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가 산재 피해자에게 준 '위자료' 140만 원, 구상금에서 뺄 수 있을까?
보험사가 산재 피해자에게 준 '위자료' 140만 원, 구상금에서 뺄 수 있을까?
대법원, "정신적 고통 위로금과 잃어버린 월급은 성격이 다르다"며 책임보험금 삭감 제동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4m 높이의 작업 차량에서 추락해 중상을 입은 근로자가 있다.
이 근로자는 산재 처리와 함께 가해 차량의 보험사로부터 합의금도 받았다.
그런데 이 합의금 중 일부를 두고 근로복지공단과 보험사 간에 팽팽한 법적 공방이 벌어졌다.
일반인에게는 복잡하고 낯선 '구상금'과 '위자료'의 성격을 대법원이 한 눈에 알기 쉽게 명확히 갈랐다.
사건의 재구성: 멈추지 않은 작업 차량과 두 번의 보상금
사건은 2019년 6월 1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간판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피해자는 스카이차량에 올라 간판 교체 작업을 하던 중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동료가 조작하던 리모컨이 오작동을 일으키면서 탑승 장비가 멈추지 않고 계속 솟구쳤고, 결국 가로수에 부딪히며 지상으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이 사고로 피해자는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뼈가 부러지는 등 전신에 중상을 입고 오랜 기간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공단은 피해자에게 병원비인 요양급여 약 6125만 원을 비롯해, 일하지 못한 기간의 휴업급여 약 2325만 원, 장해급여 약 5677만 원 등 총 1억 4천만 원이 넘는 산재 보험금을 지급하며 근로자를 지원했다.
한편, 가해 차량의 자동차보험사 역시 피해자에게 별도의 합의금을 건넸다.
보험사는 향후 치료비와 간병비, 그리고 '장해위자료' 명목의 140만 원을 포함해 총 1790만여 원을 피해자에게 직접 지급했다.

갈등의 시작: "이미 준 위자료, 공단에 돌려줄 돈에서 빼겠습니다"
문제는 산재 보상 처리를 마친 근로복지공단이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공단이 "우리가 피해자에게 먼저 보험급여를 지급했으니, 원래 당신들(보험사)이 물어내야 할 책임보험금을 우리에게 내놓으라"며 구상금 청구 소송을 낸 것이다.
이때 보험사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신들이 이미 피해자 개인에게 '장해위자료' 명목으로 140만 원을 줬으니, 공단에 돌려줄 전체 금액에서 이 140만 원만큼은 깎아주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항소심(2심) 재판부는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피해자의 치료가 끝난 뒤 발생한 재산상 손해액이 보험금 한도액 이내이므로, 보험사가 이미 피해자에게 지급한 장해위자료 140만 원은 공단에 줄 돈에서 공제하는 것이 맞다고 판결했다.
이미 피해자에게 지갑을 열었으니 이중으로 돈을 낼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대법원의 통쾌한 반전: "마음의 상처와 잃어버린 월급은 별개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원심을 완전히 뒤집었다(대법원 2025다211133 판결).
대법원은 돈의 '명목과 성격'을 엄격하게 구분하며 일반인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대법원은 보험사가 피해자에게 지급한 장해위자료 140만 원은 사고로 다친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달래주기 위해 지급된 돈이라고 짚었다.
반면, 근로복지공단이 보험사로부터 받아내려는 구상금은 피해자가 후유장애로 인해 잃어버린 임금, 즉 '소극적 손해(재산상 손실)'에 대한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두 가지가 완전히 다른 성격의 돈이라고 보았다.
보험사가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를 위로하는 돈을 줬다고 해서, 피해자가 당연히 받아야 할 밀린 월급(재산상 손해)에 대한 보험사의 배상 책임까지 덩달아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피해자에게 발생한 총 손해액에 위자료를 더하더라도 후유장애 책임보험 한도액인 4500만 원보다 적기 때문에, 보험사는 한도를 핑계 삼지 말고 발생한 손해액 전부를 배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대법원은 장해위자료를 공단 측 구상금에서 마음대로 깎아버린 원심의 판단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라며 판결을 깨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