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그땐 죄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위헌 한방에 뒤집힌 판결
[단독] “그땐 죄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위헌 한방에 뒤집힌 판결
"양벌규정 위헌" 30년 만의 무죄
도로법 재심의 역설적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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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이 사건은 한 법인이 1995년 7월 10일 발생시킨 구 도로법 위반 행위에서 시작한다. 당시 법인 A는 소속 종업원의 업무 관련 위반행위로 인해 처벌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6년 2월 1일, 법인 A는 법원의 약식명령을 통해 유죄 판결을 확정받고 벌금형을 이행했다. 이 판결의 근거는 바로 구 도로법 제86조의 양벌규정이었다.
문제는 이 조항에 있었다. 당시 양벌규정은 법인이 종업원 관리에 아무리 주의를 기울였더라도(무과실), 단순히 종업원이 위반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인에게까지 형사상 벌금형을 부과하는 구조였다.
이는 법인에게 무과실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법조계에서는 오랫동안 헌법상 책임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유죄의 근거였던 '옛날 법'이 무효로 선언되다
법인 A가 억울한 책임을 벗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0년 10월 28일에 발생했다.
헌법재판소는 문제의 구 도로법 제86조 양벌규정이 "법인의 선임·감독상 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전환하여 무과실책임을 지우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 결정은 형사처벌을 위해서는 반드시 개인의 책임(과실)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헌법의 대원칙을 확인한 것이었다. 즉, 법인이 종업원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했다는 과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무조건 벌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일반 사건 '3.1%'를 압도하는 '44.7%' 재심 무죄율의 비밀
일반적인 형사 사건에서 피고인이 무죄 판결을 받을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2024년 기준, 제1심 형사공판사건의 평균 무죄율은 약 3.1%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건이 유죄로 끝나는 이 낮은 통계 속에서 법인 A가 무죄를 받은 것은 이례적인 승리로 비춰진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재심 사건'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2024년 통계에 따르면, 재심사건의 무죄 판결 비율은 약 44.7%로 일반 공판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이처럼 재심에서 높은 무죄율이 나오는 이유는, 재심 자체가 유신·긴급조치 위반이나 이 사건처럼 형벌 법규의 위헌 결정 등 이미 법률적 오류가 명백히 확인된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법인 A는 바로 이 '양벌규정 위헌'이라는 확정된 법률적 오류를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고, 이 높은 무죄 가능성 범위 안에 들게 되었다.
위헌 결정, 30년 전 유죄 판결까지 소급 적용되다
대구지방법원 2025고단3787 판결의 핵심 법리는 바로 위헌 결정의 소급효다. 헌법재판소법은 형벌에 관한 법률이 위헌으로 결정된 경우, 소급하여 그 효력을 상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이 법리에 따라 2010년의 위헌 결정이 1995년 도로법 위반 행위 시점까지 소급 적용되어, "해당 양벌규정은 소급하여 그 효력을 상실하였다"고 판단했다.
결국 법인 A의 1996년 약식명령은 "애초에 법 조항 자체가 잘못된 것이어서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 때(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내려진 잘못된 판결이 되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30년 만의 무죄 선고, 법적 정의 실현의 중요한 이정표
이 판결은 법적 안정성보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우선시하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힘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약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잘못된 법률로 인해 억울하게 처벌받은 사실을 바로잡고 실질적인 정의를 실현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이미 유죄 판결이 확정된 경우라도 뒤늦게 법률의 위헌이 확인된다면, 재심 절차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이다.
[참고] 대구지방법원 2025고단3787(2025재고약42) 판결문 (2025. 10. 16. 선고)
