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앞장섰어도 '이곳' 일했다면 유공자 탈락… 판결문으로 톺아본 '독립'의 무게
3·1운동 앞장섰어도 '이곳' 일했다면 유공자 탈락… 판결문으로 톺아본 '독립'의 무게
"공적은 사망 시까지 본다"
광복 이전 희생·손자녀 보상금 차등은 합헌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강릉시 월화거리에 '함께 기억하는 광복, 함께 실천하는 나라사랑'을 주제로 태극기 약 800개가 설치된 모습. /연합뉴스
오는 15일(금)은 한반도가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빛을 되찾은 광복절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천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공헌한 이들과 그 유족에게 "응분의 예우를 하여야 할 헌법적 의무를 지닌다"고 무겁게 선언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누군가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예우하는 과정은 칭송만큼이나 날카롭고 엄격하다. 때로는 훈장이 취소되고, 유족의 지위가 박탈되며,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가오는 광복절을 맞아,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남겨진 주요 판결문들을 통해 국가가 독립유공자를 인정하고 예우하는 법적 기준을 톺아봤다.
3·1운동 체포 기록에도… "총독부 출근 이력 있다면 포상 불가"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는 단편적인 사건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모든 행적이 도마 위에 오른다.
과거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구금된 A씨. 유족들은 당연히 그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국가보훈처는 포상을 거부했다.
A씨가 풀려난 이후 일제 식민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 철도국 서기'로 근무한 이력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에 불복한 유족들이 소송을 냈지만, 서울고등법원(2018누73067)은 국가보훈처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 "공적심사위원회는 독립운동 당시의 지위뿐만 아니라, 사망 시까지의 행적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하여 포상 여부를 심사한다."
항일 운동에 참여했더라도, 이후 일제 통치기구에 부역한 행적이 남아 있다면 국가 유공자 예우를 받을 수 없다는 법원의 단호한 선언이었다.
이러한 엄격함은 훈장을 빼앗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던 B씨의 경우, 무려 30여 년이 흐른 뒤 서훈이 취소됐다.
조사 결과 B씨의 공적이 동명이인의 공적과 혼용되었고, 유족이 낸 소명 자료마저 허위로 작성된 정당한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2023구합53256)은 객관적 원전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서훈을 취소한 것은 마땅하다고 판결했다.
국가가 실수했으니 돈 다 뱉어내라?… 행정 착오 앞에서는 유족 손 들어준 법원
그렇다면 애초에 국가가 잘못 심사해 가짜 유공자를 만들었다면 어떨까? "국가가 실수로 잘못 인정한 것이니, 당연히 취소하고 지급한 돈도 뺏는 게 맞지 않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행정기관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한 공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의 시선은 달랐다. 국가의 착오로 뒤늦게 유족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법원은 방패가 되어주었다.
C씨의 유족들은 과거 국가 심사를 거쳐 독립유공자 유족으로 공식 등록되었고, 수십 년간 보훈급여금을 받았다.
유족들은 이 돈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급여금을 모아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사회에 기부하며 참된 유공자 후손으로서 명예롭게 살아왔다.
그런데 무려 60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국가가 "과거에 우리가 행정 착오를 냈다"며 유족 등록을 직권으로 취소하고, 그동안 지급한 돈을 모두 환수하겠다고 통보했다. 유족들은 소송을 제기했다.
수원지방법원과 대전지방법원 등은 신뢰보호원칙을 내세워 유족의 손을 들어주었다. 무려 60년간 유지된 '독립유공자 유족'이라는 지위에 대해 원고들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유족이 거짓말로 국가를 속인 게 아니라, 전적으로 국가의 실수였기 때문이다.
> "환수처분으로 국가가 얻을 재정적 이익보다, 망인과 유족이 입게 될 불명예 등 불이익이 현저히 크다."
애국지사와 4·19공로자, 그리고 손자녀 보상금의 차이
한정된 국가 예산을 분배해야 하는 현실적 한계 역시 판결문 곳곳에 묻어난다.
독립유공자의 손자녀들에 대한 보상금 지급을 1명으로 제한하거나,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사망한 유공자와 그 이전에 사망한 유공자 가족의 보상 기준을 다르게 둔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2020헌마594).
광복 이전에 희생된 유공자일수록 본인과 자녀들이 겪은 희생 정도가 컸을 것이라는 합리적 차등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보상금을 유족으로 등록을 신청한 달부터 주도록 한 현행법이나, 애국지사와 4·19혁명공로자 간 수당에 차이를 두는 것 역시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국가의 보은적 성격과 사회보장적 성격을 동시에 띠는 보훈급여 특성상, 시대적 상황과 피해 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다가오는 15일 광복절. 화려한 태극기 물결 이면에는 진짜 유공자를 가려내기 위한 엄격한 잣대와, 억울한 유족을 보호하려는 법원의 치열한 고민이 판결문이라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