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5)]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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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교수 에세이 (5)]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오?

2019. 09. 11 12:23 작성
정형근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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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힐튼호텔에서 열린 축하연에서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후보를 축하해 주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저작권자 (C) 연합뉴스

편집자 주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 갈 때 뒷산에 나무를 하러 가야만 할 정도로 가난했다. 19세가 되어서야 중학교를 마쳤지만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9급 검찰 공무원이 됐다. 만학도로 법대 진학에 성공했지만, 그 해 연탄가스 사고로 어머니와 형제를 잃는다. 이후 사법시험을 준비해 36세의 나이에 합격했다. 이후 변호사 생활을 하는 중,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교수를 찾던 모교 경희대의 제안으로 로스쿨 교수가 됐다. 경희대 로스쿨 원장을 역임했고, 청탁금지법, 법조윤리 분야 전문가다.



경미한 잘못으로 시말서를 쓴 공무원까지 해직시키기로 하였어도 상부에서 지시한 해직대상 인원을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이 든 직원 중에서 재산이 있다고 소문난 분, 머지않아 정년 퇴직하여 사법서사(법무사)를 할 수 있는 분들도 면직대상자로 정해졌다.


그 당시 직원 중 10%에 해당하는 인원을 사표 수리 대상자로 선정하여 상부에 보고하였다. 살벌한 분위기라서 누구도 억울하다고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당시 부산지검을 관할하던 대구고등검찰청에서 부산지검에 지시했던 숙청 대상자 인원이 충족되었다.


면직대상자가 취합되자 법무부는 전국 검찰청에서 의원면직 당한 공무원들의 명단이 적힌 공문을 내려 보냈다. 그런데 특이하게 “○○지방검찰청 검찰주사 ○○○ 파면”이라고 기재된 문구도 보였다. 파면 당한 그 직원은 일괄사표를 제출하라고 할 때 “내가 왜 사표를 내야 하냐?”고 버티다가 결국 파면을 당했다는 것이다.


법을 잘 지켜야 할 검찰이 전두환 군부 세력 때문에 무법천지 상태를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검찰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발령받은 지 몇 년도 안 된 검찰 공무원 시험 동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공무원이 해직된 직후 언론에서는 부정부패에 연루된 공직자를 척결하여 국가 기강을 확립하였다고 선전하였다. 대대적인 사표 수리 후에 직원들에 대한 인사이동이 있었다. 영장계장으로 있던 나이 드신 분은 부산지검 통영지청으로 발령이 났다. 상당히 깐깐한 성격을 가진 분이었다.


그런데 인사이동 명단이 발표되어 해당자들이 새로운 부임지로 가려고 짐을 싸고 있을 때, 다시 정원 중 몇 명의 사표를 더 받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1980년 7월에 2차 공무원 숙청 명령이 하달된 것이다.


이번에는 새벽에 비상소집을 하지는 않았다. 모든 직원은 다시 일괄적으로 사표를 제출하라는 명령대로 사표를 제출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인사이동 대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다시 사직원을 제출했다.


“뭐여! 공무원 된 지 몇 달도 안 되어 사표를 두 번이나 쓰네!”


내색할 수 없었지만, 마음속에는 불만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면서도 매우 불안했다. 모두 다시 긴장에 휩싸였다. 검사실에는 검사들이 일손을 놓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몇 명씩 모여 있었다. 검사실 여직원들의 얼굴도 완전히 굳어 있었다.


서무과장과 사무국장이 다시 사표 받을 대상자를 물색했다. 이제는 징계를 받았던 직원도 없고, 사소한 잘못으로 시말서 쓴 사람도 없었다. 직원들에게 있어 서무과장과 사무국장은 저승사자나 다름없었다. 그 두 사람이 사표 수리 대상자로 선정하여 검사장에게 보고하면 사실상 끝이었기 때문이다.


사표를 수리할 대상자 명단을 타자기로 타이핑한 후 검사장실에 제출되었다. 그 명단을 살짝 보았더니, 내 이름은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통영지청으로 발령 나 있는 계장이 사표 수리 대상자 명단에 들어 있었다.


나는 청사 1층에 있는 기록관리과 영장계로 내려가 보따리를 싸고 있는 그분에게 갔다. 그리고 “계장님! 사표가 수리될 거 같아요”라고 알려 주었다. 그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어떻게 발령을 내놓고 이럴 수가 있단 말이오?”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붙들고 정확하게 본 거냐고 몇 번이고 물었다. 확실하게 보았다고 하자, 그분은 체념한 기색이 역력한 상태로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몇 십 년의 공직생활이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어떻게 발령을 내놓고 이럴 수가 있단 말이오?” / 출처 셔터스톡


전국의 수많은 공직자가 이 분처럼 억울하게 공직을 떠났다. 그 후 제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1980년에 있었던 5000여 명 가량의 해직공직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1989년에 “1980년 해직공무원의 보상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1980년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기간 중 국가 보위비상대책위원회의 정화계획으로 해직된 공무원에게 보상과 복직이 이뤄지게 되었다.


그 후 헌법재판소는 “1980년 국가 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의 지시에 의하여 행하여진 공무원의 해직조치는 숙청된 공무원에게 해직에 대한 귀책사유가 있었느냐의 여부를 불문하고, 그 절차 내지 방법이 해직당사자에게 충분한 해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일방적인 조처였다는 점에서 절차상 합법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그것은 의원면직의 형태를 갖추었더라도 본인의 자유의사에 반하여 강제된 실질적인 해직조치였던 것이다.”(헌재 1992. 11. 12. 91헌가2)라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에서 ‘1980년 해직자보상법’의 적용대상이 아닌 해직공직자들은 면직처분이 무효라는 재판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1981년에 광주, 서울, 전주지방법원 소속 법원 부이사관, 법원 서기관, 법원사무관 등으로 재직 중이던 원고들은 의원면직 형식으로 퇴직을 한 것은 무효라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원고들은 위 퇴직처분이 실제에 있어서는 그들의 사직의사에 의해서가 아니고 국보위의 직무를 승계한 사회정화위원회로부터 시달된 정화계획에 의하여 강제로 해직된 것이며, 그 경위로서 국보위의 정화계획에 따라 1980. 7. 16. 자로 법원 일반직공무원 53명이 해직된 이후 새로 취임한 대법원장이 1981. 4. 21. 무렵 사회정화위원회로부터 위 정화계획의 미흡함을 이유로 추가로 정화조치할 것을 요구 받고, 취임 후 1주일만인 같은 달 30. 법원사무관급 이상 일반직공무원 456명으로부터 일괄사표를 받은 다음 이중에서 선별 수리하는 형식으로 원고들을 해직한 것이라고 하면서, 원고들에 대한 이 사건 퇴직처분은 국보위 및 사회정화위원회의 초법규적인 강요에 의하여 단행된 것이므로 무효이고, 나아가 법원사무관급 이상 일반직공무원 456명 전원이 국가공무원법상의 신분보장에 관한 규정을 무릅쓰고 일괄사표를 제출하였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본인들의 의사가 아님이 명백하고, 수리기관 역시 이 일괄사표제출이 사직의 진의가 아님을 알면서 수리한 것이므로 위 일괄사표제출 및 선별수리는 모두 무효라고 주장한다.”


원고들이 새로 취임하였다고 주장한 대법원장은 1981년 4월에 전두환 정권이 임명한 유태흥 대법원장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태흥은 “분단국의 현실에 비추어 사법부는 정치적·공안적 사건에서는 정부에 협력해야 하고, 일반 사건에서는 양심적으로 소신껏 독립해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대법원은 “원고들에 대한 의원면직처분이 국보위 및 사회정화위원회의 초법규적 강요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에 부합하는 증인 ○○○의 증언은 믿지 아니하고, ··· 원고들이 그 주장과 같이 일괄사표를 제출하였다가 선별수리 하는 형식으로 위원면직되었다고 하더라도 공무원들이 임용권자 앞으로 일괄사표를 제출한 경우 그 사직원의 제출은 제출 당시 임용권자에 의하여 수리 또는 반려 중 어느 하나의 방법으로 처리되리라는 예측이 가능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 사직원에 따른 의원면직은 그 의사에 반하지 아니하고, 비록 사직원제출자의 내심의 의사가 사직할 뜻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의사가 외부에 객관적으로 표시된 이상 그 의사는 표시된 대로 효력을 발하는 것이며, 민법 제107조는 그 성질상 사인의 공법행위에 적용되지 아니하므로 원고들의 사직원제출을 받아들여 원고들을 의원면직처분한 것을 당연무효라고 할 수 없다(대법원 1992. 8. 14. 선고 92누909 판결 [퇴직처분무효확인])."


위 사건의 피고는 ‘법원행정처장’이고, 면직을 당했던 원고들은 법원 공무원들이다. 판사들은 자기 직장에서 직원들이 당했던 일이라 그 어떤 사건보다 그 내용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직원을 제출한 공직자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다. 해직당하고 싶지 않으면 사직원을 제출하지 말았어야지, 인제 와서 딴소리하느냐고 꾸짖는 것 같다.


대법원은 다른 사건에서도 1980년 공무원 숙청의 일환으로 행해진 일괄사표 제출행위는 강압에 의하여 의사결정의 자유를 박탈당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대법원은 저런 논리로 신군부에서 자행하였던 공무원의 해직행위가 정당하다고 적극 지지해 주고 있다.


앞으로도 공직자를 대량 해직시킬 때는 일괄사표를 받는 형식으로 하면 된다는 지침을 제시해준 셈이다. 일괄사표 제출로 해직당한 공직자들을 보상하고 복직시키기 위한 특별법까지 제정되었고, 헌법재판소 역시 강제적인 해직조치라고 밝히고 있는 마당에 법원에서만 저런 완고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서 더 언급하고 있을 겨를이 없지만, 딱 한 가지는 말하고 싶다. 동일한 국가기관에 근무하는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공무원 전체가 가족의 생계가 걸린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같은 날 동시에 사표를 제출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이며, 자발적인 의사로 이뤄졌다고 판단할 수 있겠는가!


사표를 제출하지 않는다고 파면해 버렸던 일까지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차라리 사직원을 제출 받아 해직시킨 것은 잘못(위법)이지만, 복직시킬 수 없는 여러 사정이 있으니까 해직당한 공직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주도록 하는 판결(사정판결)을 하여 그 억울함을 풀어줄 수는 없었는지 아쉽다. 사법부는 정치적·공안적 사건에서는 정부에 협력해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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