?
가장 큰 쟁점은 퇴사한 직원의 개인적 일탈에 대해 회사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다.
법률 전문가들은 '업무 관련성'이 없었다면 회사의 책임은 없거나 제한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아람 변호사(서아람 법률사무소)는 "저작권법 제141조의 양벌규정은 직원이 '법인의 업무에 관하여' 위반행위를 했을 때 법인도 처벌하는 조항"이라며 "이번 사안처럼 업무와 무관한 개인적 사용이었다는 점을 명확히 소명한다면 회사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B직원의 불법 행위를 지시하거나 관리하지 않았고, 그 결과물이 회사 업무에 전혀 활용되지 않았다면 법적 책임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남희수 변호사(더신사 법무법인) 역시 "회사가 직접 사용하지 않았고 개인 직원의 행위라면 회사 책임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섣부른 합의 대신 사실관계를 정리한 대응 서면을 보낼 것을 조언했다.
'학술용은 무료'라는데 불법 다운로드는 무조건 유죄?
소프트웨어 개발사 C사 측이 학술용 무료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도 A사에겐 강력한 방패가 될 수 있다. B직원의 사용이 '비영리적 학술 목적'이었다면, 애초에 저작권 침해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최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새율)는 "저작권법은 연구나 학습을 위한 '공정이용'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면서 "제조사가 학술적 비영리 이용자에게 무료 액세스를 제공한다는 점은 해당 사용이 제조사의 정책에 부합한다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조훈목 변호사(법무법인 한원)는 "저작권자가 학술용 무료 버전을 제공하더라도, 불법 크랙 버전을 사용한 이력이 확인되면 면책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PC를 포맷했더라도 저작권자는 이미 맥어드레스(네트워크 카드 고유번호) 접속 이력을 파악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유선종 변호사(더신사 법무법인)도 "퇴사 후 PC 포맷은 자칫 '증거 인멸' 시도로 비쳐 추가적인 형사 처벌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더했다.
내용증명 받았을 때, '섣부른 합의'보다 중요한 것
그렇다면 A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법무법인의 압박에 못 이겨 섣불리 거액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라고 경고한다.
이재용 변호사(JY법률사무소)는 "내용증명은 법적 절차가 개시된 것이 아닌, 상대방의 일방적 주장을 알리는 통지에 불과하다"며 "상대방이 확보했다는 증거를 먼저 확인하고 회사의 책임 여부를 면밀히 따진 후 대응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규 변호사(법무법인 유안) 역시 "변호사를 통해 회사가 직원의 행위를 알지 못했고, 평소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 방지를 위해 주의와 감독을 다했다는 점을 밝히는 답변서를 보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결국 A사는 B직원의 사용이 ▲회사업무와 무관한 개인적 행위였고 ▲영리 목적이 아닌 학술적 용도였으며 ▲C사의 무료 정책에도 부합할 수 있다는 점을 종합해 방어 논리를 세워야 한다.
동시에 B직원에게 연락해 정확한 사용 경위를 파악하고, 향후 회사가 손해를 입을 경우 구상권(대신 갚은 돈을 청구할 권리)을 행사할 수 있음을 고지해 협조를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