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실수로 원점으로 돌아간 재판⋯이런 경우 피해자는 국가에게 손해배상 받을 수 있을까
판사 실수로 원점으로 돌아간 재판⋯이런 경우 피해자는 국가에게 손해배상 받을 수 있을까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 희망 의사 묻지 않은 1심 법원
절차상 문제 짚어낸 항소심 재판부 "재판 처음부터 다시 하라"
재판 기다린 피해자는 다시 감정과 시간 등 소모⋯법원에 손해배상 받을 수 있을까

최근 법원의 '실수'로 선고를 앞둔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경우 재판을 하며 들인 시간과 비용 등을 국가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을까. /셔터스톡
최근 법원의 '실수'로 재판이 거의 다 끝난 항소심(2심) 재판이 1심부터 다시 진행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선고가 잘못됐으니 다시 심판받으라는 보통의 파기환송이 아니다. "아예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취지다.
해당 재판의 피고인은 지난해 2월 한 부부를 살해하고 현금 등을 빼앗은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피고인 A씨. 피해자들은 일명 '청담동 주식 부자'로 유명세를 타다가, 불법주식거래 등의 혐의를 받고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희진의 부모다.
이번 일은 1심을 맡은 수원지법 안양지원 재판부가 이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 희망 의사를 꼼꼼하게 묻지 않아 벌어졌다. 당시 재판은 A씨의 강도살인과 시체유기 혐의를 다뤄지던 중에 A씨의 추가 범행이 병합되는 과정을 거쳤다.
안양지원 재판부는 병합이 이뤄지기 전 A씨에게 국민참여재판 의사를 확인했는데, 사건을 추가(병합)한 뒤에는 한 번 더 의사를 묻지 않았다. 이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이 법률에 따르면 사건이 병합될 때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 참여 의사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안양지원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런 경우 피해자 측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며 재판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 재판을 하며 들인 시간과 비용 등도 허비한 셈이 됐다.
이처럼 엄연한 법원의 실수로 재판이 다시 열리면 피해자 측은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는 게 가능할까.
우선, 법원의 잘못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국가배상법 제2조(배상책임)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청구할 수 있다. 가해자가 공무원이고 불법행위가 직무 집행 과정에서 일어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재판을 잘못한 법관의 '불법행위'가 인정돼야 한다.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는데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동법률사무소 인도의 김장천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 희망 의사를 묻지 않은 것은 불법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김 변호사는 "법관의 불법행위는 ①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했다거나 ②법관의 직무 수행상 준수할 기준을 현저하게 위반했을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고 했다.
법관에게 부여된 권한의 취지에 명백히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면 불법행위로 볼 수 있지만, 일반적인 '절차상 과실'인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는 취지다.
따라서, 변호사 수임료 등 소송에 들어간 실질적인 비용을 받는 것도 불가능하다. 김 변호사는 "법관 개인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위자료뿐만 아니라 기타 비용도 청구할 수 없어 보인다"고 했다.
국민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들이 참여해, 피고인에 대한 유·무죄를 토의하고 판사에게 의견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기존 1심에서 받았던 형량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이에 대해 김장천 변호사는 "피고인에 관한 유·무죄와 양형의 판단은 다시 1심 법원의 판단에 전적으로 좌우된다"면서도 "배심원들의 평결과 의견은 법원의 판단을 구속하지 않으므로, 배심원의 판단이 1심 법원의 판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가 배심원들의 의견을 판결에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배심원 참여로 인한 감형과 가중은 미리 판단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