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신탁과 관련된 이번 대법원 판결 의미 "위법한 관계, 더 이상 법으로 보호하지 않겠다"
명의신탁과 관련된 이번 대법원 판결 의미 "위법한 관계, 더 이상 법으로 보호하지 않겠다"
대법원 "명의신탁 아파트 매각해도 횡령 아니다"
법 어긴 '차명 부동산'이어도 원래 주인 보호해줬던 기존 판례 깨
불법행위로 엮인 관계, 형법으로 보호받을 권리 없다는 선언한 것

부동산실명법이 도입된 지 20여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차명' 부동산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가담한 양 당사자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대박'이라는 유혹에 수많은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데 이에 제동을 걸 대법원 판례가 지난 18일 나왔다.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개발 호재가 보이는 아파트. 아직 가격이 더 오를 것 같아 팔기는 아깝고, 그대로 명의를 유지하자니 세금 부담이 만만찮다.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놨다가 시세 차익을 볼 때쯤 파는 게 어떻겠냐는 주변의 검은 유혹. 불법이라고 하지만, 다들 이렇게 하는 거라며 '꿀팁'을 준다.
부동산실명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차명' 부동산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가담한 양 당사자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이득'이라는 유혹에 수많은 사람들이 줄기차게 범죄를 저질렀다.
이는 그간 법원이 보인 입장이 원인이기도 했다. 우리 법원은 차명 부동산을 넘겨받은 '명의상 주인'이 '진짜 주인'의 부동산을 함부로 매각했을 때, '명의상 주인'을 횡령죄로 다스렸다. '진짜 주인'이 부동산 실명제를 어기긴 했어도, 부동산을 빼앗겼다면 '명의상 주인'을 처벌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진짜 주인'은 자기 부동산을 잃을 위험이 상당히 적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법원이 법을 어긴 사람을 법으로 보호해준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런 태도를 전면 수정했다. 명의를 넘겨받은 사람이, 명의를 맡긴 사람 몰래 부동산을 팔더라도, 횡령죄로 처벌하진 않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을 선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법을 어긴 위법한 관계, 그 역시 법으로 보호해주지 않을 겁니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상옥 대법관)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범죄 피해를 호소한 이와, 가해자로 지목된 이 사이의 '관계'였다.
이 사건 A씨는 명의신탁이 불법이란 걸 알면서도, B씨에게 자신의 아파트 명의를 넘겼다. 그렇게 자연스레 A씨의 불법행위에 가담한 B씨. 그런데 B씨는 그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렸다. 이 과정에서 얻은 1억 7000만원은 B씨의 개인 빚을 갚는데 써버렸다.
원래 명의신탁 부동산을 B씨처럼 마음대로 처분한 경우가 생기면 횡령죄로 처벌받았다.
횡령죄는 누군가의 재산을 보관할 의무를 지닌 사람이 그 책임을 저버리면 적용되는데, 그동안 법원은 불법으로 넘겨준 재산이라도 선량한 보관 의무는 있다고 봤던 것이다.
이에 따라 명의신탁을 했더라도 부동산의 소유권은 원래 주인의 것으로 인정하고, 명의신탁을 받은 사람이 이 소유권을 함부로 침해한 행위에 대해선 엄벌도 처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도 이런 기조에 따라 B씨에게 횡령과 사기 혐의 등을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항소심 판단은 이와 달랐다. B씨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 가운데 명의신탁과 연계된 '횡령'은 무죄로 봤다.
B씨가 A씨의 재물을 보관하는 책임과 지위에 있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이와는 별도로 이뤄진 사기 행위만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이러한 원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형법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신임 관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부동산실명법을 어기고, 범죄를 구성하려고 뭉친 불법적인 관계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①당당하게 법을 어긴 사람이 ②스스로 법을 어기다가 생긴 문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③피해를 끼친 사람에 대해 처벌까지 도와주진 않겠다는 의미가 된다.
사실 이러한 태도 변화의 움직임은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지난 2019년에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 명의신탁 관련 문제를 회부하고, 공개 변론을 열며 공론화에 나선 바 있다. 민법상 범죄행위로 얻은 이익에 대해선 반환을 요구할 수 없으니(제746조 불법원인급여), 명의신탁 부동산도 그런 관점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장고 끝에 "차명 부동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유권까지 뺏을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2013다218156). 하지만 이와 별개로 부동산실명법의 한계와 개선점은 계속 찾아가겠다고 밝혔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이번 판결이 나왔다. 앞으로는 명의를 넘긴 사람이 자신의 부동산 명의를 받아 간 사람을 '형법'으로 책임을 묻기 어려워졌다. 이제 남은 건 양쪽 다 부동산실명법으로 처벌받는다는 사실뿐이다.
부동산실명법에 따르면, 명의를 넘긴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제7조 제1항). 부동산 가액의 30%에 달하는 과징금도 부과된다(제5조 제1항). 명의를 넘겨받은 사람도 예외는 없다. 횡령죄는 피할지 몰라도, 부동산실명법에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제7조 제2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