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인데 '주거용'이 아니라고?…주상복합 진동 피해자 울린 환경부의 '한 줄'
내 집인데 '주거용'이 아니라고?…주상복합 진동 피해자 울린 환경부의 '한 줄'
차량 진동에 집 전체가 '쿵쿵'… 법은 '사는 곳'이 아닌 '땅'을 기준으로 삼았다.

상업지역 주상복합 입주민이 차량 진동 피해를 호소했으나, 완화된 소음 기준이 적용돼 논란이다./챗 지피티 생성 이미지
서울 한복판 주상복합 입주민이 차량 진동 피해를 호소했지만, 법은 그의 집을 '주거용'으로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쿵, 쿵…. 마치 집 아래 거대한 우퍼 스피커를 켜놓은 듯했다. 서울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입주민 A씨는 1년 넘게 매일 아침저녁으로 집 전체를 뒤흔드는 정체불명의 진동과 사투를 벌였다.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자 그는 사설 업체에 의뢰해 진동의 실체를 파헤쳤다.
원인은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경사로(램프)였다. 차량이 오르내릴 때마다 발생한 진동이 고스란히 그의 집으로 전달됐다. 2시간 동안의 측정 결과, 소음진동관리법상 주거지역 기준인 65데시벨(dB)을 넘는 진동이 무려 14차례나 기록됐다.
명백한 불법이라 확신했지만,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상업지역에 위치한 주상복합'이라는 건물의 태생이었다.
"사람이 사는데 주거지가 아니다?"…환경부의 두 얼굴, 엇갈린 해석
상식적으로 사람이 잠자고 밥 먹는 공간의 평온은 보호받아야 한다. 다수의 변호사들은 "건물이 상업지역에 있더라도 실제 용도가 주거용이라면 주거지역 기준인 65dB를 적용해야 한다"고 A씨의 편에 섰다. 심준섭 변호사(법무법인 심) 역시 "환경부 유권해석도 주거용으로 사용되는 부분은 주거지역 기준을 적용한다는 입장"이라며 힘을 실었다.
하지만 A씨의 발목을 잡은 것은 환경부가 내놓은 '유권해석 번호 20446'이라는 또 다른 '한 줄'이었다. 이 해석은 "일반상업지역에 위치한 주상복합건물은 '그 밖의 지역' 기준을 적용한다"고 명시한다. A씨의 집은 '주거용 건물'이 아닌 '상업지역에 있는 건물'로 취급돼, 더 관대한 기준인 주간 70dB, 심야 65dB를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법은 A씨의 '집'이 아닌, 집이 서 있는 '땅'을 보고 있었다.
A씨 입장에선 황당할 노릇이다. 매일 잠자고 생활하는 공간이 단지 상업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법규는 참고자료일 뿐"…상황 뒤집을 사법부의 최종 카드, '수인한도'
그렇다면 A씨는 70dB라는 벽 앞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만 할까. 전문가들은 '아니오'라고 답한다. 행정 규칙의 한계를 뛰어넘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사법부의 최종 카드, 바로 '수인한도(참을 한도)' 법리가 있기 때문이다. 설령 행정법규상 기준치를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더라도, 그 피해가 사회 통념상 개인이 참을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섰다면 명백한 불법행위라는 것이 법원의 확고한 태도다.
대법원은 과거 판례(95다23378)를 통해 "피해의 성질과 정도, 피해 이익의 공공성, 가해 행위의 종류, 방지 조치의 가능성, 지역성 등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인한도 초과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진동 측정 수치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1년 넘게 이어진 고통, 진동의 빈도와 시간대, 시공사의 방지 노력 여부 등이 모두 법정에서 A씨의 무기가 될 수 있다.
"혼자선 못 이긴다"…증거 확보와 집단 대응, 승리의 방정식
전문가들은 감정적인 호소에 앞서 냉철한 증거 확보가 첫걸음이라고 조언한다. 우선 상업지역 기준(주간 70dB, 심야 65dB)에 맞춰 진동을 다시 측정해 법 위반 여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기준치를 넘는다면 관할 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해 공식적인 조치 명령을 이끌어낼 수 있다.
만약 기준치를 넘지 않더라도 길은 있다. 조기현 변호사(법무법인대한중앙)는 "다른 주민들과 연대해 내용증명을 발송, 하자보수를 공식 요청하고 그래도 시정되지 않으면 소송을 통해 다퉈야 한다"고 강조한다.
혼자의 외침보다 여럿의 목소리가 더 강력하다.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조정 신청이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집단적 대응은 시공사나 관리 주체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